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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Apr 18. 2021

"이 소설, 실화에요?"

소설 쓰기의 진실과 허구 사이

내 첫 장편소설  『너만 보는 이야기』 가 출판된지 2주가 넘었다. 내 책이 모든 독자 분들께 찬사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단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닿는다면 기쁠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진심으로 감사해요 <3


그런데 생각보다 독자 분들에게 감사한 리뷰들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미 500%, 아니 1,000% 가까이 그 목표를 이루었으니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쓰고 내가 주변인들의 얘기를 통해서나 독자 리뷰를 통해서나 보건데, 독자 분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는 이거였다:


이 소설 실화에요?


처음에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독자 분들이 내 이야기를 실제처럼 여겨준다는 점을 다소 재밌어했다. 정교한 마술 트릭처럼 꾸며낸 내 속임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때 나는 신입 작가로의 가치를 인정 받은 것 같아 무척 뿌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주변인 분들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소설 속 일들을 정말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보였다는 점이다. 당연히 허구의 일로 받아들일 줄 알았던 부분까지 실화로 받아들이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 이게 아닌데?' 싶은 걱정이 생겨났다. 마치 술자리에서 허풍을 떨듯이 썰을 풀 때 사람들이 믿어줄 때는 재미있었는데, 그 다음날까지 사람들이 그 얘기를 진짜처럼 믿고 나를 대할 때에 드는 죄책감과 내 말에 대한 책임감 같은 후폭풍이 밀려왔다고 해야 할까... 또 어찌 되었든 내 집필 과정 전체에 대한 평가절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는 게 사실이다.


물론 어느 창작물이나 개인의 경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이 소설 또한 그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창작물을 일일이 분해해서 "어떤 부분은 진짜고, 어떤 부분은 가짜야"라는 식으로 감동과 재미를 반감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 집필 과정을 궁금해 할지도 모르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그 해답을 드리고자 한다.


소설의 구상과정


『너만 보는 이야기』라는 소설의 내용이 내밀한 일기나 편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보니, 그 집필 과정 또한 과거의 일을 쭉 - 옮겨 적은 형태일 거라고 생각하는 독자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과거 이야기를 실제로 들려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많이 노력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글이 쓰여진 건 몇 년에 걸친 수정과 퇴고의 역사였다. 내 컴퓨터 폴더에 있는 소설 관련 폴더에는 각종 설정과 개요, 그리고 이전 원고들의 역사가 빼곡히 남아 있다:


최종_최종_최종 완성본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얘기인데, 원래 내가 쓰려던 내용 중에는 두 동갑내기 고등학생 사이 경쟁의식을 다룬 '심리 스릴러'도 있었다!


그런 내용이 조금씩 변화하고 바뀌어 '로맨스 성장 심리 소설'이라는 괴상한 장르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쓴 내 첫 개요의 내용은 (모자이크 처리한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제외하고는) 제목부터 전개까지 많이 다른 내용이었다:


개요.docx

거기서 더 발전된 두 번째 개요만 해도 소설은 남녀 주인공의 시점을 교차해서 쓰고 있었다. 그렇게 둘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쓰다가 한참 나중에서야 소설을 "진아"의 시점만 다루는 1인칭 시점으로 전부 바꾸게 되었다. 소제목 구성이 지금과 같아진 것도 한참 뒤의 일이다.

조각글.docx


캐릭터 초기 설정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건 캐릭터 설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현실에서 내가 만나는 타인들에 대해 누구라도 전부 다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소설을 쓰면서는 인물에 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세하게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중에는 나와 있지 않은 주인공에 대한 미세한 설정과 생각 하나 하나까지 다 알고 있어야 그에 맞춰서 작품 속에 나오는 대사와 행동을 짤 수 있다. 내가 인물을 독자보다 잘 알고 있지 않다면, 그 허구는 당연히 "실제"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전체가 생명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의도에 맞게 설정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프로그래밍한다고 생각하는 편 같다. 초고를 쓰기 전에는 인물들의 사소한 버릇, 성격, 특징, 종교, 과거사, 장래희망까지 세세하게 정리해놓은 파일이 있었다. 지금의 인물 설정과는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바뀐 부분도 많다.


동우 초기 설정
진아 초기 설정 중 일부

하지만 외관상 설정을 세세하게 짜놓았다고 해서 인물들의 속마음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나와 있는 각종 연애글과 연애 심리글을 찾아 읽으며 인물들의 감정선에 주목하고 현실처럼 실감나는 에피소드들을 짜내려고 했다. 나중에는 심리학 책들을 찾아 읽으면서 인물 원형들을 만들어내려고 많이 애썼고, 그 과정에서 많이 헤매고 발전해 나가기도 했던 것 같다.


'실제'가 주는 재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잘 설계된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도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늘 허구의 글을 쓸 때마다 새겨두는, 괴벨스가 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명한 말이 있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스피치 대회를 많이 나갔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연출된 진실'의 힘이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진실된 이야기를 술술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사실 수도없이 연습하는 과정이 있다. 심지어 몇 초대에 어떤 동작을 할지까지 전부 관객의 반응을 염두에 놓고 하는 계산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그런 설계나 연출이 느껴지지 않고, 마치 자연스러운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스피치 대회에 나가지 않지만, 그 때의 경험은 숙련된 이야기꾼의 좋은 자세를 내게 가르쳐주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진실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이란 '사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느낄 만한 설득력을 지닌 이야기에 가깝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허구도 진짜라고 믿게끔 할 법한 세세한 디테일 살리기, 그리고 누구나의 공감을 살 수 있을 만한 보편된 감정에 호소하기 등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소설에 '진실'을 배합해서 쓰는 수법도 그런 식일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운전 초보자의 경험을 살려 나도 모르게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렸던 경험에 대해 길게 묘사할 수 있다. 실수로 엑셀을 세게 밟아 차에서 '부르릉'하는 엔진 소리가 세게 났다고 상세히 설명할 수도 있다. 그때의 당황스럽고 공포스러운 마음에 대해 실감나게 묘사할 거다. 그 다음, 차가 어떻게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치고 급정차했는지를 설명한다. 내가 차 문을 열고 나와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날을 맞이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열기에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도로에 대해 길고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런 여러 '진실'의 배합 뒤에, 내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의 시체'를 보았다고 쓰면,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뒤에 슬쩍 끼워넣은 허구의 이야기까지도 같이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쓴 소설 『너만 보는 이야기』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내가 학창 시절에 썼던 글들이나 메모들을 바탕으로 2010년대 중반 고등학교를 다니며 관찰한 소소한 장면들을 재료로 도로 위의 아스팔트 같은 풍경을 생생하게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도로 위에서 보았던 시체가 진짜가 되지 않듯이, 이 이야기의 내용이 실화라고 할 수는 없다. 픽션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건 그런 의미 같다.


지금까지 실화에 가까운 허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해 썼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초고부터 출판 과정에 대해서까지 다루는 후속편도 쓸 수 있겠다.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서툰 고등학생들의 성장 이야기,  『너만 보는 이야기』 에도 많관부! <3


<2022.08.18 수정/추가>

이 글은 발행취소했다가 브런치 글들을 재정비하면서 다시 수정해서 올리게 되었다. 쑥스러운 마음에 책을 이후로 읽어주신 독자분들의 글이나 리뷰들은 이전처럼 열심히 찾아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많이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글을 쓴 걸 보면 어쩐지 몹시 부끄럽고 없애고 싶어져서 그런 것도 컸고, 내가 작가라는 이유로 독자들이 느끼는 바에 대해 반박을 하고 쓴 과정을 보여주는 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이 글은 그저 관심을 가질 만한 분들에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다시 글을 올리게 되었다.


 이 글이 실화가 아니라고는 하나, 주변 분들로부터 내가 주인공 '진아'를 닮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나도 "그런가?" 하고 어느 정도 수긍하는 면도 있다. 어쩌면 첫 소설의 주인공이 나의 페르소나 같은 걸 수도 있고, 생각해보면 내 글이 나를 닮는 건 당연한 일인 것도 같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 나는 진아보다 조금 더 영악하고 나쁜 면이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나를 더 닮은, 조금 더 나쁘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주인공을 선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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