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섬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다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by 연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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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가을이다.

토요일 오후에 친구와 거북섬을 찾았다. 그냥 거북섬이 궁금하다는 친구를 위해 나선 길이다. 시화방조제 초입에서 안내하는 거북섬로 두 번째 길에서 좌회전해 들어간다.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바닷물이 가득 들어찼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아래 높이 솟은 건물과 망망한 바다가 이색적이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조망로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웨이브파크 방향으로 느리게 걸었다. 방파제에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조형물이 앉아 있다. 사진 찍는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늘도 없다. 좀 더 나아가니 성긴 억새가 바다를 따라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이 정겹기 그지없다.

큰 도로가 나올 때쯤 어슬렁거리며 되돌아 걷다 보니 해질녘이다. 낮게 깔린 구름을 벗어난 낙조가 바다 뒤로 넘어가면서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아까 지나친 어린 왕자와 여우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어린 왕자가 해질녁을 향해 있다. 여우가 있어 다행이다.

알 수 없는 슬픔의 근원인 듯 여겨지는 해거름을 어린 왕자 혼자 견디는 게 아니라서……



[어린 왕자] 6


아, 어린 왕자여, 나는 이렇게 해서 조금씩 너의 쓸쓸하고도 짧은 생활을 알게 되었다. 너는 해질 무렵의 고요함 이외에는 오랫동안 오락이라는 것을 갖지 못했지. 나는 그 새로운 사실을 4일째 되던 날 아침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때 너는 이렇게 말했지.

"나는 해 지는 것이 정말 좋아. 우리 해 지는 걸 보러 가……"

"그러나 기다려야지……"

"뭘 기다리지?"

"해가 지는 걸 기다려야지."

처음에는 네가 아주 놀란 듯한 표정이었지. 그러다가 나중에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지.

"난 아직도 우리 집에 있는 줄 알았어."

사실 그렇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미국은 오정인데 프랑스에서는 해가 진다.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1분 동안에 프랑스에 갈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프랑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너의 그 조그마한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자국만 옮겨 놓으면 되지. 그래서 너는 해 지는 것을 보고 싶을 때마다 그렇게 할 수가 있었지……

"어느 날 나는 해 지는 것을 마흔네 번이나 구경했어."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지.

"저…… 아주 쓸쓸할 때 나는 해 지는 걸 보고 싶어……"

"그렇다면 마흔네 번이나 해지는 것을 보던 날은 그렇게도 쓸쓸했단 말이냐?"

그러나 어린 왕자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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