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의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by 연이은
[꾸미기]20250517_140439.jpg


제목이나 내용이 분명하지 않은 영화 중 한 부분을 가끔 말하게 된다. 외국의 개인 변호사 사무실 같은 곳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여인이 근무하고 있다. 뚱뚱한 몸매에 굼뜬 동작, 심드렁한 음성이지만 편안하고 능숙하게 사람을 대하고 업무 처리를 한다. 서비스업인 유럽 항공사 승무원 중에도 나이 지긋한 경우를 종종 본다. 여직원을 사무실의 꽃이라 여기는 우리 사회 정서와 분위기로 한 번 더 눈여겨보게 된다.

영화의 주변 설정일 뿐인 짧은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는 것에 그다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많이 먹고서도 직장 생활하고 있을지 모를 내 모습을 잠깐 상상해 본다. 그러면서 내 주위, 우리 사회의 반응은 어떠할지 나름 짐작해 보는 것이다.

지방문화원에 근무한 지 햇수로 28년을 맞았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시간의 축적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한 분야의 전문적인 업무만이 아닌 문화와 행정 전반을 다루었다. 업무 특성상 눈에 보이는 성과나 실적을 따지는 면에 있어서 냉정하기보다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었다. 따라서 일에 대한 책임감을 그다지 자각하지 못했다. 사회성이 부족해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데 부담이 앞서 일의 성취감과 보람도 충분히 즐기지 못하였다. 얻어 입은 옷처럼 겉돌았던 첫 마음이 스쳐간다. 어정쩡한 자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태풍 같은 비바람도 몰아쳤고 의도치 않은 작은 일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시련에도 주저앉지 않았다. 생계유지라는 큰 고난이 방패가 되어 모든 시간을 버티게 했다. 시행착오들이 세월과 함께 쌓이며 자랑스럽지도 그렇다고 부끄럽지도 않은 이력의 근속 연수로 남았다.

얼마 전 주무관청의 담당직원이 인사발령으로 바뀌고 수인사차 들렀다. 일하는 여성이 많음에 대해, 요즘 어딜 가나 여인천하가 돼가고 있다며 가벼운 말이 오갔다. 꽃밭에서 좋겠다며 되받는 말에,

“꽃도 꽃 나름이지……” 하는 대꾸가 따라 나왔다. 순간, 다 같이 웃어 넘기기는 했으나 가히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기고 말았다. 나를 포함해 네 명의 꽃(?)이 있었으나 씁쓸한 웃음 뒤끝을 시원하게 털어버리지 못했다. 받아칠 적당한 말 뭐 없어요? 옆구리 치며 나지막이 물어오는 옆 직원을 향해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찮은 농담, 우스갯소리에는 그저 그에 걸맞도록 가볍게 웃어넘겨야 예의 아니겠는가.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말속에 뼈라도 있는 듯 쉽게 소화되지 않았다. 이 불편함은 무얼까, 왜일까 되씹는다. 그건 대화 속에 은연중 ‘여자는 꽃, 사무실의 꽃은 여직원, 여직원인 나는 꽃(?)’ 이런 공식의 관념이 오래 굳어 익숙해져 버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명랑하고 풋풋한 청춘에서 멀어져 이젠 시드는 일만 남은 꽃과 동일시된 이유였다. 의기소침과 쓸쓸함을 털어버리려 했으나 가벼워지기 쉽지 않은 마음의 그늘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싱그럽고 예쁜 딸아이가 외출준비하며 화장을 한다. 민낯 그대로가 더 예쁠 때인지라 아까운 마음에 한마디 했더니,

“화장은 예의야!” 한다. 그 말을 들은 남동생 즉 딸아이 외삼촌이,

“니네 엄마는 왜 그렇게 예의가 없냐?”라고 말해서 그 자리에 있던 식구들 모두 웃음이 터졌었다.

한 외국계 회사에 취업한 한국여성이 평상시 하던 대로 예쁘게 화장한 얼굴에 위아래 잘 차려입고 출근하니 외국인 동료가,

“오후에 파티 있어?”라고 물었다는 어느 잡지의 글도 생각난다.

평소 즐겨 듣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아침에 하고 저녁이면 지우는 화장에 대한 견해에도 일면 수긍하는 마음이다. 딸아이 표현대로 예의 없이 늘 용감하게 민낯으로 사회생활에 섞여드는 나 같은 직장인을 두둔하고 편들려는 게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면서 오래가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청림(靑森)을 기웃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