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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Aug 11. 2022

대학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

스무 살이 되고 첫 12일 동안의 기록

새해가 되었다. 전날 연락을 받지 못했던 친구한테서는 답장이 왔다. 하지만 막상 연락이 와도 입시 결과가 별 달리 나오지 않아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만간 친구를  한 번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새해에 온 가족들이 우리 집에 모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새해에 가족 모임은 예상외로 조용히 지나갔다. 아무도 내게 대학 문제 같은 걸 자세히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았고, 내게 해코지를 하지도 않았고, 부모님에게 딱히 기분 나쁠 소리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가족 분들이 자리를 일찍 비우고 가 버리셔서 “진짜 끝난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냥 밥 한 끼 다 같이 먹고 끝났다. 뭔가 집에 그냥 휙 휩쓸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빼도 박도 못하게 스무 살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별 달리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스무 살이 되었다니, 무슨 엄청난 반응이라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앞으로 뭘 다르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어제 페이스북에서 펼쳐진 술파티 사진들을 보고 나도 대뜸 술이 마시고 싶어 졌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의 날들은 또 금방 지나갔다. 며칠 뒤에는 동생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간다고 해서 배웅을 하기 위해 공항에 갔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이력서를 넣어둔 곳에서 면접을 바로 볼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인천 공항까지 와 버린 뒤라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아 거절을 했다. 왜 하필 그런 타이밍에 전화가 온 걸지 아쉬웠다. 그저 내 운명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위안을 삼기로 했지만, 그래도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경험자들의 말에 의하면 1월에 유난히 경쟁률이 세서 나중 가면 상황이 좀 나아진다고는 들었다. 하긴, 1월이면 막 겨울 방학 시즌이니까. 해외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나한테는 시간이 아직 8개월에서 9개월이나 남아 있으니 시간은 내 편이었다. 그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뻤다. 사람들이 이렇게 공백 (gap)을 가지는 시간을 ‘gap year’라고 부르기도 한다던데, 나한테도 이런 틈이 주어진 셈이었다.


그런데 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뜻밖에 친척 분의 부고를 전해 듣게 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그날 저녁에 갑작스럽게 장례식에도 가게 되었다.


한 데 모이게 된 가족 분들은, 이제 막 성인이 된 내 눈에는 그다지 슬퍼 보이지 않으면서도 슬퍼 보였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면 다들 오열을 하고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단지 엄마를 비롯한 가족 분들이 하나둘씩 흐느껴 울 때 서로 부둥켜안아주고 위로해주었다. 침울에 잠긴 분위기보다는 가족 정모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일상적인 것 같은 가족들의 대화 속에 슬픔이 은근히 묻어 나왔다. 그날 내가 느꼈던 분위기란 그랬다.


장례식 이후로 원래 엄마와 가기로 했던 <명견만리> 방청회는 가지 못했다. 대신에 부모님과 같이 최근에 개봉한 <너의 이름은> 영화를 보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1월 7일의 영화관

갑자기 바뀐 일정이었지만 <너의 이름은>을 보기로 한 것은 정말이지 잘한 일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17년 새해의 열흘이 지났다. 영국 대학 면접 결과가 1월 11일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그 전날에는 무척 초조한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계속해서 뭔가 할 일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결과가 11일이 아닌 12일에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니까 더 초조해졌다. 10일 밤에는 새벽에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 뜬눈으로 기다려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잠을 자두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잠이 금방 오지도 않았다. 이래저래 심경이 복잡해서 밤에 유튜브로 ‘너의 이름은’ OST 영상을 틀어두며 놀았다.


11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메일부터 열었다. 우려한 대로 결과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자 엄마는 아침부터 “난리”였다. 난리라는 표현이 죄송스럽지만, 엄마가 학교가 안 된 거 아니냐고 내게 몇 번을 물었는지 모른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때때로 성격이 급한 엄마와 입시 기간 중에도 꽤 부딪쳤다. 그래도 분위기는 서서히 진정되었고, 기분도 금세 풀렸다. 결과 발표는 결국 그날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 저녁, 엄마는 운동을 하러 나가며 혹시나 그 사이에 입시 결과가 나온다면 무슨 소식이든 연락을 바로 해달라고 하셨다. 나는 결과가 그렇게 빠르게 나오기를 기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새벽 늦게나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하며 화면을 줄곧 확인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스무 살이 되고 나서의 첫 며칠에 대한 지난 1월 한 달 간의 일기를 몰아 쓰고 있었다.


러던 중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못 보던  메일에 눈길이 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의 제목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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