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 속 세상, 장가계

여기 그 길

by 연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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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가 부러지는 관광이라 말하며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중국 호남성(湖南省, 후난성) 장사(长沙, 창사) 장가계(張家界, 장자제)를 올해 해외문화탐방지로 정하였다. 중국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여 일찍 인원모집을 하였다. 한국인 여행객이 많은 장가계는 우리나라 천 원권이 통용된다고 해서 환전하지 않았다.

9월 10일 일요일, 오후 7시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삼삼오오 모이고 여행사 직원안내에 따라 출국 수속을 밟는다. 오후 9시 10분 비행기로 약 3시간가량 날아 중국 장사 장가계 허화국제공항에 닿았다. ‘특색 있는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중국이 한 시간 느리다. 단체버스를 타기 위해 짐을 끌고 조금 걸었다. 요즘 40인 가까운 단체여행객은 거의 없다고 한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태어난 교포 3세 가이드를 따라 호텔까지 이동했다. 중국에서 대주점(大酒店, 다주뎬)은 호텔을 말한다. 붉은색 酒店 간판이 볼 때마다 낯설다. 처음 2층 버스인 줄 알았는데 아래 수하물공간이 있어 일반버스보다 좌석이 높았다. 현지기온 30도이다.

월요일. 호텔조식 후 오전 7시 30분 출발이다. 1박 호텔이라 짐을 전부 챙겨 나왔다. 대절버스로 장사에서 장가계까지 5시간 이동하며 휴게소 비슷한 곳에서 낯선 분위기를 체감한다. 우리의 닭칼국수 같은 음식으로 점심 먹은 후 본격 관광을 시작하였다. 30분 넘는 최장 케이블카를 타고 장가계의 혼이라 일컫는 천문산(天門山, 톈먼산) 정상까지 오른다. 아찔한 협곡과 벼랑에 붙은 귀곡잔도와 유리잔도 앞에 섰다. 유리로 된 잔도를 걸을 때는 덧신을 신어야 한다. 동선코스를 따라 이동해서 천문동(天门洞)으로 나온다. 해발 1,518m 산 정상 부근에 뚫린 커다란 구멍은 20여 년 전 외국 곡예비행 팀의 경비행기가 통과하면서 더욱 알려졌다. 천문동에서 중간지점까지 999개 계단이 있다. 몇 년 전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단숨에 내려갈 수 있다. 다들 망설임 없이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는데, 호기롭게 걸어서 내려가기로 한다. 현지가이드의 말리는 눈빛을 외면하고 선뜻 계단으로 내려섰다. 사진작가와 룸메이트, 여행사 가이드가 함께했다. 계단은 폭이 좁고 경사가 급했다. 일정 간격으로 넓은 면이 있으나 위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훨씬 길었다. 3분의 1이 정도 내려왔을까, 앞서 나가는 마음을 따라주지 못한 무릎이 신호를 보내온다. 후회까지는 아니었으나 경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 없으니 내려가야 한다. 대각선으로 또는 뒤로 천천히 그리고 안간힘으로 한 계단, 한 계단을 내려왔다. 신경이 온통 무릎에 머물렀다.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관리 한다. 잠시 머문 뒤 산 아래까지 셔틀버스로 내려왔다.

저녁은 돌아가는 원형테이블 앞에서 먹는 현지식이다. 정식이란 물고기와 육고기, 날개 있는 고기가 다 있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부터 3일 묵는 호텔에 들어 무릎에 파스 붙이고 쉬기로 한다. 호텔 창밖으로 길 건너 119 붙은 건물과 붉은 소방차 여러 대 보인다.

화요일. 비가 내린다. 오늘은 황룡동굴과 십리화랑(十里画廊)을 관광한다. 중국 제1호 국가삼림공원인 장가계 일대는 산, 바위, 구름, 물, 동물, 식물 등 6가지가 기이하다는 평가이다. 장가계를 원가계, 양가계 등 여러 코스로 이름 지어 구분한다. 아직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못한 곳이 있으며 계속해서 개발 중이라고 한다. 땅 속 지상이라 표현하는 황룡동(黄龙洞)은 수직높이가 100m나 넘는 동굴로 총 4개 층으로 되어있다. 동굴 안에 2개 강과 3개 폭포, 4개 연못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선착장이 나온다. 정한 인원이 탑승하면 출발해 동굴 속 조명이 비추는 다양한 종유석을 구경한다. 동굴 안은 무지개색깔만큼 다양한 조명 빛으로 화려하면서 기괴한 분위기이다. 보트가 멈춘 곳 위로 지그재그 이어진 계단이 보인다. 1,600 계단이라고 한다. 어제의 후유증도 있어서 무리하면 폐를 끼칠 수 있겠다 싶어 아쉽지만 그대로 돌아 나왔다. 동굴 내에 술 저장소가 있어 나오며 맛보자 했는데 갈림길에서 방향을 잘못 잡았다. 어찌어찌 나오긴 했으나 이상하고 불편한 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흡사 용의 뱃속이 이러하겠지 하며 동굴을 벗어났다. 야채비빔밥에 된장국, 피자처럼 자른 얇은 부침개, 생 목이버섯 회가 나온 점심식사가 입맛에 맞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비는 세차게 쏟아지진 않았으나 꾸준히 내렸다. 비 때문에 내일 일정인 황룡동굴을 오늘 가지 않았을까 짐작하였다. 이어서 모노레일을 이용해 십리화랑(十里画廊) 계곡을 감상한다. 우산은 시야를 방해하고 우의 입을 정도는 아니어서 비를 맞는다. 모노레일 위 미니열차를 타고, 다양하게 이름 붙인 기이한 봉우리와 암석이 즐비한 한 폭 산수화 속으로 들어간다. 소수민족의상을 대여해 입고 사진 찍는 일행들을 지켜보다가 다시 미니열차 타고 인간계로 나왔다. 다음은 금편계(金鞭溪), 금편 대협곡은 평지의 완만한 산책로 같다. 영화 ‘서유기’ 촬영지기도 한 주변이라 그런지 원숭이가 많았다. 길 가, 나무 위, 숲 속에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보인다. 심산유곡을 따라 걸으며 자연을 감상한다. 얇게 흐르는 넓은 강둑과 평탄한 산책길 주변은 비로 인해 음산한 분위기도 주었으나 맑은 날 다시 오고 싶을 만큼 느낌이 좋았다. 저녁식사 후 식당 앞에서 파는 깐 망고를 객실 수만큼 사서 나누었다. 조심한 덕분인지 무릎통증이 그만하여 다행이다.

수요일. 오전에 쇼핑센터 두 곳 방문이다. 게르마늄과 보이차 매장이다. 패키지여행에서 쇼핑도 관광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오기 쉽지 않고 또 다른 경험이라 생각하면 즐기게 된다. 하루에 같은 얘기 수십 번 반복해서 굳어졌을 특유의 말투가 인상적이다. 그 말투를 따라 하는 일행이 있어 분위기가 일순 화기애애하였다. 보이차 시음과 설명을 들으면서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언젠가 선물 받은 보이차를 끓여 먹어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점심식사 후 보봉호(宝峰湖, 바오펑호)로 이동하였다. 반 자연, 반 인공의 호수이다. 유람선 타고 길이 2.5km의 호수를 한 바퀴 돈다. 느리게 이동하다가 오두막 같은 곳 가까이 다가가 박수를 치면 각각 토가족(土家族, 투자족) 남녀가 난간으로 나와 노래를 부른다. 호수 둘레가 아기자기하면서 아름다운 동양화 풍경이다. 이어 하룡공원(贺龙公园, 허룽공원)으로 이동해 천자산(天子山, 텐쯔산) 원가계, 양가계 주변을 관광한다. ‘천하제일교’라 부르는 자연협곡다리와 영화 ‘아바타’ 촬영지인 원가계 풍경구의 원시림을 보노라니 딱히 설명할 수 없으나 어떤 힘에 눌리듯 무기력해지는 기분이다.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어 눈에 담고자 애썼다. 하산은 100층 높이 산 낭떠러지에 붙여 만든 326m 수직 강철구조의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초당 3m 속도로 순식간에 내려온다. 걷고 셔틀버스 여러 번 갈아타고 단체버스에 도착해 저녁 먹은 후, 야간에 펼쳐지는 ‘천문호선쇼’를 관람하러 이동한다. 천문동과 천문산 골짜기가 무대배경인 노천공연이다. 웅대하고 화려한 규모로는 어디에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장예모 감독이 참여해 만든 뮤지컬 형식으로 수백 명 출연진과 화려한 조명이 밤하늘에 퍼지는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넓은 공간이 무대인지라 주인공 역할이 여럿이라고 한다. 영어와 한국어 자막이 양쪽에 표시된다. 인간으로 변신한 여우와 마을청년의 시련과 고난을 뛰어넘는 사랑을 그렸다. 마지막 양쪽 골짜기가 서서히 맞닿으며 떨어져 있던 남녀를 만나게 하는 연출이 클라이맥스라 하겠다. 동서고금 통하는 사랑이야기로 마무리된 하루이다.

목요일. 오전 일정 역시 두 곳의 쇼핑이다.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라텍스 전시장과 퇴임한 한의학 박사가 진맥을 봐주는 한약방이다. 라텍스 매장에서 숙면에 도움 된다는 라벤더향 입힌 보라색 베개를 구입했다. 남녀용 모양이 다르다. 압축 포장해서 부피가 크지 않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한약방으로 이동했다. 대여섯 한의사와 통역사가 2인 1조로 앉아 일일이 진맥을 봐주었다. 심신이 허약하고 화가 많으며 장이 안 좋아 음식이나 약의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니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평소 들어온 얘기다. 점심 먹고 근처에 ‘연변농협 장가계지점’을 잠깐 들렀다. 중국 와서 많이 산다는 참깨 등 농산물이 인기였다. 식사 때마다 자주 나온 건조목이버섯을 샀다. 물에 불려 고추냉이간장이나 초고추장, 기름장에 찍어 먹을 수 있다. 작은 성냥갑만 한 크기 10개 들어있다.

마지막 일정으로 무릉원 내에 있는 황석채(黄石寨)를 간다. 삼림공원 입구를 지나 걷다 보면 세계 유명인의 이름을 새긴 돌 판과 연못에 띄운 가짜 연꽃이 시선을 잡는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셔틀버스로 이동하고 내려서 또 기다리다 이동하고 이젠 여기가 거기 같고, 저기 같은 비슷한 기암괴석들을 보며 걷고 계단 오르고 다시 케이블카 타고 내려와 오랫동안 또 다른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더 이상 어딜 가자고 해도 싫다 할 정도로 다들 지쳤다.

이젠 돌아가기 위해 처음 그랬던 것처럼 장사까지 5시간 이동이다. 중간에 저녁 먹으며 잠시 쉬었다. 중국 시간 00시 50분 비행기로 금요일 새벽 5시 인천공항에 도착해 4박 6일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비행시간은 길지 않으나 직전 버스로 이동하는 5시간과 맞물려 몹시 괴로웠다. 중국 출국검사를 받으며 일행 중 한 명의 여권이 없어진 사고가 있었다. 검색대 바구니에 짐과 함께 놓아둔 여권이 검색대 통과 후 사라진 것이다. 중국 공항 직원과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며 행방을 찾았다. 앞선 일행이 배우자 여권인 줄 알고 집어간 것이 확인되었다. 잠깐의 해프닝이었으나 일순 모두들 큰일이다 싶어 긴장하였다.

토가족 건축예술의 절정이라 평가받으며 오가는 길에 시선을 끌었던 ‘72기루’는 손오공의 72반 변실술에서 이름을 따왔다. 낮과 다르게 밤이면 화려한 조명과 함께 변신하는 기이한 건물은 갖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걷고 타고 내리고 오르고 하면서 다리가 부러질만한 하고, 천혜 절경에 눈이 멀고, 기가 막히는 ‘장가계’였다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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