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세어보다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by 연이은
20250405_140558.jpg


2주마다 아니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주말을 이용해 2박 3일 일정으로 시골집을 다녀온다. 시흥시 미산동 집에서 제천시 봉양읍 팔송리까지 대략 160km 정도 된다. 처음엔 주로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서 제천으로 빠졌다. 이렇게 가면 도로를 자주 갈아타지 않아도 되어 운전 중 갖는 긴장감을 줄일 수 있다. 요즘 길 안내를 검색하면 이전 보다 거리가 짧은 루트를 알려준다. 2016년에 개통한 광주원주고속도로이다. 영동고속도로 안산 원주 구간의 상습교통체증의 우회로 대안 외에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영향으로 만들어진 도로이다. 기존 거리보다 짧기도 해서인지 웬만하면 이 길을 안내받는다.

먹고, 입고, 쓰던 익숙한 것들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성격이라 뭔가 변화가 필요할 때 심리적 갈등을 심하게 겪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은 있는 편이라 용기 내어 다녀보기로 한다. 직장에서 출발하면 제2경인고속도로 통해 수도권제일순환고속도로와 광주원주고속도로 그리고 중앙고속도로에 접어든다. 이렇게 다니면서 의외로 터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어떤 형태든 분명하지 않고 앞뒤가 뒤섞이기 십상이다. 길 안내가 몇 미터 앞 등장을 반복해 알려주는 이름을 듣다가 문득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터널을 정신 차리고 줄 세워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여 어느 날 시골집 가며 암기 연습하듯 세어보았다.

대원 IC에서 빠져 성남이천로 접어들면서부터 헤아리기 시작한다. 이 전에도 한두 개 터널이 있긴 하지만 ‘중원터널’부터 시작한다. 다른 지역에도 같은 이름의 터널이 있다. 이 터널은 中院으로 성남시 중원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다음 직동터널, 백마터널, 광주 1 터널이다. 광주 2 터널을 앞에 두고서 초월 IC로 빠져 광주원주고속도로로 접어들면 바로 초월터널이다. 그리고 곤지암 1, 2, 3 터널이 줄지어 이어진다. 다음으로 산북터널, 금사터널, 대신터널, 양동터널이고 다시 삼 형제 지정 1, 2, 3 터널까지가 광주원주고속도로에 있다.

중앙고속도로를 접어들면 만종터널이 나오고 여기선 역순으로 금대 2, 1 터널이며 곧이어 강원도의 산 치악산을 넘게 된다. ‘은혜 갚은 꿩’ 전설에 따라 옛 이름 적악산에서 꿩 치(稚)로 치악산 이름이 유래한다. 본래는 붉게 물든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강원도의 산, 치악산을 깊숙이 치악 4, 3, 2, 1 터널이 꼬리 물고 이어지는 구간을 지나고 나면 제천으로 빠질 수 있다. 총 22개 터널이다. 이렇게 세고 보니 제법 많다.

운전하며 뇌 훈련하듯 반복해 터널을 연결해 보았다. 중원을 직통(직동)으로 달리는 백마, 금방 사랑에 빠지는 금사터널, 산북을 치는 소년, 양동터널에서는 양동이가 반사적으로 나온다. 공포영화 곤지암을 소환해 혼자 호들갑떨기도 하면서 터널에 집중하니 제법 장거리 운전이 지루하지 않다. 그중 지정 2 터널이 3㎞ 가까이로 길다.

터널 역사는 원시시대 동굴의 확장 및 토굴을 굴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인간 활동에 따라 배수, 수송 등 기타 여러 용도로 확대되었다고 본다. 터널의 기본적인 단면형상은 마제형(말굽형), 원형, 난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제형은 외력에 대하여 구조적으로 취약하지만 굴착단면이 작고 시공이 양호하며 여굴량이 적어 경제적이라 보통 배수형 터널에 많이 적용된다. 원형은 구조적으로 가장 안전하지만 시공이 까다롭고 굴착면적이 크므로 비경제적이며, 난형은 원형과 마제형의 중간정도로 본다.

우리나라 도로터널의 경우 두 개 병행터널에 한 개를 더하여 세 개로 건설한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사직터널이 광복 후 실질적인 첫 터널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본격적인 도로터널 건설이 시작되고 남산터널을 이룩하면서 조명장치, 환기장치, 대피시설 등과 새로운 터널공법을 계속하여 적용하고 환기방법이나 터널 내에서 방송정취가 가능한 통신시설, 안전시설, 입구의 조경 등이 개발되기에 이른다.

하루 외곽을 다녀오며 터널 안의 대피소와 나가는 곳 등 안내표식을 보면서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저 문을 통과하면 터널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까. 깊은 산중의 터널이라면 어떻게 나간단 말인가 하는 얘기를 나누었다. 다른 이가 곧 검색을 하더니 반대편 터널로 넘어가도록 되어있다고 말해 주었다. 터널이 양방향으로 나란하니 한쪽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대피공간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려서 멀미를 심하게 해서 차를 타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기차는 그나마 괜찮았다. 고적하기 그지없던 충북선 열차의 오래된 기억이 있다. 높은 철교 위를 지날 때나 시야가 깜깜해지며 굴속으로 들어간 기차가 굴을 빠져나오면 환호와 안도의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침목(枕木) 사이를 지나며 일정하게 흔들리는 열차 특유의 진동을 들을 때면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이유로 두근두근한다. 지나온 어느 순간, 터널에 갇혔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들어는 왔는데 출구가 보이지 않거나 어디가 출구인지 모르겠기에 방황하고 때로 끝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암울함에 가라앉던 구간, 구간이 있었다.

불쑥불쑥 하는 상념을 헤치다 보니 도착지이다. 인생터널의 출구인지 아니면 또 다른 터널입구에 서 있는지 모를 연로한 부모가 거주하는, 한적하고 아늑한 여덟 소나무 마을이 저만치서 손 흔든다.




keyword
이전 02화그늘의 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