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있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여기 그 길

by 연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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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탐방이 대만으로 정해지고 최종 27인이 출발하였다. 얼마 전 큰 지진으로 복구 중인 지역을 제외하고 일정이 짜였다. 인원이 홀수로 끝나서 우리 방은 3인이 묵게 된다. 문화원에서 공항까지의 송영버스를 준비했다. 오전 10시 30분 출발에 맞춰 여유 있게 인천공항에 닿도록 움직였다. 세 시간 안 되는 비행을 거쳐 대만 도원국제공항에 12시 50분 도착했다. 1시간 시차가 있다. 현지 기온 36도이다. 의욕을 저하시키는 더위를 생각하지 못했다. 단체버스로 이동해 높은 건물 1층으로 들어간다. 깍두기만 한 소고기가 들어간 ‘우육면’과 몇 가지 음식이 나왔다. 짧은 비행이었지만 사전에 신청한 기내식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남겼다.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인 ‘국립 고궁박물관’으로 이동한다. 23년 전 이곳에 와서 관람한 경험이 있다. 당시 다른 팀의 일행인양 섞여서 한국어 해설을 들으며 놀라움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무선수신기를 이용해 일행끼리 이어폰으로 설명을 듣는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곳이기에 넉넉하게 관람시간을 할애하였는데 개인적으로 왠지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실내에서 보는 바깥은 화창하니 좋으나 박으로 나가면 이내 습한 더위에 갇힌다. 버스가 일행을 스린 관저 공원 앞으로 데려다준다. 장제스(蔣介石) 총통 부부가 살았던 본채 외, 중국식 정원과 서양식 정원, 원예 전시관, 장미정원, 노천음악당, 예배당, 정자 등이 있다. 절정의 시기가 아니라 꽃이 그만하고 본채와 예배당 등 건물이 대체로 잠겼다. 우리 일행 외에 인적도 드물다. 잘 꾸며놓은 넓은 공간을 느긋하게 즐기기엔 더위가 너무 강적이다.

전형적인 타이완 사원이며, 타이베이에서 제일 오래된 사원인 ‘용산사’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불교, 도교, 유교가 혼합된 용산사 내부는 향 연기로 자욱하고 여러 사람 각자 열중한 모습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주었다. 바닥에 앉아 반달모양 붉은색 나무 조각 2개를 던져 소원점괘 보는 사람들이 발에 차이듯 한다. 앞뒤가 서로 다르게 세 번 연속해 떨어지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무슨 행사가 있는지 물건 꾸러미도 잔뜩 쌓여있고 벽면 가득 위패 모양이 빼곡하다. 용산사 가까이 있는 몬가야시장을 둘러본다. 코와 눈으로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배 갈라 내장을 제거한 개구리가 상자 가득 드러누워 있다.

탄산온천으로 유명한 ‘자오시’로 이동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이 호텔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조식 전에 온천욕을 하였다. 수영복과 모자 없이 입장이 안 되며 바닥이 미끄러워 슬리퍼도 필수이다. 호텔 옥상에 마련된 야외수영장 같은 온천이다. 물에 뜨는 연습을 핑계 삼아 숨 참고 발장구 치며 잠깐이지만 탄산온천을 즐겼다. 이후 지룽시로 해서 신베이시 완리구의 예류지질공원, 스펀 천등 날리기, 주펀 옛 거리를 경험한다. 파도에 의한 침식과 암석의 풍화 작용 그리고 지각 운동의 영향까지 더해져 만들어진 예류지질공원의 기암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절경이다.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버섯모양 바위, 아이스크림 바위, 선녀신발 바위 등 다양하게 이름 붙여 부르고 있다. 그중 알려진 것이 여왕머리 바위이다. 오랜 세월, 햇빛과 비바람으로 목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다. 언제 머리가 떨어질지 몰라 모조품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여왕머리 바위 앞에 사진 찍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은 지나 공원 끝 쪽의 가게어서 아이스믹스커피 한 잔 주문해 마신다. 여전히 더웠지만 바닷 가여선지 간간히 바람이 불고 날씨도 맑아 모두 들떠 보였다. 기차가 사람을 스치듯 지나는 스펀 철로에서 천등날리기 한다. 4인 1조로 커다란 5각형 모양의 4면으로 된 등갓에 각자 소원을 적고 안내자가 시키는 대로 포즈 취하며 기념촬영 한다. 신호에 따라 모서리를 잡고 있던 손을 동시에 놓으니 둥실 떠올라 금세 허공으로 멀어진다. 철로 가운데서 열중하다가 기차 온다고 누군가 소리치면 일제히 철로에서 한두 걸음 벗어난다. 코앞으로 짜릿하게 기차가 지나간다.

주펀 옛 거리로 향한다. 주펀은 바다와 산을 끼고 한때 광산으로 번성하다가 폐광 이후 쇄락한 매우 한적한 산골 마을이었다. 영화 ‘비정성시’와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알려지면서 오늘날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산비탈 지형이라 좁은 오르막 계단과 골목을 따라 독특한 상점과 음식점, 찻집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미로 같아 길 잃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가이드가 재차 당부하였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흑당버블티 원조 맛을 보며 돌아다녔다. 타이베이 씨저 메트로 호텔에 묵는다.

최북단 항구도시 단수이로 간다. 영국이 단수이에 영사관인 홍모성을 세우고 서양의 문물을 들여왔다. 언덕 위 홍모성에 9개의 국기가 300여 년에 걸친 역사적 변천을 펄럭이고 있다. ‘아홉 깃발 이야기’라고 새겨진 표지판을 요약한다. 1628년 스페인이 이곳에 San Domingo 성을 지었고, 1642년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쫓아내며 스페인이 파괴한 성채 근처에 Antonio 성을 지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홍마오청이다. 1724년 청나라가 홍마오청을 보수하고 4개의 성문을 증축하였다. 1863년 영국이 청나라와 영구 임대계약을 체결하면서 영국 영사관이 되었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1941년 말 일본에 봉쇄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인에 의해 관리되었다. 1948년 영국이 홍마오청으로 돌아왔고, 1972년 영국 영사관이 철수하며 호주가 관리하였다. 이후 호주가 타이완과 단교하며 미국이 관리하였고 1979년 미국과 타이완이 단교하며 홍마오청은 1980년 정식으로 타이완 소유가 되었다. 오랜 뒤척임을 말없이 지켜본 진리대학 주변의 나무, 연못, 돌덩이, 담벼락, 길바닥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담강고등학교(淡江高級中學) 정문을 무심한 듯, 무정하게 지나왔다.

대만의 랜드마크 101 빌딩 앞에서 사진 찍으며 잠시 입장을 기다리다가 빌딩 안 쇼핑몰을 지나쳐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전망대에 오른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거나 하나둘 잠시 앉아 쉬며 차 한 잔 마신다. 이곳 명물은 내진설계로 만든 노란색 강철 구체 ‘댐퍼보이’다. 660톤의 진자가 수십 개의 강철케이블에 매달려 있는 모양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최고 기록은 2015년 사우델로르 태풍 때 좌우로 최대 100cm가 흔들렸다고 한다. 댐퍼는 태풍이나 지진이 발생할 때 진동에너지를 흡수하여 건물의 흔들림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숙소 들어가는 길에 전문 제과점 들러 대만에서 유명한 파인애플 과자 등을 구입한다. 면세점에서 팔지 않는 53도 금문고량주도 한 병 샀다. 대만에서는 설, 추석, 단오 일 년에 3번 기념주를 만든다. 그리고 4년에 한 번은 총선당선기념주까지 4번 만든다고 한다. 별도 포장이 없어 750㎖ 술병을 짐 속에 넣어 왔다.

4일 차, 호텔체크아웃 후 장제스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을 찾았다. 대기의 뜨거운 열기가 사정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늘 밖으로 나서기 두려울 정도다. 중정기념당은 장제스가 사망하자 중화민국 정부에서 애도의 뜻으로 크고 아름답게 지었다고 한다. 본당 정면의 계단을 오르면 장제스 기념상이 있는 4층에 이르게 되고 1층에는 그가 사용하던 자동차 등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 패방의 ‘자유광장’이 보이는 흰 벽과 파란 지붕, 좌우에 주황색 지붕의 국가희극원과 국가음악당이 마주 보고 그 앞 양쪽으로 초록융단 같은 잔디와 조경수가 햇볕아래 창창하다.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열기 때문인지 관광객이 많지 않다.

2001년 첫 해외여행지가 대만 삼지시였다. 자매결연을 맺은 국제청년회의소 교류공연단 일원의 부모 자격으로 갔었다. 당시 구체적인 정보 없이 따라다녔기에 삼지시가 어디쯤일까 늘 궁금했다. 다시 대만을 오게 되어 적당한 틈을 봐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타이완의 행정구조에 대해 장황히 설명하였으나 삼지시 위치를 모르는 듯했다. 돌아와서 다시 알아보니 신베이시(新北市) 싼즈(三芝) 구이다. 아마도 한자 발음이 우리와 달라 알아들을 수 없었을 듯하다. 신베이시는 대만의 직할시로 그 안에 29개 구가 있다. 타이베이현에서 2010년 승격하였다. 수도인 타이베이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 우리의 경기도와 비슷하다 하겠다.

싼즈구가 단수이구와 인접해 있으니 23년 만에 어느 골목을 스치듯 다시 지나왔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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