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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은 Sep 23. 2024

시간의 우물

나와 시흥문화원

  2024년 8월 달력 아래에 연필메모가 있다. ‘27년 근무’, 1997년 9월 1일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당시 서른 중반이었던 나는 막연히 마흔까지만 다녀야지 했었다. 아마도 마음속에 도달하고 싶은 꿈과 이상의 세계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잠시 돌아서 나오고자 들어선 길이라 여겼는데 그대로 나의 길이 되었다. 어느덧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와 버렸다. 돌이켜보면 사회성 부족하고 대인관계에 원만하지 못한 내겐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뜨거운 청춘의 시간을 지나온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허리를 받쳐준 든든한 언덕으로 함께 해 왔다. 하루 3분의 1, 잠자는 시간 빼고 출퇴근 시간까지 더하면 하루의 대부분인 셈이다. 초반에는 토요일까지 근무였고 지금도 전시관 개관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휴일근무를 하고 있다.  

  어떤 것이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그 어떤 것은 다르게 평가되고 기억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부 사람인 나는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객관적이기 어려운 입장이다. 안을 흔들기 위한 밖의 바람도 있고 외부와 상관없는 내부의 흔들림도 있는 것은 어느 조직이나 비슷할 일이다. 나를 움직인 원동력은 무엇보다 사람이었으며 사람의 마음이었다. 고인이 되신 초대원장을 비롯해 여섯 분의 원장을 모셨고, 현재 일곱 번째 원장을 모시고 있다. 존재하는 일이란 공간을 벗어날 수 없고 대다수 기억의 배경도 공간이 우선한다. 현재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과거의 문화원을 그려보는 것으로 시흥문화원과 함께 한 인연들의 안부를 묻는다.

  전국 특별자치시․특별자치도․시․군 또는 자치구별로 1개의 원(院)을 두는 지방문화원은 ‘지방문화원진흥법’이 설립근거가 되는 비영리특수법인이다. 원장과 임원, 회원의 회비로 자체운영을 지원한다. 사업 및 운영비 예산의 대부분이 지자체 보조이며 그 외 국․도비 공모사업비가 차지한다. 시흥문화원은 1996년 12월에 당시 문화체육부장관의 설립인가를 필하였다. 문화원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개원식은 1997년 9월 12일이었다. 현재 시흥시보건소 자리인 대야동 구시청사 별도 조립식 건물에서였고 이후 지역문화의 계발, 연구, 조사 및 문화진흥사업을 전개하였다. 시민의 날 기념으로 시에서 주관하던 연성문화제를 이어받아 주관하고 문화강좌 개설과 문화유적답사 등 문화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다 2001년 2월에 소래초등학교 뒤편의 시흥시농업기술센터 2층 사무실 옆 작은 공간으로 옮기게 된다. 역시 조립식이었던 이곳에서의 2년 가까운 기간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외부환경과 내부조직 모두 피폐하였다. 말 그대로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나마 문화원다웠다고 추억하는 능곡동 구연성동사무소로 이사한 것이 2002년 12월이다. 지하 1층에 지상 3층이었다. 1층에 시흥역사자료전시관을 조성해 2005년 5월 개관 후 지금까지 이어 위탁운영하고 있으며, 3년여 걸친 시흥시사편찬사업도 이곳에서 완료했다. 그러다가 능곡택지지구가 개발되면서 2009년 7월 지금의 하중동 상가건물 일부로 문화원이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져보니 제일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있는 셈이다. 처음 이곳도 잠시 동안만 있을 예정이었던 것처럼 세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오래 있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대답도 비슷하다. 네, 어쩌다 보니…….

  대야동. 시청사를 정면에 두고 양 옆으로 조립식 2층 건물이 있었다. 그중 한 칸에 사무실을 두고 시흥문화원이 개원했다. 현관문 뒤로 격자무늬 시트지 붙인 우리 출입문을 열면 입구 가까이 내 책상이 있었다. 펜티엄 컴퓨터에 배불뚝이 모니터를 사용했고 전화선 이용한 모뎀연결로 인터넷을 막 배우기 시작했다. 근무 중일 때 철문은 열림 상태로 고정되게 줄로 묶어두었다. 문 열면 바로 시청 앞마당이었다. 낮은 천정에 형광등빛이 밝히는 사무실 안은 햇볕 가득한 밖에 비해 늘 어두침침했다. 1기 문화강좌를 개설하고 서예, 닥종이 인형, 신문지 공예 등의 교실로 2층을 사용했다. 주민의 호응과 참여율이 높았고 문화원에서 배우고 몇 년 후 지역 내 강사 활동으로 이어졌다. 

  신천동. 문화원이 있는 농업기술센터 건물은 조립식인데 오래되어 수명이 다 되었다. 한동안 비어 있던 건물로 문화원을 비롯해 몇 사회단체들이 일정기간을 예정하고 사용하게 되었을 때, 임시방편의 보수가 있었다. 무너지지 않도록 사방 모서리에 철근 받침대를 대고 건물을 돌아가며 지지대를 세웠다. 처음 이사와 집기와 책들을 정리할 때는 건물이 내는 작은 움찔거림에도 신경이 바짝 일어서곤 했다. 건물은 조심스레 걸어도 전체가 삐걱거리며 반응하고, 정신을 집중하면 위아래층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헐거워진 상태였다. 얼마 안 있어 이 건물도 분해되어 없어질 예정이다. 기다란 이층 난간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바라보곤 했다. 건물이 안고 있는 손바닥만 한 작은 마당에 키 작은 하얀색 나무 울타리에 쌓인 풍향계가 있고 그 옆으로 강우량, 온도, 습도, 기압 등을 측정하는 백엽상이 커다란 새집모양 안에 있다. 여름엔 몹시 더웠다. 단열이 안 되어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온도까지 달아올랐다. 더위를 피해 부채와 책 한 권을 들고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뒤쪽 철 계단에 앉아 있곤 했다. 농업기술센터를 등진 자세로 앉으면 정면으로 초등학교 뒷모습이 보이고, 나란히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이어 작은 테니스코스가 보인다. 플라타너스는 풍만했다. 봄에는 눈 날리듯 꽃가루를 피워내고, 여름에는 약한 바람도 무수한 잎으로 부풀리어 우수수 잎 지는 소리로 밀어내곤 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여름 한 낮 지친 정적 속으로 바람보다도 먼저 잎들이 쏠리는 소리가 닿았다. 이 플라타너스도 어느 순간 베어졌다.

  능곡동. 연성동사무소였다가 문화원이 사용하게 된 건물로 지하에 유물수장고를 두었고, 1층 시흥역사자료전시관, 2층 문화원 사무실과 문화교실 외 서고, 3층에 시립예술단과 시립합창단 그리고 시흥국악협회가 함께 사용했다. 지하수를 퍼 올리는 시설이 있는 지하에서 가끔 물난리가 났고 어쩌다가는 물이 나오지 않아 곤란을 겪었다. 건물과 마당을 둘러싼 울타리를 따라 나무들이 많았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 라일락, 목련, 향나무, 고욤나무, 꽃사과나무…… 많기도 한 기분이다. 나이 들면서 나무가 좋아진다.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면 든든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말동무를 삼을 때도 있다. 능곡택지개발로 인한 이전비용을 책정하기 위해 산림공원과에서 조사한 수목목록을 보니 이 외에도 도장나무, 철쭉, 회양목, 수수꽃다리가 더 있었다. 라일락이라 불리는 나무가 수수꽃다리다. 어느 해 모과나무는 꽤 여러 개 열매를 달았다. 장대를 이용해 떨어트린 모과를 한동안 데리고 있었다. 정자와 담벼락 사이에 끼여 괴로운 듯이 자라던 대추나무도 추석 즈음이 오자 실한 대추를 내놓았는데 놀라운 게 대추 한 알에 벌레 한 마리씩이 들어있었다. 키만 길쭉한 세 그루 은행나무에도 제법 은행이 열리는 걸 처음에는 몰랐다. 휴일을 이용해 일삼아 거두어 가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그대로 땅에 떨어져 묻힌 은행에서 싹이 나와 어느 해는 몇 사람이 옮겨 심겠다고 떠가기도 했다. 나도 손바닥만 한 마당이라도 있으면 은행나무 침대를 만들 정도로 대를 이어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가. 정문 앞 잘생긴 느티나무를 특히 좋아했다. 잎이 무성하여 여름엔 그늘이 깊고 가을엔 오래도록 잎을 날리고, 겨울에 함박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더없이 아름다운 성탄목이 되어 주었다. 

  하중동. 종합선물세트 같은 상가건물 일부를 차지하고 들어온 문화원이 내게는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병사처럼 느껴진다. 음식점, 노래방, 주점, 골프연습장, 찜질방 등등에 섞여 지방문화원의 원래 모습과 향기가 종종 다르게 투영되고 전달되는 경험을 한다. 전체가 커다란 울림통 같은 건물이라 악기 등 소리를 내야 하는 문화강좌는 민원 때문에 늘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겉모습과 달리 느닷없이 여기저기서 물이 떨어져 양동이 받치기 일쑤고, 비가 오면 외벽을 타고 안으로 스며들었다가 마르기를 반복해 창가 쪽 바닥이 들떴다. 홀로 우뚝한 건물을 휘감아 도는 겨울의 바람소리는 가히 이곳의 명물이다. 들을 때마다 새삼 기괴하여 놀란다. 1층 전시관 스프링클러가 동파로 터져 물바다가 되었던 날도 어느 겨울날이다. 이곳에서의 15년 넘는 동안 시간과 함께 축적된 빛과 그림자들도 어디엔가 스며들어 있겠다. 시간이 흐른 뒤 여전히 그립고 어쩌면 소중했던 지나온 길로 남아 반짝일지 모를 일이다. 

  드디어 2023년 6월 준공예정으로 시청역 인근 장현동 시흥시행정복합타운 내에 시흥문화원 독립원사 건립계획이 발표되었고, 현재 늦어지고는 있으나 어느 날 불쑥 그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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