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골길과 이웃한 마을이야기 1

by 연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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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을 살펴보다

갯골길과 이웃한 마을은 행정동으로 ‘신현동’이며, 신현동은 ‘포동․방산동․미산동’ 3개 법정동을 포함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법정동은 법(法)으로 정한 이름이고, 행정동은 행정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여러 법정동을 묶거나 하나의 법정동을 세분화한 것이다. 시흥시 경우 인구밀집 지역인 정왕동과 배곧동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3개 법정동이 모여 하나의 행정동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대야동행정복지센터는 계수동과 대야동 두 개의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으며, 목감동행정복지센터는 5개의 법정동인 물왕동․산현동․조남동․목감동․논곡동을 아우르고 있다.

신현동(포동․방산동․미산동)은 시흥시 전체 면적의 10%를 조금 넘게 차지하고 있으며, 면적의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주거환경이 열악한 데다 중소공장까지 난립하여 그에 따른 민원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신현동에 남아있는 지명들을 살펴보면 물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이는 신현동이 오래전부터 바닷물이 들어왔던 지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 포동을 가리키는 지명인 포촌리(浦村里), 포리포(浦里浦)와 방산동 산우물을 가리키는 산정리(山井里)는 일찍부터 문헌상에 나타나고 있다. 또한 미산동의 구시미가 한자 표기로 구수미(九水美)인 점도 그렇고, 우물배미, 웃우물, 찬우물고개, 느팅골우물 등도 마찬가지이다. 또 다른 특징은 18세기경 바다를 막아 조성된 드넓은 농토와 관련된 마을 이름들이다. 쌀을 가리키는 미산동(米山洞)과 곡식 창고가 있었다는 창동(倉洞), 시흥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조벌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1930년대 중반 일제의 염전개발이 또 한 번 신현동 일대의 생활기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다. 방산동과 포동 일대에 수백만 평의 소래염전이 자리 잡으면서 수많은 사연들을 염전바닥의 소금만큼이나 넘치게 남겨놓았다.

2014년부터 사용한 도로명 주소로 100년간 지속되어 온 지번 주소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물류․정보화시대에 맞는 위치정보체계를 갖추며 국민생활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도로명 주소의 특징은 거리예측이 가능한 체계로서 길은 대로․로․길로 구분하고 길의 시작과 종점, 왼쪽과 오른쪽, 거리 등을 구분하여 건물번호를 매긴다. 무엇보다 행정동과 법정동 주소의 이원화 문제가 풀릴 것이고, 도시화로 인한 지번의 연속성 결여와 인근도로 사항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점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도로명 주소에 따라 39번 국도는 ‘시흥대로’, 포동과 방산동을 지나는 ‘비류대로’, 호조벌과 생태공원을 지나는 도로는 ‘마유로’이다. 비류대로는 인천 옥련동에서 시작해 미추홀구와 남동구를 거쳐 시흥시 방산동, 포동, 하중동까지로 고구려 동명성왕의 둘째 아들 비류(沸流)에서 따왔으며, 마유로는 조선시대 당시 마유면이었던 데서 유래하는데 말이 뛰어놀았다는 뜻이 있다.

어떤 이름이 불리기까지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이름을 붙이고, 걸고, 대신하고, 떨치고, 남기고, 팔고…… 이렇게 보면 무엇이든 이름이 있다는 것은 고유하다 하겠다. 이름표를 단 길을 살펴보는 일은 그래서 의미 있다. 동네마다 붙어있는 도로명을 보면 새로 생긴 마을과 예전의 마을 지명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포동의 경우 아파트가 들어선 입구 쪽은 신현로로 이름 붙여져 있고, 마을 깊숙이 들어가며 새우개길, 방산가마터길, 숯돌재길, 신촌길 등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나올법한 이름들이 나온다. 미산동도 최근에 생긴 마을은 미산로에 속한다. 그 외 구수미길, 밤뒤길, 양우재길이 있다. 또 방산동은 청룡저수지길, 다지골길, 황골길, 황골안길, 마루미길, 방골길, 방산고잔길 등이 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고, 길과 길은 서로 통한다. 도로명주소가 ‘길’을 따라 주어지므로 같은 밤뒤길이 미산동과 방산동을 잇고, 방산가마터길도 포동과 방산동에 걸쳐 있다. 뒤에 붙는 숫자가 동(洞)을 구분하여 매겨진다. 버스정류장이나 학교명 특히 초등학교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제 굳이 기억할 필요 없이 잊고 있는 과거의 한 자락이 실타래처럼 끌려 나오기도 할 것이다.


방산가마터와 방산동(芳山洞)

시흥시에 있는 국가사적 두 곳 중 하나가 방산동의 청자백자요지이다. 사적이란 문화재 중 역사상, 학술상 가치 있는 유적지로 국가가 특별히 지정한 것이다. 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 네 가지로 나뉘는데 사적은 그중 기념물에 속한다.

국가사적 413호로 지정된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사용된 가마터로, 당시 이 지방 세력가인 호족에 의해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출토된 유물은 청자와 백자, 토기, 각종 요 도구류가 있는데 비율로 볼 때 청자가 백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벽돌을 이용한 가마축조법과 요업방식의 전환을 알 수 있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어 한국의 청백자 발생시점을 추정할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현재는 복토된 상태여서 안내판을 만나볼 수 있을 뿐이다.

방산동은 조선시대 방곡리(방골)와 산정리(산우물)였던 두 마을을 1914년에 합하면서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방산리로 변경하였고, 그 후 시흥시가 되면서 방산동이 되었다. ‘고잔’은 동남쪽으로 포동 신촌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뒤쪽(북)으로 포도밭이 있고 앞(남)으로 넓은 농경지가 펼쳐진 농촌의 모습이다. 주변에 위치한 마산 마을과 황사지 마을은 포동염전이 조성되면서 염부들이 모여 살면서 생겨났다.

‘방골’은 풍수지리적으로 밤송이 형국이라 밤골로 불리다가 후대로 내려오며 입에 붙기 쉬운 방골로 바꾸었다. 방골은 동, 남, 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처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방골 북쪽지역을 ‘웃말’이라 부르고 서쪽지역을 ‘아랫말’이라 부른다. 거리상으로 어촌인 포동 새우개와 멀지 않으나 방골은 오래전부터 쌀농사를 주로 지으며 살았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상당수 주민들이 포도를 재배하였다.

‘다니’는 방골 남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남쪽에 방산동 청자․백자가마터가 위치해 오래전 도공들이 인근에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루미’는 방골과 청룡저수지 사이에 있으며 방산로와 월곶 진입로가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좋은 편이다. 서쪽으로 청룡저수지와 극동방송 송신소가, 동쪽 망재산 기슭에는 국궁장인 소래정이 자리하고 있다. 1950년대 초에 이곳 3,000평에 포도나무를 재배하면서 방골과 산우물 사이에 위치한 ‘다지골’과 함께 오늘날 방산동 일대가 포도 주산지로 정착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방산동에 있는 바닷물을 막아서 만든 민물낚시터인 청룡저수지는 주변지대보다 높이 자리한 점이 특징이다. 천정(天井) 저수지 즉 하늘연못이라고 소개되고 있으나 저수지를 만들었을 때 개울물처럼 깨끗했던 수질이 상당히 나빠진 점이 아쉽다. 범배산이 가까이 있고 서쪽으로 극동방송 송신소가 자리하고 있다. 신천수로가 저수지 옆을 끼고 있는데 송신소 앞 극동교는 시흥군 시절에 만들어졌다. 멀리 인천 논현동 아파트 단지가 묵은 세월을 입은 풍경으로 들어온다. 범배산을 등지고 앉아 멀리 물러난 바다를 그리며 고적하고도 편안한 오후에 젖는 하루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포동 수로의 보통천에도 늘 그만큼의 낚시꾼이 오고 간다. 매일 퇴근길마다 잠시 앉았다가 간다는 어떤 이는 잡은 물고기를 도로 놓아준다. 부담도 없고 그냥 이곳이 좋단다. 그는 무엇을 낚고자 낚싯대를 드리우는 걸까.

버스를 타고 마을로 들어간다. 차창으로 공장과 뒤섞인 마을 위,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사이로 멀리 갯벌을 내다보고 있는 당집이 들어온다. 허물어지고 있는 당집은 새우개마을의 상징이다. 곧 포리초등학교에 닿는다. 오른편 시야로 산 밑에 자리한 학교가 보인다. 포리초등학교는 신현동을 통틀어 하나 있는 학교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 등의 통학차량을 이용한다.

‘신촌’ 마을을 지나면서 버스길은 방산동으로 이어진다. ‘고잔’과 ‘새터말’ 사이 비류대로가 지난다. 논과 포도밭, 야산의 고갯길을 털털거리며 버스는 달린다. 변변한 정류장 표지도 없이 안내방송이 ‘산우물’과 ‘방골’을 알려준다. ‘방산교회’ 앞은 복작거리는 시골장터 분위기다. 월곶을 지나는 서해안로 굴다리를 지나면 잘 생긴 기와집의 소래정(활터)이 언덕 위에서 눈길을 잡는다. 예전엔 신천천에 놓인 방산 3교를 지나기 전이 청룡저수지 입구였으나 바뀐 노선으로 방산교나 방골 정류장에서 내려걸어야 한다. 저수지가 보이진 않는다. 신천천을 끼고 달리는 버스 오른쪽으로 ‘황골마을’ 안내판이 큼직하다. 허름한 차림의 방산빗물배수펌프장을 지나 포도원로와 만나며 배경이 달라진다. 신천고등학교 앞에서 하차한다. 짧은 시간이다. 너무 반듯한 것에 익숙해진 건 아닐까 되돌아본다.

산기슭 따라 굽어진 길을 그냥 걷고 싶은 마음이 무엇의 발로인지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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