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남편과 얼마나 살았죠?
-아주 오래요, 3년 7개월 그리고 6일……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이다. 그녀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차분하고 건조한 음성이었으나 생각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충격이 있었다. 뒤통수를 치는 요란한 충격이 아니라 멈칫거리게 하는 짧은 흔들림이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에 대해 나름으로 어느 정도를 계산하고 있었는데 그 계산을 빗나간 의외의 대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3년 7개월 그리고 6일……
이 짧은 대화에 반응한 건 아주 오래라는 문장 때문만은 아니다. 대화를 둘러싸고 있는 긴장된 분위기와 전개될 이야기의 궁금증이 앞서 있었다. 그리고 과거형으로 들리는 질문, 남편과 얼마나 살았죠?
이건 시간에 대한 얘기 거나 감정에 대한 얘기일 수 있다. 또한 경험과 기억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하지만 그 공평한 24시간을 모두가 똑같이 끌고 가는 것은 아니다. 간절히 무언가를 기다린다거나, 몹시도 지루하고 무료하거나 또는 다른 곳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여기에 있다든지, 잠시도 견딜 수 없이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중에 있다면 시간은 더디고 고통스러운 형벌일 수밖에 없다. 一日如三秋, 하루가 삼 년 같기도 한 것이다.
지나온 어느 시기, 최소한의 주거공간을 간절히 찾아다니던 날들이 있었다.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내에서 방값이 싼 변두리만을 돌아다녔다. 생각의 대부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집과 연결되었다. 저 무수한 공간들 중에 몸 하나 편히 누일 내 집은 없구나 하는 생각에서부터 빈 들판의 비닐하우스마저도 부러웠고, 주어진다면 열심히 살아낼 것 같았다. 아, 다시 울컥 눈물이 난다.
생활정보지를 뒤지고 수시로 인터넷을 확인하고 마을의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어려운 일은 몰려서 온다고 했던가. 당시는 좀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던 이 외곽지역의 부동산시세가 비정상적으로 뛰어오르던 중이었다. 한 가게 주인이 삼십 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조금 기다려보는 건 어떠냐고 말했으나 일의 형편을 살피며 기다릴 여유가 당시 내겐 없었다.
일을 하다가도 연락이 오면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심정으로 거의 기진해 있던 어느 날, 살고 있는 근처에 매물로 나와 있는 집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날짜를 보니 오래전 올라온 광고인데 그날 눈에 띄었다. 바로 주인과 연락해 집을 보러 갔다. 가보니 한 동네나 마찬가지였는데 난생처음 보듯 낯설기만 했다. 와볼 일이 없었던 길 끝의 동네 느낌도 그러했지만 언덕까지만 포장길이고 아래 골목길이 모두 비포장이었다. 2000년대, 웬만한 시골 구석구석도 맨흙을 찾아보기 어려운 때였다. 반짝 기온이 오른 12월의 한낮이었다. 얼었던 땅이 녹아 길은 그야말로 진흙탕이었다. 누군가 임시방편으로 보온덮개를 깔아놓았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 최대한 골라가며 발을 디뎠다.
거기가 우주 저편은 아니었지만 마을의 끝이었다. 지목이 임야인 곳에 지어진 아담한 빌라가 여러 동 있었다. 뒤로 야산이고 연이어 넓은 논이 경계의 선처럼 그어져 있다. 현관 입구 우편함 아래 어지럽게 쌓인 광고전단이며, 흙투성이 앞마당과 계단이 언짢았지만 지나쳤다. 1층이 잠겨있어 같은 구조라는 3층을 보게 되었다. 집안은 좋아 보였다. 안방과 베란다도 넓어 보이는 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약간 불룩한 곡선의 베란다 난간도 고급스럽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의 왜곡과 변형에 대해서,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모르지만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어 의심하고 점검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사를 앞두고 다시 방문했을 때, 당황했다. 눈을 의심했다. 얼마 전에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 집이 아니었다. 형편없이 작고 좁았다. 오래전 일도 아니어서 더욱 놀라고 믿기지 않았다. 어리둥절함은 한동안 이어졌고 의문은 지금도 풀리지 않았다. 나름 이성적이라 여겼던 자신에게 물음표를 남기지 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무엇이 멀쩡한 시야를 그렇게 몰아갔을까. 단순한 착시(錯視)였거나 아니면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려는 인식의 방어 작용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십여 평의 공간이 넓으면 얼마나 넓겠는가.
우연은 그렇게 필연으로 옮겨 앉는다. 보통의 일을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모든 감각을 통과한 경험은 기억으로 남고 기억은 때로 편리에 따라 재조합된다. 시간이 그 이야기를 견고하게도 꾸미고 신기루처럼 사라지게도 한다. 칼바람이 불던 십이월 끝자락에 이사했다. 새집에서 새해를 맞으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가 얼마나 잘 들어맞는 일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집에서 조용히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와 저녁에 들어갔다. 길은 오르막이 많아 힘들었고 골목마다 빈틈없이 차들이 주차되었다. 방안으로 햇볕이 들지 않는다는 걸 쉬는 날 알았다. 빨래하기 위해 베란다로 나가면 낡은 아파트 뒷면이 보인다. 다행히 여름에는 아파트 철망울타리를 타고 붉은 넝쿨장미가 인심 쓰듯 넘어온다.
다시 그녀의 얘기로 돌아간다. 그녀는 독립하기로 결심한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철저하게 계획한다. 미련 없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름도 바꾼다. 살던 도시를 떠나 아무 연고가 없는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녀다. 그녀가 그녀 아닌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녀가 그녀라는 사실을 몰라야 가능하다. 그녀가 그렇게 정말 다른 사람으로 새로운 삶을 산다면 그것은 누구의 삶일까.
시간은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고 축적되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 시간은 십 년이든 백 년이든 차이가 없다. 새로운 삶이란 말은 이상하게 좋은 의미로 들린다. 반면 ‘다른 삶’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변화되는, 다른 삶이 맞는 것 같다. 새로운 삶은 과거를 부정(否定)하고 출발하지만 다른 삶은 오늘을 만든 어제를 기억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잊는 것이 아니고 딛고 올라서서 다른 경험을 쌓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