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외로움과 수세적 열망을 보다

여기 그 길

by 연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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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트 항공 비행기가 칭기즈칸 공항에 닿고 현지 가이드와 만나는 중에 내 시선은 창밖으로 가 있다. 뭉게구름 선명한 파란 하늘 아래 넓은 목초지가 펼쳐지고 멀리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공항 건물 하나만 달랑 서 있다. 공항이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생소하게 아름다운 느낌이 있었던가 싶다. 그렇게 첫인상에서, 더없이 고요하고 적막한 땅, 끝없는 초원 위 이동식 유목민 가옥 게르가 외로이 엎드린 샤먼의 땅, 야생의 땅 몽골이 무작정 내 안으로 들어왔다. 몽골 면적은 한반도의 7배가 넘는 크기지만 전 세계 독립국 중 가장 낮은 인구밀도를 가진 나라이다. 그 인구의 3분의 1이 수도 울란바토르에 몰려있다.

공항을 벗어나 한동안 초원이 이어지다가 건물이 하나 둘 나타나고 도로에 차들이 정체되기 시작하면 시내가 가깝다는 신호이다. 사람들 모습이나 거리 풍경이 왠지 낯설지 않다. 대로 옆 우뚝 선 호텔에 짐을 풀고 산책 겸 밖으로 나왔다. 호텔을 등지고 오른편이 살짝 오르막이다. 오래된 느낌의 건물과 골목에 인적마저 드물다. 어둠이 내리지 않은 시간인데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사람이 앞을 막아서며 뭐라 말하고 웃기까지 한다. 놀라 피하듯 길 건너 맞은편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붉은색이 강렬한 사원(寺院)으로 향했다. 도로가에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하는 수행도구 마니차가 있어 돌려본다. 우리의 70년대가 연상되는 오래된 도시 분위기가 있는 반면, 마치 구 도시와 신도시로 갈라지듯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높은 건물에 젊고 밝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가 나온다. 처음 놀란 마음이 호기심과 의욕을 잃게 해 그냥 되돌아왔다. 숙소 벽에 걸린 적적하면서 고즈넉한 게르 그림이 위로가 된다.

공원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며 몽골 제일의 휴양지로 인정받고 있는 고르히 테를지국립공원 단지에는 여러 로지 캠프와 관광명소들이 있다. 일행의 대다수가 초원 야생화 트레킹을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3일간 체체궁봉, 야마트산, 엘트산을 오르는 일정이다. 첫날 복드항산의 최고봉 체체궁봉 트레킹을 한다. 1620m 만취르 사원에서 시작해 체체궁 들머리 2256m를 찍고, 하산은 반대편 투르호르흐 계곡까지 걷는 17km로 약 7시간 트레킹이다. 초보자도 가능하다는 안내였으나 현장에 오니 스스로 의심이 든다. 주위에 불편을 주게 될까 걱정이다. 자신 없으면 차량에 대기해도 된다는 가이드 말에 그럴까 했으나, 일행이 약한 것은 마음이라는 걸 일깨우며 용기를 주었다. 한발 한발 걷기를 시작한다.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다. 울창한 숲 아닌 초원길이 긴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으로 정상을 향해 이어진다. 스틱사용도 처음이고 등산화도 길이 들지 않은 상태였다. 좀 걷다 보니 장갑 한쪽이 없다. 포기하자니 아들이 사준 새것이라 아까운 마음이다. 뒤돌아 뛰어가니 주워 들고 오던 누군가 건네준다. 반갑고 고마웠다. 사방 펼쳐진 드넓은 초원 위 일행이 작은 개미들 같기만 하다. 긴 겨울이 지나고 잠깐의 여름에 온갖 야생화무리가 저마다 힘껏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정취이다.

일반 등산화보다 목이 짧았으나 발목을 보호하기 위한 등산화 목에 복숭아뼈가 닿아 아파오기 시작했다. 참아내야 하는 통증이다. 고락(苦樂)이 아닐 수 없다. 한 줄로 길게 오르다가 잠깐씩 쉬기를 반복하니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이다. 몽골인의 민간신앙 어워(성황당)가 세워져 있다.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나, 밑져야 본전일 테니 너나없이 그렇게 한다. 이곳에서 도시락 점심을 먹는다. 누군가는 도시락을 들고 이 높은 곳을 올라왔겠다. 한여름이지만 춥다. 바람을 피해 바위 아래 자리를 잡는다. 엄청난 대자연 속에서 먹는 밥이라니, 맛은 모르겠으나 그저 모든 것이 황송한 마음이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올라온 반대편으로 내려오며 마을이 가까워지니 어워가 자주 보인다. 산행 중에 화장실이 없다. 급하면 숲 속으로 들어가 해결해야 한다. 멀리 마을과 가이드가 말한 15인승 카운티차량이 보인다. 볼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곳은 예전 우리의 재래식 화장실보다도 못하다. 차라리 숲 속이 나을 뻔했다. 굴러가는 게 용할 정도로 낡고 오래된 카운티 차량이 여러 번 시동 끝에 겨우 일행을 큰길에 대기한 버스까지 데려다주었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 한 고갯길을 지나오며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테를지국립공원 내 게르 캠프에 도착했다. 4인이 숙박만 할 수 있고 식사는 별도 식당에서, 샤워와 화장실도 별도 공동시설이다. 처음에 전통식으로 가운데 불을 피우는 구조였으나 관리상의 문제로 바꾸었다고 한다. 해가 지면 기온이 내려가 온돌이 들어온다. 오늘 무리한 산행이 걱정되어 근육이완제를 한 알 얻어먹었다. 단지 안에 식당이 있다. 아침은 뷔페식으로, 저녁은 주문에 따라 여러 메뉴가 나온다. 몽골 전통음식인 양고기 허르헉은 저녁마다 나왔다. 보드카를 곁들인 저녁으로 흥취들이 오른다. 밤 9시가 넘어도 완전히 어둡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저 언덕너머 무엇이 있을까 가보고 싶어진다. 풀밭에 누워 큰 별이 나오길 기다리며 은하수를 감상하고 돌아와 뜨끈뜨끈한 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다음날 산행은 포기하고 혼자 게르에 남기로 한다. 어제의 무리를 달래고 내일은 숙소를 떠나는 날이니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한나절 주어진 혼자의 시간에 설렌다. 함께 아침을 먹고 일행은 바로 버스로 향하고 혼자 게르로 돌아왔다. 편한 신발로 주변을 산책하려는데 보조가방이 없다. 여권과 함께 항상 몸에 걸고 다녔는데, 있을만한 곳을 다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순간 머리가 띵하니 울리며 하얘진다. 드디어 대형 사고를 치는구나, 여권 분실이라니, 어째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우선 생각나는 곳이 화장실과 식당이다. 황망한 정신으로 가 봤는데 없다. 다른 데는 가지 않았다. 쓰는 언어가 다르니 마음껏 물어볼 수도 없다. 일행이 산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을 하니 그동안 지옥일 것이다. 마침 가이드가 버스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정을 말했다. 있을만한 곳을 찾아봤다고 하니 식당으로 가서 매니저에게 묻는 듯하다. 매니저가 카운터 아래에서 가방을 꺼내 건네준다. 아, 마치 되살아난 기분이다. 가이드는 떠나고 잠깐의 엄청난 불행이 지나가고 난 후, 그만큼 밀려드는 행복에 감사하였다.

방목하는 소와 말들을 흔히 본다. 게르 앞까지 올라온 황소가 태연히 풀을 뜯는다. 사람, 동물, 자연의 경계가 없다. 예전 중학생 시절 설악산 수학여행 가서 액자에 담긴 에델바이스(솜다리)를 사 와 간직했던 기억이 있다. 이곳에는 우리의 민들레만큼이나 흔하게 핀 꽃이 에델바이스다. 운동장의 개미만 한 존재감으로 고요에 잠긴 주변을 거닐고 게르로 돌아와 차를 마신다. 게르 안에서는 물을 끓일 수 없어 비치된 보온병으로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온다. 비가 잠깐 지나간다. 이 또한 좋다. 지루함을 느끼기 전에 오전 트레킹을 마친 일행이 돌아왔다. 오후에 현지 유목민 게르를 방문하여 마유주와 요거트, 치즈를 시식한다. 어린 두 소년이 익숙하면서 수줍은 표정으로 우리를 대한다. 관광객을 맞이하고 받는 약간의 사례금으로 아이들 학용품 등에 보탠다는 가이드 설명이다. 말 타고 강을 건너는 체험은 비로 인해 말과 함께 사진 찍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근처 높이 30m 이름난 거북바위 보고 기념품가게에서 낙타털로 만든 낙타인형을 몇 개 고른다.

고향집 사랑방 같은 게르와 인사하고, 정상의 포효하는 늑대상으로 유명한 엘트산 트레킹에 나선다. 완만한 초원과 갖가지 야생화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구간이다. 거대하지만 몽글몽글한 바위들도 친근한 느낌이다. 부드러운 능선의 걷기 좋은 길이지만 역시 등산화로 인한 통증으로 속앓이 하며 걸어야 했다. 이 고통이 더 오래도록 이곳을 기억 속에 저장할 것이다.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울란바토르로 이동한다. 한국식당 앞에 도착해 점심 먹기 전 버스에서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했다. 오후일정으로 스테인리스 250톤이 들어간 높이 40m 거대 칭기즈칸 기마상과 시내 수흐바타르 광장, 몽골국립역사박물관을 관람하였다. 몽골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 내부에 사람이 많았다. 드넓은 초원 위 압도적인 크기로 우뚝한 칭기즈칸 기마상 주변으로 낙타 타기와 매 체험을 할 수 있다. 눈 가린 매를 팔뚝에 잠시 올렸다가 날려 보낸 외국인 소년이 부모 쪽으로 뛰어오며 ‘so heavy!’ 외친다. 고비 캐시미어 매장도 잠시 들렀다. 좋아 보이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저녁까지 먹은 후에 첫날 묵었던 호텔로 다시 왔다.

다음날 새벽 5시 일어나 이동한다. 이른 시간이라 호텔에서 샌드위치와 과일, 요거트를 담아 아침으로 나눠주었다. 항공기마다 스틱 기내반입 가능여부가 다르다. 공항직원에게 물어도 대답이 각각이다. 캐리어가 작아서 올 때와 마찬가지로 큰 가방의 일행에게 스틱을 부탁했다. 몽골 출국심사에서 별일 없었는데 국내 입국심사에서 짐 내부검사를 요구받았다. 호텔에서 준 음식이 문제였다. 모두들 어느 순간 먹었는지 버렸는지 나만 그대로 있었다. 공항 검색대에서 바나나, 사과, 샌드위치를 압수당하고 내용물을 직접 기록하고 서명까지 했다.

어느 때보다 희로애락 출렁이는 여행이었다. 짐을 기다려 스틱을 돌려받으며 신세 많았다고 인사한다. 건강하자고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 않겠냐는 생각지 못한 대답에 순간 뭉클하였다. 정년을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정한 이번 일정은 마치 내 삶의 축소판 같았다. 생태적으로 외로우며 수세적 열망 가득한 나, 그리고 몽골.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인생이 무거웠다. 마지막으로 시체육관에서 PCR 검사를 하고 귀가했다. 그리고 다음날 코로나19 확진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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