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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Dec 23. 2023

나는 크리스마스가 싫어요

크리스마스에 대한 고찰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는 내내 캐롤과 크리스마스에 대한 얘기가 들려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게 어딜 가나 느껴진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너무 설레고 기다려진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조심스럽지만 사실이 그렇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 날이 너무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고 바글바글해서 조용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좀 괴로운 날이다. 또 크리스마스는 사실 예수님 생신인데 커플들의 날이나 다름 없어졌다는 점에서 기존의 취지가 뒷전이 된 듯한 모순적인 느낌도 든다.

생일날에 겪는 우울을 뜻하는 'birthday blue'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나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연중 기념일을 마냥 즐기지 못하고 한 해의 영수증처럼 받아들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얼마나 축하를 받았는지가 그 해 내 인간관계의 척도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하려고는 한다). 비슷한 느낌으로 크리스마스날 솔로일 때는 그게 그 해의 연애 성적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면 괜히 실망하게 되었다.

또 크리스마스 때 커플이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실은 커플일 때 오히려 더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큰 날이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싶다. 연애 경력자들에게 크리스마스 계획을 짜려면 최소 한 달 전부터 예약은 기본으로 잡아둬야 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분주하고 특별한 날인만큼 성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이날의 성대한 계획과 환상에 미치지 못하고 무너진 기대는 더 크게 무너져 내린다. 이런 부담 때문일지 실제로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 이후 헤어지는 커플이 유독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래 연애의 과학 게시물 참조)

내가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특별한 날이니까 행복해야만 할 것 같다는 부담. 때로 크리스마스는 부푼 기대가 무너진만큼 그 상처가 더 아픈 날이 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깊은 죄책감으로 남는 날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사실 크리스마스가 모두에게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특히나 이 시기에 SNS를 보면 모두들 행복한 것만 같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내가 하루종일 SNS를 꺼두고 내내 잠들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는, 조금 과장하자면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불행이 더 크게 느껴지는 불공평한 축제날 같다.


그럼에도 내게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최근의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가족들과 엽기떡볶이를 시켜먹은 해였다. 별다른 기대없이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메뉴를 시켜먹는, 적당히 소란스러우면서 평화로웠던 저녁이었다. 그 작고 소중한 행복이 내 기억에 꽤 오래남은 성탄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바깥 세상의 소리를 잠시 차단하고 가능한 최대한 일상적인 성탄절을 보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평온한 행복과 평화가 함께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언젠가 내가 새로운 가정을 만들게 된다면 그 가정 안에서 사랑과 행복을 더 널리 전하고 싶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이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을 담아,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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