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으로 불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지구별 전체를 흔든 지 몇 해 되었다. 그동안 조심하며 잘 피했다고 해야 할지 대인관계에 소극적이었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으나 별 증상 없이 여름을 맞았다. 그러다 우리나라 인구 중 누적환자가 이천만 명 넘는 시점에 덜컥 확진자가 되었다.
그해 여름 퇴직 준비하는 마음을 들고 몽골을 다녀왔다. 수도 울란바토르와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보낸 며칠은 삶의 희로애락이 뒤엉킨 내 인생의 축소판을 보여주듯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체력이 바닥까지 방전되는 한계점을 경험하며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다. 귀국 하루 전, 코로나19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요구하는 절차로 현지에서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하였다. 몽골은 일상에서 거의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코로나19 양성이 나오면 당장은 입국할 수 없다.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안심하고 다음날 입국하였다. 입국 후 24시간 내 PCR 검사 또한 의무이다. 며칠 전까지 3일 이내였던 조치가 24시간 내로 다시 바뀌었다. 인천공항에서 바로 관내 검사장까지 이동해 PCR 검사 후 집으로 돌아왔다.
열의가 지나치면 가끔 생각의 균형을 잃는다. 휴일에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시골집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지 좀 된다. 연로한 부모와 같이 있으려는 것이다. 여름휴가 마지막 날 동생네도 모이기로 사전 약속이 되어있다. 그래서 더 습관처럼 움직였을 것이다. PCR검사 다음날 오전이면 날아오던 문자가 감감소식이다. 의식 한쪽이 꺼림칙했으나 그대로 출발하였다.
더웠다. 습도 높은 기온이 몸 안으로 계속 차오르는 듯 불쾌했다. 시골집에 도착하고 부모님 체크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읍내 농협을 방문했다. 휴일엔 할 수 없는 일이라 차일피일 미루던 숙제이다. 아버지가 주로 자전거를 이용해 장을 보신다. 엄마 말에 의하면 씀씀이도 변변찮은데 매번 계산이 틀리다며 돈을 흘리고 다니는 모양이라고 볼 때마다 하소연이다. 몇 차례 카드사용을 권해도 마땅찮아하던 아버지가 얼마 전 농협에서 현금 찾아 나오다 안 좋은 일을 겪은 후 순순해져 말없이 따르신다. 여러 장의 서류에 수차례 서명하고 후불교통카드 기능을 넣은 두 장의 체크카드가 발급되었다. 카드 뒷면에 각각 이름 적은 후 지급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다가 그냥 쓰시라고 하였다. 카드사용내역 문자를 내 휴대폰으로 받을 수 있게 신청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두 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짐작할 수 있으니 일면 안심이 된다.
느낌이라는 게 있다. 농협을 나서며 아무래도 개운치 않아 보건소로 전화해 검사결과에 대해 물었다. 전화번호를 확인하더니 0이 9로 잘못 입력되었다고 한다. 오전에 잘못된 그 번호로 문자가 갔겠다. 양성이니 지금 밖이면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머리가 띵 울린다. 160km를 달려와 부모님과 두 시간 정도 머물렀다. 미리 확인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이다.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근심 어린 표정인 부모님을 뒤로하고 시골집을 나와 곧 도착예정인 동생에게 전화했다. 마을 어귀에 일단 차를 세우고 동생도 고민에 빠졌다. 부모님이 밀접접촉자가 된 상황이니 난감하게 되었다. 코로나 초기 때와 달리 확진자 동선추적이나 공개를 하지 않고 경증이면 스스로 자가 격리하는 것으로 완화되었으나 다들 직장인인지라 혹시나 하는 염려를 접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동생마저 부모님 얼굴도 못 보고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덮쳐와 평범한 일상을 옥죄었다. 달랑 두 분만 남겨져 고요 속에 쓸쓸하기 그지없는 시골집 전경이 내내 따라온다.
동네 병원에 전화하니 이비인후과 대면진료가 가능하대서 다녀왔다. 의사가 진료실을 나와 별도 공간에서 환자를 살핀다. 코로나 변이바이러스 오미크론의 특징이 목을 공격한다며, 가래는 삼키고 아픈 목에 뜨거운 물 말고 찬물을 마시라는 따뜻한 응대가 그나마 위로가 된다. 5일 치 일반 감기약을 받아왔다. 검사일로부터 7일째까지 격리기간이다. 주말 빼고 3일을 출근하지 못하게 되어 사무실에 알렸다. 증상은 심하지 않았다. 약한 목 아픔에 간헐적 기침, 두통, 기운 없음 정도이다. 첫날 설사가 있었는데 다음날부터 괜찮았다. 문제는 전체적으로 무거운 기분과 지독한 우울감이다. 거기에다 조마조마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찾아왔다. 밥을 같이 먹은 아버지는 괜찮은데 오히려 엄마가 확진이 된 것이다. 가뜩이나 괴로운 마음이 천근만근 가라앉는다. 병원에서 7일 치 약을 타오셨다고 한다. 입이 있으나 할 말이 없다. 뜨거운 눈물이 핑 돈다.
낮과 밤의 경계가 제멋대로다. 약 복용 후 졸리면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났다가 다시 약 먹기 위해 끼니 대충 때우고 약 먹기를 반복하니 밤에 잠이 올 리가 없다. 베란다에 나가 잠들지 못한 맞은편 불 켜진 아파트 창을 세어보고 TV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억지 잠을 청한다. 그렇게 어찌어찌 격리 마지막 날을 맞았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했다. 격리기간 동안 더 살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이 괴롭더니 훨씬 괜찮다. 아침저녁으로 확인해 본 상태로 엄마도 그만하신 듯하다.
뜨거운 불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듯 아찔한 기분이다. 그 주말, 전화하면 분명 오지 마라 할 것을 알기에 연락 않고 시골집으로 내려간다. 엄마를 보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