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일은 생기고 벌어진다, 자연발생적으로. 직원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싱겁게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있다.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뀌어 필통 위에 두면 수신전화를 알아채기 쉽다. 이름 두 글자가 뜬다. 남동생이다. 예사롭지 않은 말투로 어젯밤 무슨 꿈을 꾸었는지 묻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는 동안 일정한 간격으로 꿈속을 경험한다. 그 그림자를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차이가 있을 뿐, 꿈은 자연스러운 마음현상이라고 들었다. 평소 두 세상을 오가듯 꿈속에 익숙한 편이지만 간밤은 별다르지 않았다. 얼핏 지나가던 새벽녘의 몽롱한 배경을 잠깐 더듬어 보았다.
“아버지가 새벽에 배론 다녀오시다가 사고가 나셨는데, 안 좋데…” 말끝이 흐려지며 울먹인다. 일순 머릿속 화면이 바뀐다. 직원들 모르게 일어나 자리를 옮긴다. 뇌출혈, 수술, 중환자실 이런 단어가 불청객같이 치고 들어온다. 저절로 다소곳한 심정이 되어 앞뒤의 시간을 반성하듯 더듬는다. 여느 날과 다른 신호가 마음을 두드렸는데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닌지. 오늘이 화요일, 팔월, 주말도 아닌데 배론성지길을 왜 가셨을까, 아무리 되짚어도 서로의 연결고리가 찾아지지 않은 채로 갑자기 모든 게 낯설고 아득하다. 영원히 존재할 수 없으니 언젠가는 각자 이별의 순간을 맞는다. 그날이 오늘인 걸까. 방향 모르는 두려움과 맞서고 있을 아버지와 엄마를 생각하니 무력감에 발밑이 푹푹 꺼진다.
아버지는 시골살이 근거리 이동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이용하였다. 처음에 면허 없이 타다가 자식들 성화에 면허를 땄다. 엄마 태우고 성당을 다녀오거나, 집과 떨어져 있는 밭에 다니느라 큰 도로를 달리기도 했다. 지나는 행인을 건드린 일이 있었고 밭두렁을 타고 넘거나 트럭을 피해 길바닥으로 쓰러지기도 하였다. 이 밖에 우리가 모르는 사고도 간혹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조금 더 안전하다 싶은 네 바퀴 오토바이로 바꾸었다. 우린 틈날 때마다 엄마에게 아버지 오토바이 타지 말라고 두 분 사이 시샘하듯 말해왔다. 보통 더위를 피해 새벽에 농약을 치거나 밭일을 하는데, 그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다 곡선으로 굽은 오르막길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때마침 지나던 운전자가 목격하고 119에 신고를 했고 구급차가 휴대폰을 이용해 가족에게 연락하며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다. 병원에 도착해 일차 검사결과 두개골 골절이 있고 그로 인한 뇌출혈이 확인되었다. 지혈치료를 해서 멈추지 않으면 수술하는 방법이 있지만 나이가 많아 수술은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전해 들은 사고내용이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하루를 세워놓고 시골로 내려가 병원에 도착했다.
모든 일은 일정한 조건이 맞으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흐름을 타며 세력을 키운다. 그 일은 주변의 질서를 흔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익숙한 길을 잃게 한다. 저 혼자 일어났다가 쉽게 제 힘을 다해 스러지는 경우도 있고, 칡덩굴처럼 숨을 조이며 끈질기게 뻗어나가기도 한다. 어떤 일은 살아서 기억하는 동안 못내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이 되기도 한다. 인생이란 이런 일들의 생성과 소멸이 서로 꼬리를 물고 물리는 한바탕 소란스러움인 것만 같다.
시간을 두고 다시 검사한 결과는 다행히도 괜찮았다.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의사설명을 듣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휘청한 아버지 일상이 회복되려면 어느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토바이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몸이 튕겨지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만치 넘어져 있는 오토바이가 눈에 보였다고 한다. ‘얼른 저 오토바이 타고 집으로 가야 되는데…’, 생각했고 그 사이 누군가 신고하는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는 아버지 얘기를 들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
아버지는 강하고 엄한 가장이기보다 순하고 여린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억척스럽게 가정을 이끌어온 엄마를 가족모두가 인정하지만, 난 언제나 정이 많아 외로움도 많은 아버지 편을 들었었다. 끝까지 남아 산을 지키는 못생긴 나무처럼 손이 먼저 갔다. 식구란 남들이 모르는 함께 겪어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각별하다. 딱히 내세울 게 없어도 물, 공기, 밥 같이 심심하게 서로를 지켜봐 온 애잔하고 고요한 시간들 말이다.
사고 이후 아버지는 어린아이 같아졌다.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행위에 대한 인식과 절제력도 둔해진 듯하다. 전기를 만지고 지붕에 올라가는 등 주위를 놀라게 하는 일이 잦아졌다. 흔히 전성기를 뜻하는 ‘리즈시절’에 대한 얘기가 있다. 이쯤 되니 아버지의 리즈시절은 언제였을까 궁금해진다. 젊어서 장사하던 때를 얘기할 때면 목소리가 커지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인천제일시장에서 20여 년간 장사하던 때가 아버지의 한창 빛나던 리즈시절이었을까. 과일장사, 생선가게, 고추방앗간과 기계를 들여놓고 손수 국수를 뽑아 말려서 파는 국숫집 등을 했다. 상인회 총무를 맡아 철마다 나들이 다니고 지치는 줄 모르도록 놀며 재미 좋았다고 추억한다.
부모님이 산처럼 크고 세상의 전부였을 때가 있었다. 어린 자식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현역에서 밀려난 후, 그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 채 노후라는 바다에 닿고 그 썰물과 밀물을 겪는다. 어느 노랫말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예전 아버지 모습이 어땠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안타깝고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