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 Aug 07. 2022

스무 살이 되기 딱 하루 전

2017년 새해를 앞둔 만 18세의 기록

대학 원서를 냈다. 좀 더 성의껏 했어야 했는데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내버렸다. 원서를 내고 나면 내 마음이 더 홀가분해지기라도 할 줄로만 알았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듯이 성급히 낸 걸지도. 하지만 막상 원서를 내고 보니 딱히 모르겠다. 평상시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시간이 생겼는데 오히려 축 쳐지는 기분이다.


소속감이라는 게 이리도 중요한 것이던가?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그토록 고등학생이 아닌 어른이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이제는 학생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듯한 상태로 자유 선언을 들었는데도 오히려 막막한 기분만 든다.

'앞으로 뭘 하지? 뭘 하면 좋지?'



그래도 요즘은 잠을 잘 잔다. 아니, 그 말은 취소. 십 분, 이십 분 가량 침대에 누워서도 곧바로 잠들지 못하는 것쯤은 이제 익숙하다. 자기 전에 생각할 거리들이 어쩜 그렇게 몰려드는 걸지. 컴퓨터 전원 강제 종료하듯이 머릿속을 끌 수 없는 이상 생각할 거리들이 서서히 다 사그라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이제 그것을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야겠다는 강박이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강박을 버리고 잠이 올 때까지 그저 기다리려고 한다.


요새 잠이 나아진 이유 중 하나는 내게 강렬한 불면증과 이갈이를 선물했던 일들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루에 한두 번씩은 나를 괴롭혔던 들이 구름처럼 생각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일들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해 보다가 내 잘못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는 들을 애써 담아둘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타일렀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진다.


그래 요즘 들어 더 크게 밀려드는 외로움은 여전히 견디기가 힘들다. 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친구랑 같이 다녔으니까 그런 외로움을 느껴볼 겨를이 잘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외로움을 버티기가 두려워서 사람들에게 더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분하고 슬프고 엉엉 울고 싶어도 학교 수업이나 시험 같은 바쁜 일정과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그런 슬픈 감정이 휩쓸려서 묻혀 버렸다.


그런데 학교에 별다른 수업이 없어지면서부터는 더 이상 그런 감정들을 묻을 만한 곳도 마땅히 없어져 버렸다. 외로움과 적막함이 밀려왔다. 이대로 학교에 더 오래 있다가는 사람이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졸업이 얼른 하고 싶었다.


이제 학기가 끝나고 집에 있으니 사정이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이제 내 방에 콕 박힌 생활도 슬슬 지겨워진다. 갑갑한 마음에 매일 같이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누구라도 연락하고 싶다. 소통하고 싶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결국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친구에게 연락을 보냈다. 최근에 그 친구가 대학에 잘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였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혹시 일부러 내 연락을 씹는 건가?'


자존심이 순간 팍 상했다. 대학 불합격 소식들을 연달아 듣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내 자존감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혹시 친구가 일부러 내 연락을 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외로운 마음이랑 겹쳐져서 묘하게 상처가 된다.


의 이러한 혼란과 공허함은 내가 갈 학교가 정해지지 않아서, 그리고 그에 반해 내 주변 사람들의 잘 된 입시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오고 있어서 가중된 것일 테다. 특히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았거나 나보다 크게 잘하지 않는 것 같던 친구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들으면 '그럼 나는 대체 뭔가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무슨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왜 내 주변 사람들은 다 그렇좋은 대학에 척척 잘 붙는 것만 같을까?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나만 왜 렇게 그대로인 걸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정말이지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 된 소식을 듣고 누구는 원래 실력이 없었네, 쟤는 꼼수를 썼네, 하는 소리를 할 수는 없다. 인정할 건 쿨하게 인정해야 한다. 어쩌면 합격의 행운을 누린 자들은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그 몇 곱절의 노력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령 합격이 운일지라도, 그 운 또한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실력일지도. 쿨하게 인정하고 축하해 주는 게 대인배의 마음일 거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그런 대인배가 못 되나 보다. 솔직히는 괜한 트집이라도 잡아 보고 싶다. 그래야 지금 내 꼴이 이보다 더 초라해지지 않을 테니까...... 이제 내가 좋은 대학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건 엄청난 학업에 열의가 있어서도 아니고, 직장을 잘 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의 문제 같다. 내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내 입시가 망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알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히스테리 한 가득이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화가 나고 짜증 나는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나 내가 알던 사람들이랑도 그래서 괜히 틱틱 부딪치는 것만 같다. 힘들다.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남은 대학 결과 발표가 벼랑 끝에 선 나를 마치 구조 헬기처럼 구해주기를 간절히, 매우 간절히 바라고 있다.



새해를 앞두고 페이스북 피드에는 이제 막 술잔을 기울이는 동창들의 모습이 올라온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새해에는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들고 기분이 좋기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 해가 바뀌는 일에 대해 감흥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스무 살이 된다는 건 더 좋고 특별한 날 같을 법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애초에 만 19세도 아니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다. 청소년도 아니면서 어른도 아닌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차라리 해외처럼 만 나이로 통일을 하던가 해야지, 법 제도가 너무 애매한 것 같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실은 기쁘기는 하다. 지긋지긋한 입시를 겪었던 2016년과 드디어 헤어질 수 있다는 게. 지금 당장은 내 입시 결과가 많이 걱정되지만... 그와 별개로 내가 해야 할 일들도,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도 많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더 초조하기도 하다. 나는 대학 입학 전까지의 시간을 대충 날렸다는 선배들의 얘기를 들으며, 나만큼은 효율적으로 그 시간을 쓰고 싶어졌다. 좋든 싫든 나를 뒷받침해주던 고등학교 학생 신분이 사라져 버리면서 생긴 거대한 공백이 불안하기만 하다. 어떻게든 그 틈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에 나는 벌써부터 안달이 난다. 일을 하고, 다시 공부라도 하고 싶다. 그래야 지금 내가 정통으로 맞고 있는 불안과 외로움 같은 감정들을 잠시 잊고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할 일을 찾아나가야 한다. 따지고 보면 재미있을 것도 같기도 하다. 단지 앞으로 어디를 가야 할지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 기분이 썩 홀가분하지 않을 뿐이다.



새벽 전야 11시 17분. 나는 일기장에 "새해가 설레고 기다려지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내일부터의 일 년은 이제까지의 한 해보다 더 나은 날들로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