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 길
물의 도시 베네치아, 예술의 도시 피렌체, 오래된 평화와 고요가 있는 성지 아시시, 성령의 나라 바티칸시국과 거대한 로마제국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남부유럽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기회를 만났다. 시린 바람을 품고 한 해가 시작된 1월, 7박 8일의 일정이었다. 그 후 한동안, 엄청난 것을 한꺼번에 맞닥뜨려서 생긴 놀라움 같은 여운 속에 있었다. 어쩌면 그 여운이 가능한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며 버스표, 영수증 한 장까지 버리지 않았고 말도 아꼈을 것이다. 관련 정보나 지식은 언제든 손바닥 안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란 필요 없기도 했다. 내 발이 걸었고, 눈이 보았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듣고, 생각하고, 흔들렸던 순간만이 그냥 내 것이다.
직장인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아줌마로 대표되는 3인의 무모한 자유여행이었다. 오로지, 한 달 계획으로 유럽여행 중인 동행인의 딸과 베네치아에서 만나는 것을 목표로 출발하였다. 나머지는 젊은 친구에게 맡기고 따라다니기로 무작정 용기 낸 떠남이다. 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풀어야 나갈 수 있는 관문처럼 날마다 새로운 날이 놓여졌다.
그렇게 다녀온 낯선 이국의 풍경이 하늘에 비행기 지나간 자국 스러지듯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매일을 적바림한 수첩과 사진, 기억을 줄 세워 본다.
금요일 밤사이 눈이 내렸다. 오전 9시, 성당 주차장에 모여 인천공항으로 이동했다. 내 티켓이 모바일로 신청이 안 되어 공항에서 기기를 이용해 발급받았다. 포켓 와이파이를 대여하고 마일리지 회원가입도 했다. 그러고는 12시 30분 출발예정인 비행기가 얕게 쌓인 눈으로 인해 4시간 지연되고 있다. 여느 경우처럼 염화칼슘을 뿌리지 않고 수동으로 눈을 치우느라 시간이 걸려 활주로를 한 곳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우 탑승하고도 비행기 동체 위의 눈을 쓸어내리느라 또 30여분 넘게 대기했다. 드디어 17시 20분 이륙하고 곧 기내식이 나왔다. 양식과 한식 중 선택이다. 한식 쌈밥을 골랐다. 파리 샤를드골공항까지 12시간 넘는 비행, 도착 2시간 전에 기내식이 한 번 더 나왔다.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환승하여 베네치아(베니스)까지 가는 일정이다. 가장 큰 고비가 환승이었다. 에어프랑스 탑승시간까지 4시간 공백을 믿었다. 그 시간 안에 환승방법을 익히고 시간이 남으면 프랑스 파리의 공기라도 느껴볼 예정이었다. 그런 여유시간을 인천공항 출발 지연으로 써버려서 곤란하게 되었다. 아시아나 기내 여러 승객이 환승을 걱정해 승무원에게 문의하는 걸 보며 우리와 같은 일행이 더러 있을 줄 알았다. 걱정을 한 보따리 안고 파리공항 도착, 최대한 서둘러 비행기에서 걸어 나오는데 한글과 영어로 우리 이름 쓴 종이를 들고 외치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에어프랑스 직원이 직접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비행기 앞까지 찾아왔다. ‘익스 큐즈 미, 쏘리’로 사람들을 헤치며 검은 피부의 그 직원을 따라 공항 내부를 숨차게 런닝맨이 되어 뛰었다. 공항 내 무인경전철로 1터미널, 3터미널 지나 2터미널로 이동, 검색대 통과해 다시 정신없이 뛰어서 에어프랑스 비행기에 올랐다. 베니스 환승객은 우리 셋뿐이었다. 낯선 얼굴에 다른 언어, 이제까지와 사뭇 달라진 공간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나이 든 승무원은 무뚝뚝했다. 기내에서 샌드위치를 받았던가, 먹지 못했다.
그렇게 베니스에 도착했으나 여행 가방은 우리가 탄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일이 코앞에 떨어졌다. 두리번거리며 안내소 직원에게 갔다. 눈빛과 표정, 몸짓이 예민해진다. 짧은 영어와 눈치로 먼저 번호표를 뽑고 대화 시도, 좌절. 주소, 가방색깔, 잠금장치 이런 단어를 주고받다가 다시 중단. 시간이 가고 있다. 더 이상 지나는 사람도 없다. 유럽여행 중인 일행의 딸이 공항 밖에서 통화를 시도했으나 공항직원은 본인이 걸 수 있는 번호를 달라며 통화를 거부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궁하면 통한다고 스피커폰으로 대화를 시도해 겨우 직원과 통화한 후 일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어둠에 갇힌 베니스 마르코폴로 공항, 만남의 기쁨보다 의기소침해진 마음이 앞섰다. 마지막 버스로 호텔 더 프라자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와 7시간 시차가 있다.
토요일 이탈리아 북부 베니스, 여행가방 없이 아침을 맞았다. 빵, 베이컨, 햄, 소시지, 요구르트, 계란 등으로 호텔 조식을 마쳤다. 우리의 맑은 초겨울 날씨와 비슷하다. 바람이 차갑다. 옷을 빌려 입었다. 물, 카날 그란데(운하)의 도시 베네치아. 수상도시답게 베니스 시내는 차가 다닐 수 없다. 수상도로에 바포레터(수상버스)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바포레토를 타고 처음 만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떼성당, 티치아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성당은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산(성) 마르코광장 주변에 산마르코 대성당과 두칼레 궁전이 있고 더 높이 종탑과 시계탑이 있다. 여러 인종의 사람들로 가득한 거대한 광장을 신기해하며 걸었다. 산마르코 성당 내부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정시마다 영혼을 깨우듯 종소리가 울렸다. 상점들이 늘어선 골목은 사람들로 가득해 부딪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비싸지만 수상택시인, 곤돌라를 타기로 했다. 탄식의 다리를 지나고, 물 위의 도시 골목골목 미끄러지며 구경했다. 보는 위치에 따라 감흥의 차이가 다르다. 좁은 수로를 빠져나가는 솜씨에 감탄하기도 했다. 물에서 냄새가 심했는데 가뭄으로 수면이 낮아져서라고 한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을 갔다. 유명한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했다. 잭슨 폴락, 피카소, 샤갈의 레인,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자코메티의 조각, 살바도르 달리의 기이한 작품, 칸딘스키, 앤디 워홀 등 잠깐 보고 지나치기가 못내 아쉽고 서운했다. 액자에 넣지 않고 그대로 전시한 작품이 있었다. 궁금함에 손을 대 보았다. 놀라 쫓아온 직원에게 미안하다.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미안함이 생생하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은 뉴욕 구겐하임 재단 미술관 중 하나이다. 페기 구겐하임은 30년간 베네치아의 별장에서 여생을 보냈다. 유명 미술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컬렉터이자 후원자로 살았다. 정성 들여 가꾼 정원에 조각 작품들이 잘 어울렸다. 엽서 같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 차례로 작품 앞에 서보았다.
이곳은 시간 단위로 교통권을 끊는다. 20유로짜리 1일 교통권을 구입하면, 종일 이 표로 버스나 트램(노면전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가까운 식당을 검색해 점심은 파스타, 튀김, 문어가 들어간 샐러드로 먹었다. 음식 먹고 계산서를 기다린다. 계산하기 위해 종업원을 부르는 것은 실례이다. 계산을 마쳐야 나갈 수 있다. 가방이 와 있기를 바라며 호텔에 도착, 안 왔다. 근처에 있다는 중국집을 찾아가 저녁 먹었다. 단무지도 나오지 않는다. 물도 사 먹어야 한다. 화장실도 유료이다. 물과 간식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원하는 식품을 필요한 만큼 담고 식품번호 확인하고 직접 금액스티커를 뽑아야 한다. 직원이 해주지 않는다. 마트와 식당 대부분이 오후 8시에 문 닫는다. 그렇게 돌아와 다시 202호 숙소 문을 열었는데, 가방이 깜짝 선물처럼 도착해 있다. 기뻤다.
일요일 호텔 조식 후 체크아웃 하였다. 오늘은 피렌체로 이동한다. 피렌체는 꽃이라는 뜻이다. 호텔 맞은편이 바로 기차 메스트레역이다.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남자 둘이 번쩍 가방을 들어준다. 단순한 친절인 줄만 알았는데, 플랫폼에 올라와서는 원 유로를 달라고 한다. 당황하였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한 것으로 대신했다. 주위로 그런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기차로 2시간 이동했다.
짐을 시간대로 정한 금액을 받고 보관해 주는 곳에 잠시 맡겼다. 가까이에 피렌체 두오모(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가 있다. 시간이 맞아 12시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입구에서 미사에 참여하려는 관광객을 입장시킨다. 평신도 전례자가 없다. 노(老) 신부님과 복사 한 명뿐, 복사가 독서와 기도를 다 한다. 난방을 하지 않아 성당 안이 추웠다. 여러 나라 신자들의 태도가 우리와 사뭇 자유로웠다. 더러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하는 모습은 경건하게 보였다. 피렌체 두오모(대성당) 지오토의 종탑은 ‘냉정과 열정 사이’로 더욱 알려졌다. 영화개봉 후 근 10년간 일본 관광객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여행의 안내자인 구글지도로 정류장과 타려는 버스를 검색하여 우리의 게스트하우스 비슷한 숙소를 찾아갔다. 전 입실 손님이 퇴실하지 않아 15시로 다시 약속하고 근처에서 기다려야 했다. 햇볕은 따뜻한데 바람이 불어 추웠다. 갈 곳 없는 이방인이 되어 타국의 거리 한 모퉁이를 서성거리며 공간을 기웃거리다 시간이 되어 들어갔다. 배가 고팠다. 가져온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익숙하고 반가운 맛이었다. 일층에 주방과 침대 하나, 지하에 화장실과 침대 둘이 있는 구조이다. 조명이 어둡다. 썩 정이 가지 않았다. 하룻밤이니 기껍게 생각하고자 애썼다.
피렌체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나섰다. 불빛에 흔들리는 아르노강의 물결, 보란 듯이 애정표현을 하는 연인들의 배경이 되고 있는 베키오 다리, 다리 위 눈부신 보석상점들, 피티 궁전 그리고 베키오 궁전과 시뇨리아 광장의 야외미술관인 ‘로지아 데이 란치’를 헤매듯이 걸었다. 광장과 야외회랑에는 책에서나 보았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포세이돈이 있는 넵튠의 분수, 다비드(다윗),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적장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사비나 여인의 겁탈, 메두사의 목을 든 페르세우스 등 역동적인 강렬함이 밤의 조명 속에서도 시선을 잡아끌었다. 조각들은 진품과 복제품이 나뉘어 있다.
낮과는 다르게 밤의 대성당은 하얗게 빛을 발하며 먼 곳에서 온 나그네의 발길을 잡았다. 저녁은 큰맘 먹고 이탈리아 티본스테이크를 먹었다. 고기 맛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다시 먹으라면, 글쎄다. 아침마다 밖으로 나서며 몸에 붙인 핫팩이 종일 몸을 덥히는 난로역할을 한다. 주어진 하루를 소비한 아쉬움과 뿌듯함, 피로감이 함께 있다.
여행은 호기심과 긴장으로 오감이 모두 깨어나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