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 길
우리나라 전국 시․군․구 자치단체마다 1개 원(院)의 지방문화원을 두고 있다. 일반 공익법인의 비영리법인과 구별되는 지방문화원진흥법에 의한 특수법인이다. 특별, 특수가 붙으면 차이가 있고 그 다름을 구별하는 세부내용에 대해 충분히 잘 알아야 한다. 보통은 큰 묶음인 ‘대부분’으로 비슷한 것들과 함께 묶어 해석해 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 해석에서 작은 차이를 구별하지 않으면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런 일로 타 기관과의 업무에서 생기는 오해와 어려움을 종종 경험하였다. 지방문화원은 동적이기보다 정(靜)적이며, 양적이기보다 질(質)적인 단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시대에서 지속 존립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일본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보존의식이 어느 나라보다 높으며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서로 간 네트워크도 견고한 편이다. 지역 내 문화 환경과 여건변화에 맞추어 지방문화원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고자 우리와 비슷한 기관을 방문 학습하기 위한 일정이 이번 연수였다. ‘우수문화원 관계자 선진문화기관 연수’라는 제목으로 전국 200여 개가 넘는 지방문화원 중에서 마포, 은평, 양천, 동대문, 강북, 부산북구, 부산연제, 군위, 제천, 논산, 예산, 아우내, 고창, 울진, 밀양, 창녕, 청원, 전주, 원주, 동해, 김해, 청송, 포항, 과천, 경기광주, 평택, 시흥의 직원 또는 사무국장 그리고 연합회 관계자 포함 29인이 함께했다. 고향인 제천시 봉양읍 마곡리 사는 이모가 매일 운동장에서 연습한다던 것이 충북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기 위한 ‘봉양 파대놀이’였음을 연수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생각지 못한 돌발 상황으로 출발서부터 색다른 고장에 대한 신선함과 집중력을 놓치고 말았다. 다가갈수록 저만치 멀어지며 손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먼 꿈속 같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찾아온 손님을 안 좋게 돌려보낸 후회와 정성 어린 선물을 소홀히 취급한 듯 미안함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다듬어 본다. 2015년 오월의 반짝임이 묻어 있는 사진 속 그날을 마주한다. 여백과 행간에 머물러 있는 나를 찾는다. 바라보고, 머뭇거리고, 뒤처지고, 두리번거리는. 5월의 눈, 아오모리 국제공항, 오이라세계류, 모리오카, 가쿠노다테 무사저택, 다자와 호수, 다쓰코상, 산록소 플라자호텔, 아키타 현, 정령사상, 아키타 뷰, 도와다코, 아키타 공항. 이런 단어가 흔들린다.
일요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두 시간여 만에 일본 아오모리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일본 동북지역인 아오모리는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푸른 숲을 내세우는 고장이다. 한국 관광객이 가장 적은 곳 중 하나이며 이 지역 관광의 초점은 ‘자연’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자로 靑森, 푸른 숲이란 뜻의 아오모리는 혼슈의 최북단에 위치해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홋카이도와 마주 보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너도밤나무 원생림과 일본 제일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사과로 유명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축제이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네부타 축제로도 알려진 곳이다. 첫 일정으로 아오모리현 종합사회교육센터를 방문하니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다. 간편한 점심 후, 우리의 영상미디어센터 기능과 유사한 영상문화체험센터가 있는 방송제작 등의 시설을 견학하였다. 그리고 1988년 세계최초 해저터널이 완공되기까지 80년간 북해도의 하꼬다테와 아오모리항을 오갔던 배인 ‘하꼬다마루’와 아오모리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피라미드 모양의 쇼핑몰인 아스팜 전망대를 탐방하며 여행에 몰입해 즐겨보러 애썼다.
다음날 월요일, 히로사키로 이동해 사과공원을 둘러보았다. 사과꽃 축제기간이었으나 시기가 일러 꽃이 만개하지 않았다. 인적 없는 넓은 들녘에 띄엄띄엄 키 작은 사과나무 오도카니 있고 검은 나무색 농장건물이 침묵 중인, 너무 한적해 외롭기까지 한 풍경이었다. 한적한 사과공원 분위기를 밀어낸 것은 히로사키성과 히로사키 공원의 능수버들 벚꽃이었다. 연분홍 꽃잎이 유혹하듯 흔들리는 나무아래서 깔깔대며 추억을 찍고 다시 공식방문으로 히로사키시립동부공민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지방문화원과 흡사한 기관이 공민관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역 곳곳에는 특산품 사과를 가공한 상품이 갖가지 종류로 개발되고 있다.
처음 아오모리 국제공항을 나서며 너무나도 선명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에 다른 세상인 듯싶었다. 시리듯 맑았던 공기까지 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오모리시 핫코다산 주변은 세계에서도 이름난 폭설지역이다. 2025년 2월에 아오모리 스카유 인근 지역에 5미터 되는 적설량이 뉴스로 보도되었다. 겨울에 스키로도 유명한 핫코다산과 이와키산의 산등성이 하얀 눈이 그림처럼 남아 있다. 7월은 되어야 눈이 녹는다고 한다. 도로를 따라 긴 나무막대기가 일정하게 세워져 있는데 폭설이 내렸을 때 길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이라고 한다. 폭설이 쌓이면 지상의 경계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일부 도시에선 도로바닥에 열선을 깔아 쏟아지는 눈을 녹이기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버스 운전석 높이까지 빙벽처럼 쌓인 눈이 5월 중순의 계절을 의심케 하였다. 어린나무의 허리까지 눈이 닿아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더니 평지의 나무들은 기지개 켜듯 신록과 꽃잎을 밀어내고 있다. 길 위에 겨울과 봄이 가지런히 손잡고 있다. 이튿날 숙소인 오이라세계류호텔로 이동하며 본 풍경이다. 아오모리현과 아키타현의 경계에 있는 도와다호수의 풍부한 수량과 그 물줄기가 만들어낸 오이라세계류는 태초 정글인양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끼 낀 바위 사이 재잘거리는 물줄기와 크고 작은 폭포를 즐기며 트레킹 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화요일, 이와테현 모리오카를 경유하여 가쿠노다테로 이동하였다. 가쿠노다테는 역사 속의 무가저택과 벚나무가 아름다운 작은 교토라 불리는 명소이다. 센보쿠시 지정문화재인 이시구로 무사저택 구석구석을 엿보듯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모리오카 지명은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 장편소설 ‘칼에 지다’로 익숙하다. 일본 역사에서 격변의 한 시대인 막부 말기의 신센구미 얘기를 다룬 소설로, 주인공이 평생 그리워한 고향 모리오카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 가장(家長)이란 이름의 무게감이 마지막까지 남았던 이야기의 주인공은,
<새로운 세상을 살아서 어느 날인가 아비와 함께 모리오카에 돌아가자. …… 아아, 보인다. 눈 녹은 이와테산, 남으로는 하야치네산, 북으로는 히메가미산, 기타카미강과 나카쓰강의 강물이 만나는 그 앞으로 모리오카 성이 우뚝하고 …… 하늘은 푸르고 넓게 펼쳐졌고 그 끝에서 맑은 바람 불어오누나. 모리오카의 바람이야. 어쩌면 이리도 맛난 바람이더냐.> 이렇게 그리워했다. 하늘과 들을 찬찬히 눈으로 짚으며 감상에 젖어본다.
아키타현의 다자와 호는 수심 423미터로 일본에서 제일 깊어 겨울에도 결코 얼지 않음을 자랑한다. 다츠코히메 전설을 담은 신비의 호수이기도 하다. 다자와 호수와 금빛 다쓰코상 동상은 우리 TV드라마에 등장하며 그 인기로 일반에 알려졌다. 한류드라마 바람을 타고 외진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수요일은 아키타 생애학습센터와 아키타시 서부 공민관 그리고 아키타시 북부 공민관을 답사하였다. 예정한 공식방문을 마치고 국가 중요문화재인 빨간 벽돌관 포함 3개의 건물로 구성된 벽돌 향토관인 아카렝가향토관을 방문하였다.
4박 5일의 마지막 날, 733년 야마토 조정이 최북의 방비로서 쌓아 올린 성문을 당시 공법 그대로 재현한 아키타 성터를 둘러보았다. 일행은 공적인 장소를 방문할 때 정중하고 진지했고, 일반 관광지에서는 천진난만했다. 집을 향해 아키타공항까지 이동하는 면면으로 적당한 피로가 내려앉는다. 그 뒤를 잠시 밀어두었던 일상이 근심과 안도의 얼굴로 다가선다.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