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호와 금강산 기행

여기 그 길

by 연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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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의 도시 양양

인천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시간여유가 좀 있다. 지하에 있는 영풍문고를 둘러보았다. 남한서적은 가져갈 수 없다는 말에 읽을거리를 챙기지 않은 게 허전했다. 수필집 한 권과 표지가 딱딱해서 메모하기 알맞아 보이는 수첩 하나 골랐다. 공연히 마음이 넉넉하고 좋았다. 휴게실을 나와 수시로 차가 드나드는 바깥 의자에 앉아 가볍게 책을 넘겨보며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간다. 버스에는 빈 의자가 많다. 인사도 없이 지나는 풍경을 보는 시선이 무심하다. 고속버스는 새말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낯선 거리로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쓸쓸함이 가득했다. 속초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먼저 바다가 나타났다. 낮은 철조망이 경계를 이룬 안쪽으로 군인들이 자주 보였다. 국방색 또는 자주색 상의를 입은 군인들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바닷가에 접해 있는 상점 앞에서 버스는 또 잠시 멈췄다. 푸르게 일렁이는 바다를 담으려고 카메라를 작동해 보니 고장이다. 알아보니 가벼운 고장이 아닌 듯하다. 미리 점검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모래사장이 자주 보이는 길가 어디쯤으로 ‘해오름의 도시 양양’ 이정표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초등학생 그림 같은 정감 어린 이정표가 오래 따라왔다. 버스는 바다 냄새가 짙어지는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속초터미널에 내려서는 마음이 바빠졌다. 집합시간까지 여유가 많지 않았다. 서둘러 택시를 잡고 양양에 있는 목적지를 대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물었다. 20분 내외라는 대답을 다행한 마음으로 들으며 창밖을 보았다. 한쪽은 바위와 울창한 숲이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지고, 고개를 돌리면 하늘과 닿아 있는 물색 바다가 눈 아래까지 어슬렁거리듯 일렁이고 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경치 보기에 바빴다. 도착해서 아는 얼굴들을 만나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로 어수선한 마음도 잦아들었다. 정해진 숙소에 짐을 넣고, 간단한 개회식 후 저녁식사가 있었다. 생선과 해물을 섞어 끓인 찌개가 나왔다.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 틈틈이 바다를 보러 간다. 밤 바닷가에는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파도소리가 머릿속 생각을 밀어내도록 귀를 맡긴다. 두고 온 이름이 멀어지고 번다함이 밀리고 안간힘으로 움켜쥐었던 일상이 흐릿하다. 오래 밤바다를 걸었고, 지쳐서 돌아와 금방 잠들었다.

-설봉호

6시 10분 눈이 떠졌다. 생각 외로 푹 잘 잤다. 혼자 조용히 일어나 바닷가로 나갔다. 안개가 몰려와 있어 해를 볼 수는 없었다. 파도는 어제보다 높고, 물밑이 훤히 보였다. 고깃배가 두어 척 나와 있다. 백사장 바깥쪽으로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었다. 어설프게 깎아 세운 장승의 여러 모양이 찬 새벽기운에 움츠리는 듯 보였다. 공기가 달아 깊이 숨 쉬었다. 오늘은 배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땅을 밟게 될 것이다. 버스로 속초여객터미널까지 이동했다.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북한도 외국으로 취급되어 여권이 필요하기에 일회용 여권을 발급받게 된다. 인원을 조별로 나누어 확인하고 입항절차를 하는 과정이 좀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아침 일찍 서두른 셈이었으나 금강산으로 갈 ‘설봉호’에 올라 출항한 시간은 오후 두 시가 되어서였다. 짙은 안개로 인해 예정보다 한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선미(船尾)를 내려다보다 소리 없이 시야에서 멀어지는 속초시를 바라보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푸른 바다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배에서 이틀을 묵게 된다. 뱃머리 쪽으로 머리를 두면 멀미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처음 물컹거리듯 다가오는 발아래 느낌이 거슬렸으나 배가 커서 그런지 우려했던 것보다 안정감이 있었다. 현대아산 설봉호는 8300톤급으로 승객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여객선이다.(이 글을 옮기며 검색해 보니 4166톤, 최다 탑승인원 264명이라 한다.) 북한 고성항까지 네 시간이 소요된다. 편한 차림으로 쉬거나 담소 나누는 자리를 벗어나 선상으로 올라갔다. 마침 선상갑판에서 북한의 신계사터로 성지순례를 가는 대한불교조계종승려들이 ‘민족분단희생영가를 위한 선상천도재’를 진행하고 있었다. 뱃고동 소리 불규칙하게 울어대며 달리는 선상 제(祭) 모습이 의미심장해 보였다. 바람이 심하게 물보라를 실어 날라 몹시 추웠다.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고성항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선내 방송이 잦아졌다. 선실 안에서 교육용 비디오 통해 받은 방북교육을 되풀이하는 내용이었으나 긴장이 느껴졌다. 호텔 ‘해금강’을 끼고 항 깊숙이 선회하며 정박하는 설봉호의 움직임은 무겁게 침묵하고 있는 북한 땅을 우리 마음처럼 조심스러워하는 듯하다.

고성항은 북한의 중요 군사지역 중 하나여서 촬영이 엄격히 규제되었다. 배 안의 관광객 모두가 조로 나뉘어 정해진 번호대로 줄 서서 움직였다. 저녁 먹기 위해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해 온정각으로 이동했다. 덩그렇게 지어진 출입국관리소 앞 자갈마당에 붉은 글씨로 세워진, ‘금강산 관광객들을 동포애의 심정으로 환영한다.’는 반어가 서늘하다. 관리소 내부에 시계는 물론 그림 한 점 걸려있지 않았다. 곰돌이인형 탈을 쓴 두 사람이 손을 흔들며 환영하였지만 굳어진 마음에 어색하게만 보인다. 조별로 버스에 올라 북한의 온정리와 용계리 마을을 지나며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버스가 다니는 길 양쪽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금강산줄기 아래 자리한 온정각 마당에 내려서야 긴장이 좀 풀렸다. 뷔페식 저녁은 푸짐하고 맛있었다. 북쪽에서 직접 재배한 남새(채소)는 향이 진하면서 고소했다. 식사 후 온천욕을 하지 않고 2층에 전시하고 있는 북한 미술가의 작품을 감상했다. 김기창 화백 동생인 김기만 화백은 북한에서 1급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에서의 최고의 호칭은 '인민'이다. 인민예술가, 인민배우… 그다음으로 공훈예술가, 공훈배우 그렇게 불렀다.

배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 타고 마을을 지나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해 승선했다. 어둠 속으로 마을 불빛이 아득하다. 일주일에 3~4일 시간을 정해놓고 전기가 들어온다고 한다. 바다로 한 발을 디디고 있는 호텔 해금강은 오르내리는 승강기며 일층의 식당인지 바에 드는 손님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로 설봉호와 가까이 있다. 기억 자로 꺾어지는 모서리의 출입국관리소를 사이에 두고 설봉호는 남측 땅이고 호텔 해금강은 북측 땅이다. 우리는 금강산을 관광하기 위해 하루 두 번 줄 서서 도장을 찍으며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지만, 해금강 호텔에 묵는 관광객은 첫날 들어갈 때와 마지막 나올 때만 통과하면 된다.

-천하제일명산 금강산

일찍 일어난다. 바다는 고요하다. 구내식당에서 아침 먹고 산행준비를 서둘렀다. 힘겨운 일정일 거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휴대해서는 안 되는 물품에 대해 재차 강조하는 조장(가이드)을 따라 이동하며 각오를 다진다. 처음부터 무리하거나 뒤처지지 말고 차분하게 끝까지 낙오하지 않는다. 오늘 정해진 금강산 관광은 내금강의 ‘만물상’ 코스이다. 버스로 양지마을, 닭알(용계리) 마을을 지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만상정까지 간 후, 휴게소라 할 수 있는 그곳에서 잠시 주의사항을 듣고 본격 산행으로 들어간다. 1,041m 망양대까지 오르는 등산로는 천하제일명산 금강산의 절경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 외에 다른 의미로 다가온 힘든 도전이었다.

금강산 초입에 장대처럼 줄 서있던 미인송이라 불리는 곁가지 없이 곧게 뻗은 붉은빛의 소나무는 나무이지만 사람에게나 말할 수 있는 귀티가 흘렀다. 금강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등산로 대부분이 바위를 오르게 된다. 신선이 내려오는 모습의 삼선암, 귀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귀면암, 선녀를 만나려고 오르다가 바위에 도끼 자국을 내었다는 절부암, 위아래가 절벽으로 겨우 쉴만한 공간의 벼랑 턱인 안심대, 세 개의 전망대를 이루고 있는 망양대까지 가파르고 좁은 등산로를 오르는 동안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어느 곳은 거의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경사가 심해 발아래나 뒤를 봐서는 전혀 움직일 엄두가 안 나기도 했다. 산자락을 타고 내리는 계곡 물은 게르마늄 성분으로 모두 옥빛을 띄었다. 물이 너무 맑아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잠깐잠깐씩 숨을 고르며 둘러보는 경치는, 가슴을 트이게 하는 시원함이 아니라 막막하게 만드는 경이감을 불러일으켰다. 절경에 놀라 바위로 굳어졌다는 ‘개구리바위’ 얘기가 떠올라 눈 아래 펼쳐지는 산세를 오래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하산을 하면서부터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손과 발이 뜻대로 움직여지질 않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통이었지만 어느 한 곳도 그냥 지나치고 싶지가 않았다. 오기를 부리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만상정에 도착해 온정각으로 이동하는 버스에 올라 사정없는 잠 속에 빠졌다. 무릎 위 메모지와 볼펜을 쥔 채 조장의 설명을 적으려고 노력했으나 버스가 정차하고 나서야 어리둥절한 채 정신이 들었다. 늦은 점심 후 북한 교예단 공연관람권 구입 후 상점을 구경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모란봉 교예단 공연은 잘 만들어진 영화처럼 깊은 감동과 함께 벅찬 동포애를 안겨 주었다. 반듯하게 펴고 접듯 기계처럼 움직이는 배우들의 동작에 긴장하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공연 내내 몸에 힘이 들어가 있다가 끝난 후 나올 때는 큰 시름하나를 내려놓듯 가볍고 유쾌한 기분이었다. 공연내용을 담은 비디오를 살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힘겨운 일정으로 쌓인 피로도 달랠 겸 ‘무색무미 중탄산나트륨 성분의 온천장’에 들었다. 버스 타고 설봉호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맞았다.

-삼일포, 해금강

독특한 음색의 선내 방송이 어둠 속의 빛처럼 단잠을 가른다. 새벽의 바다는 고요하고 어젯밤 잠들기 전 보았던 가로등 밑의 군인 둘이 그대로다. 설봉호 내 종업원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라 표정으로 서로의 뜻을 살핀다. 선실과 식당에는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관광객들에게 1불(1,000원) 정도의 봉사료를 권장하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 아침 먹고 이제 제법 익숙하고 여유 있는 동작으로 조별과 번호대로 모여 종업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오늘 일정에 나섰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일포와 바다의 만물상이라 불리는 해금강을 돌아볼 것이다. 삼일포로 향하는 길은 마을을 깊숙이 지난다. 담 너머로 부엌이며 방안 장롱까지 들여다보이던 처음 길을 주민들이 항의하여 조금 돌아가도록 새 길을 내었다고 한다. 관광버스가 지나는 도로와 연결되는 모든 길은 소로(小路)까지 군인들에 의해 통제되었고 버스가 모두 통과할 때까지 주민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다려야 했다. 강가에 트럭을 대고 돌을 싣는 사람들이 보이고, 공동작업 공동분배 원칙에 따라 오늘 마쳐야 할 작업량을 표시해 둔 빨간색 깃발이 들판 군데군데 보였다.

삼일포는 평화로운 호수의 느낌이었다. 어딜 가나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종 선전문구를 새겨놓은 ‘글발’이다. 금강산 일대에만 2,000여 개의 글발이 있다고 한다. 쓰레기 하나 없이 너무나 말끔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한 감을 주었다.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삼일포를 나와 해금강으로 이동해 멀리 마주 보이는 남한의 통일전망대를 두고는 서로 기념촬영하기에 여념이 없다. 남한의 민통선과 같은 군사지역 주변은 몹시 황량하고 삭막하여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마지막 날 온정각에서는 관광객에게 남새(채소)를 비닐에 담아 팔았다. 끼니때마다 인기 좋았던 야채는 금방 바닥을 보였다. 기념품이나 기타 공산품은 모든 면으로 품질이 떨어져 보여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조금 지치고 허탈한 맘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해서는 다소의 안도감마저 느끼며 설봉호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고 갑판에 나가 멀어져 가는 고성항과 금강산에 인사한다. 바다에 작은 배가 유난히 많았다. 때로 손 흔드는 이도 보인다. 선실에서 잠을 자거나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중 불통이던 휴대폰이 이어지고 속초항에 닿았다. 대다수 문화원직원들과 속초여객터미널에서 헤어졌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 방향이 비슷한 몇이 남아 고속버스를 이용해 서울까지 와서 다시 흩어졌다.

서울은 비가 내리고 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몹시 지친 상태로 자정 넘어 집에 도착했다. 내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할 것이다. 그 사실이 낯설고도 익숙하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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