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우정으로 가다

여기 그 길

by 연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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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어느 날. 김포, 시흥, 인천, 서울, 대전, 경주에 사는 친구들이 공항으로 모였다. 11인, 우리는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다. 40년이 넘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혼하고 아이 낳아 한창 키우는 중간중간 만남이 끓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각자 시간의 물결을 흘려보내고 중년으로 접어들며 다시 모임이 이어졌다. 친구란 어떤 사회적 관계보다 순수하게 엮인 인연이다. 단순하고 자유로우면서 감사한 존재라는 걸 만남이 거듭될수록 알게 된다. 그래서 또한 세심한 배려와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듯싶은 친구들과 해외여행,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의 여정을 남긴다.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고 잦아든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가끔 물리적 거리와 감정의 절제가 필요하다. 애증의 가족처럼.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다낭은 베트남의 네 번째 도시이며, 가장 큰 항구도시이다. 한때 경제적으로 번창했던 곳이며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기지였다. 남중국해와 맞닿아 있으면서 무려 20km에 이르는 미케해변 일대가 관광지로 알려지며 세계적인 호텔과 리조트가 세워지고 있다. 인천에서 오후 비행기로 다낭국제공항에 늦은 밤 도착해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다낭공항은 베트남공군이 함께 사용하는 공항으로 군사시설이 있는 곳이다. 우리 일정은 3박 5일로, 가는 날과 오는 날 빼고 꽉 찬 3일이다. 설렘과 함께 아침을 맞는다. 밤이기도 했고 맞은편 객실이라 몰랐는데 호텔 앞 도로건너편이 바로 미케비치이다. 다음 날부터 오션뷰 객실로 옮기면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망망한 바다와 마주하게 되었다.

오행산은 다낭을 대표하며 오행을 관장한다는 산으로 그리 높지 않은 5개 봉우리에 木, 火, 土, 金, 水의 이름이 있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마블 마운틴이라고도 불린다. 그중 알려진 수산에 여러 동굴이 있으며 동굴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동굴 안은 군데군데 위쪽이 뚫려있어 녹색 나뭇가지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아치형 돌문과 용 조형물이 여기저기 보인다. 탐방로가 미로처럼 느껴진다. 水산 이름값인지 우기영향인지 곳곳에 물기가 배어있는 듯하다. 대충 둘러보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기념사진 찍었던 ‘2024’가 보이는 입구로 내려왔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호이안으로 이동한다.

호이안은 꽝남성의 남중국해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로 일찍이 외국무역상의 출입이 빈번했던 해상운송의 중심지였다. 동서양의 문화가 복합된 올드타운 풍경으로 유명하다. 1999년 호이안의 옛 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화 ‘님은 먼 곳에’ 주인공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아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끝내 찾아가는 곳으로 내겐 각별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의 청룡부대가 1965년부터 6년간 다낭일대에 주둔했기 때문에 현지인에게 한국인은 비교적 익숙한 편이다. 투본강에서 바구니배 체험을 한다. 입구서부터 귀에 익은 트로트가 요란하다. 피에로분장의 현지인이 박자에 맞춰 춤추며 흥을 돋운다. 그는 신나게 춤추고 있으나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두 명씩 배에 올라 코코넛 야자나무 사이를 지나 강의 중앙으로 나아간다. 바구니배 돌리는 쇼를 보고 팁 주기도 하면서 관광객들이 흥을 나눈다. 마을주민 대다수가 관광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도자기마을로 이동한다. 나라에서 지정해 마을전체가 그곳 흙을 이용해 생활도자기를 만든다. 한 집에 들어가 기념품이라는 작은 동물모양 하나씩 고르고 마을사이 좁은 길을 걸으며 물레작업도 지켜보았다. 호이안 구 시가지로 들어가 투본강가에서 씨클로 순서를 기다린다. 노점 상인이 여럿 주변을 맴돈다. 자전거 뒤에 인력거를 매단 모양의 씨클로를 타고 호이안 구 시가지를 한 바퀴 돌다 보니 하나 둘 형형색색 등이 켜진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내원교와 턴키의 집, 광조회관, 풍흥의 집을 둘러본다.

내원교는 중국인거주지와 연결하기 위해 일본인이 세운 다리이다. 주변으로 볼거리와 식당, 상점이 몰려있어 늘 번화하다. 턴키의 집은 호이안의 전통적인 고가로 집 뒤쪽에 강이 있다. 과거 외국상인이 투숙하기도 했다는 내부에 수해 입은 사진이 걸려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이 아직 빠지지 않아 뒷문 쪽은 물에 잠겨있다. 광조회관은 과거 광동출신화교들이 관우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자 집회장소이다. 내부에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초상이 있다. 천장에 매달아 오래도록 타오르게 만든 커다란 원뿔모양의 향이 눈길을 끈다. 풍흥의 집은 200년 전 풍흥이라는 거상이 지은 목조 가옥으로 베트남 전통과 중국, 일본의 건축 영향을 모두 담고 있다. 내부에 중국식 장식과 일본식 목조기술이 어우러져있으며 2층 발코니에서 호이안 구 시가지를 보는 인증숏 장소로 유명하다. 어두워지며 상점마다 수십 개 등이 켜지고 골목을 지나 강가 전체가 오색 등불로 마치 떠오를 준비라도 하는 듯하다. 야경 속으로 강물에 소원등불 띄우는 체험을 한다. 조각배에 올라 불 붙인 소원초 종이배를 물 위로 내려놓으며 묘한 분위기에 이끌려 감정이 벅차올랐다. 등불 가득한 호이안 투본강, 잊지 못할 밤이다.

다음날, 골든브릿지로 유명한 다낭의 바나힐을 간다. 식민시절 프랑스 관광객을 위한 휴양목적으로 조성되었다가 독립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파괴된 것을 베트남 썬 그룹이 2000년 테마파크로 개발해 오늘에 이른다. 해발 약 1500m에 있어 해안 주변보다 10~15도 정도 기온이 낮다. 케이블카 타는 입구에서 맥주무료쿠폰을 나눠주었다. 안개가 자욱하고 보슬비가 내린다. 체온도 높일 겸 우의를 입었다. 썬월드광장, 공원, 프랑스마을, 골든브릿지 전체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오히려 신비로웠다. 맥주마실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는 크고 넓은 3층의 오픈된 전체가 왁자하게 울리며 그대로 축제장 같다. 우정의 잔을 부딪치며 들뜨고 유쾌하였다. 바나힐을 떠나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기분으로 기념품 고를 수 있다는 마트에 들렀다가 마사지받기 위해 이동했다. 오늘 마지막 일정은 우리 숙소 옆 보코호텔 루프탑에서 밤바다와 마주하는 낭만의 시간이다. 파도의 포말이 오늘 밤을 잊지 말라는 듯 하얗게 일어나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오래 지속되지 않아서, 영원할 수 없어서 더욱 아름다운 지금이다.

우기인 점을 감안하면 날씨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다낭 대성당은 분홍색 외벽이 독특해 핑크성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 식민 통치시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유럽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정문이 잠겨있어서 철문창살을 통해 외관만 볼 수 있었다. 걸어서 ‘한시장’을 간다. 우리의 전통시장과 비슷한 한시장은 베트남 현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거리를 향해선 꽃집들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옆 가게와 경계도 분간하기 어렵게 쌓아 올린 물건으로 눈이 어지러웠다. 2층 오르는 계단 옆 장의자에 앉아 구경하며 기다린다.

베트남 최대높이 해수관음상이 있는 손짜로 이동한다. 바닷길을 따라가는 차창 가로 조각배가 셀 수 없이 모여들었다가 뜸해진다. 67미터의 해수관음상이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사찰 마당에 여러 형상의 분재와 수호용신이 있고 18인의 아라한이 양쪽으로 배열해 있다. 원숭이가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뒷마당에 오랜 세월 서로 연결되어 연리지를 연상케 하는 나무와 여인상이 서있다. 자유롭게 둘러본 후 친구들이 두 시간 마사지받을 동안 남은 셋이서 근처 작은 커피숍에 앉았다. 열린 문 사이로 간간이 차량과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한적한 이국의 밤거리에서 흘리는 시간이 더없이 좋았다.

다낭의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기 위해 대기할 때 비가 제법 쏟아졌다. 우의 뒤집어쓰고 물웅덩이를 차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 마냥 신났다. 다낭 한강의 명물인 드래건브리지(용다리)와 건물외벽의 조명이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며 모양을 바꾼다. 선택 관광인 다낭 나이트시티투어로 끝까지 즐긴다. 개방된 전동차에 우리 가요를 크게 틀고 밤거리를 달린다. 주위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일탈의 해방감이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마지막 만찬 장소로 사전 예약된 브릴리언트 씨푸드레스토랑은 해산물전문점으로 유리 수조에 층층이 담긴 살아있는 해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차려진 메뉴 외에 바닷가재와 새우 추가하고 생일케이크를 미리 주문해 깜짝 축하하는 시간도 가졌다. 감기로 고생한 친구가 있었으나 별 탈 없이 그 밤을 날아서 5일째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바닥으로 쏟아진 콩알 흩어지듯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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