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 길
소통, 막힘없이 생각하는 바를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말처럼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서로 알아듣는 언어를 사용해도 벽보다 단단한 단절과 아득한 거리를 경험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서로 원하는 것과 보는 방향이 다르고 자기 상황이 우선이기 때문일 뿐이다. 10년 가까이 다닌 직장의 대표가 바뀌면서 한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일로 인한 상처가 깊어서 자주 손발에 힘이 빠진다. 절벽 끝에 선 외로움과 부질없다는 허무한 마음으로 정체되듯 주춤거리게 된다. 그런 와중 떠나게 된 이번 일정은 캄보디아가 아니었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평소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꿈꿔오고 있었다. 메모할 의욕마저 자신 없어 녹음기를 가져갔다. 두 달이 지났다. 들어보니 가이드 설명 간간이 내 웃음소리가 섞여 있다. 여유가 느껴지고 편안하면서 부드러운 웃음소리다. 내가 이렇게 웃었구나…… 듣기에 참 좋다.
새벽 4시, 집을 나섰다. 뒤로 배웅하는 이 하나 없이 빠져나오는 골목과 동네가 짐짓 모른 체 낯설다. 어둠의 기운이 가뜩이나 의기소침한 마음을 끌어내린다. 반기지 않을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걸음처럼 조심스러워 자꾸 주저되었다. 수원 시민회관에 도착해서도 어두웠다. 도청 정문을 코앞에 두고 앞에서 한참을 헤맸다. 늦지 않아 다행이다. 등에 땀이 나도록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들과 며칠만 살고 헤어지자. 인천 공항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푸른빛으로 열리는 하루를 보았다.
-톤레삽 호수의 수상마을
캄보디아 국적기 U-4기는 작고 실내도 비좁았다. 키가 큰 일행 중 한 사람은 무릎이 앞 좌석에 닿았다. 씨엠립 공항까지는 5시간 걸린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일반 버스처럼 승객들이 일어나 통로를 거닐었다. 난 잡지를 뒤적이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로 한다. 늦은 아침식사는 기내식으로 마쳤다. 플라스틱 수저와 포크, 조그만 그릇이 어린 날의 소꿉장난 느낌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후끈한 열기가 올라온다. 39도의 기온, 금방 땀이 솟았다. 가난한 나라이기에 뒷거래가 성행이라고 하였으나 여행사의 사전 조치로 신속하게 출입국 관리소를 벗어났다. 스무 명이 한 조가 되어 버스에 오르고 가이드와 만났다. 집이 수원이라는 가이드가 오래 아는 사이인양 친근했고 캄보디아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길지 않은 시간을 달려 3일간 묵을 호텔에 짐을 우선 풀고 곧바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음식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재료와 조리법은 당연히 다르겠으나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식사 후, 크기가 캄보디아 국토 1/6에 달하는 톤레삽 호수의 수상마을로 향했다. 물 위에서 태어나 살다가 물 위에서 생명을 다하는 이들의 70%는 베트남 계통으로 국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착륙하기 전 비행기에서 내려다볼 때 비포장 길로 생각했던 대지를 가로지르는 황토색 줄기는 길이 아닌 강이었다. 거대한 톤레삽 호수가 진한 황톳물로 언뜻 보면 더러워 보이나 식수로도 사용하는 오염되지 않은 물이라고 한다. 건기의 막바지라 물이 줄어 버스로 2km를 더 들어갔다. 바나나처럼 생긴 동력선으로 옮겨 탄 후 수상 마을 안쪽으로 다가갔다. 요란한 모터소리로 대화가 어려웠다.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수상 카페 근처에서 가이드 설명을 듣기 위해 잠깐 배가 멈추었다. 동시에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 따라오던 나룻배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원달러'를 외치며 우리 배에 매달렸다. 쟁반 같은 그릇에 몽키바나나와 맥주 캔 등을 내밀며 애원하는 그들은 깡마르고 장사하기엔 너무 어렸다. 하나 둘 지갑을 꺼내는데 가이드가 웬만하면 무시해 줄 것을 권했다. 진정한 도움이란 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구걸을 도와주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베트남으로 인해 상처받은 캄보디아에 대한 예의로라도 참아주었으면 한다는 말이었다. 심정적으로 가이드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식당 안이나 호텔을 제외하고 여행기간 내 어딜 가나 구걸하는 아이들과 함께여야 했다. 더위 때문에 들고 다녔던 생수 병도 달라고 해 슬쩍 건넸다.
절경이라는 해질 무렵을 보기 위해 수상 카페에 잠시 머물렀다. 맥주와 새우 데친 것이 안주로 나왔으나 구경만 했다. 새우의 양쪽 앞발은 커다란 집게발이었다. 주변을 넓게 둘러볼 수 있는 꼭대기에서도 여전히 수상카페 주위를 맴돌며 원 달러를 주문처럼 외는 아이들이 보였다. 마치 모이 든 주인을 따르는 병아리 같다. 한 관광객이 안 되겠는지 가까이 다가가 원달러를 건네고 몽키바나나를 집어 들었다. 득의에 찬 얼굴로 배 안쪽 그릇에 돈을 넣고는 이내 다시 바나나 한 송이를 담아 내온다. 바로 옆에서 부럽게 지켜보는 다른 아이 눈치가 보여 그 또한 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한쪽에선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물놀이한다. 경찰서, 가게, 학교, 교회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는 수상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땅 위에선 어지러움을 느껴 살 수 없다고 한다. 해지는 경관은 날이 흐려 만족한 구경을 하지 못했다. 이래저래 우울한 마음으로 수상마을을 벗어났다. 저녁은 압살라 민속쇼와 함께 뷔페식이었다. 민속공연은 지난 용문산 축제 때가 떠올라 새삼스러웠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고유의상과 섬세한 손놀림이 여전히 인상적이다. 숙소가 내 집처럼 편안했다. 전생의 어느 부분이 이곳과 인연이 닿아 있는지 멀리 떠나온 이국땅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앙코르 왕조 유적지
모닝콜이 울렸다. 시간을 알 수 없어 내내 불편하였다. 휴대폰은 당연히 무용지물이 되었고, 호텔이나 식당 어디서도 시계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3층인 숙소 창밖의 시야는 걸리는 것 없이 시원하다. 높은 건물과 산이 없어서 멀리 끝닿은 곳까지 푸른 숲이 보이고 길 건너 세차장에선 즐거운 듯 몇 사람씩 달려들어 차를 닦고 있다. 호텔 마당으로 우리를 안내할 버스가 보이고 한 두 사람 서성이면 대충 시간을 짐작하고 방을 나선다.
앙코르와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함께 가장 확실하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 불가사의로 인정받고 있는 곳. 앙코르와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왕조초기 롤로오스 유적지를 먼저 답사하기로 했다. 프레아코 사원, 바콩 사원, 룰레이 사원은 따가운 태양 아래 서두르지 않는 신중한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967년 하르샤바르만 2세의 손자이며 바라문교 승려였던 야즈나바라가 시바신에게 바친 반데스레이 사원과,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세운 타프롬 사원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이로움을 드러내며 보는 이를 압도하였다. 현세를 뛰어넘어 신들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숭고한 정신의 몰입이 느껴져선지 볼수록 숙연해질 뿐이었다. 반데스레이 사원은 신분상 이유로 건축물 크기에 제한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대신 정교하고 현란한 조각으로 사원 전체를 장식했다.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말로가 4개의 압살라(선녀)를 뜯어내 밀반출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앙드레 말로는 이 사건을 토대로 앙코르 탐사기이며 감상기인 ‘왕도의 길’을 집필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야바르만 7세의 효심이 오늘까지 이어져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타프롬 사원은 관광객으로 넘쳤다. 시기적으로 우기 전 잔인하게 더울 때라 관광객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이러니 성수기면 발 디딜 틈 없다는 말이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흔적만 남아 있는 ‘보석의 방’과 ‘통곡의 방’을 비롯해 미로 같은 사원 내부는 일행을 놓치지 않으려 긴장한 탓으로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타프롬 사원은 지상으로 올라온 거대한 나무뿌리가 사원전체를 감싸며 자라고 있어 나무사원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 6개월 동안도 푸르게 살아있는 신비함을 두고 이곳 사람들은 자야바르만 7세 어머니가 나무로 환생하여 아들의 사원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다. 나무뿌리를 걷어내야 하기 때문에 유일하게 복원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원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보수공사만 하고 있다. 본격적인 앙코르 투어가 시작되고 나서 나의 뇌(머리)는 별 활동을 하지 못했다. 해독할 수 없는 암호화된 문제를 보듯, 한 순간 언어가 뒤섞여버린 바벨탑의 혼란처럼, 일반적인 상식과 이해를 벗어난 알 수 없는 능력의 결과물 앞에 생각이 나아가지 못하고 맴돌 뿐이다. 천 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은 어떤 정신을 지녔을까, 무슨 마음이었을까…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풀 수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 무거운 심정으로 앙코르 톰의 바푸욘, 바이욘 사원, 코끼리테라스, 레퍼(문둥이) 왕 테라스와 힘들게 대면했다. 정성과 진심을 다해 앙코르유적지에 대한 애정과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전하려는 가이드의 노력이 무색하게 멀찌감치 앙코르와트를 벗어났을 때는 시험에서 벗어난 해방감마저 들었다. 우주의 축소판, 지상에 구현한 우주의 모형 ‘앙코르와트’는 앙코르의 다른 건축물과 다르게 유일하게 죽음을 뜻하는 서쪽에 정문이 있다. 비슈누 신의 중앙 탑을 향해 걸어가면서 죽음의 방향인 서쪽으로부터 자연스레 멀어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중앙 탑이 있는 3층은 천상계, 2층은 인간계, 1층은 미물계를 상징한다. 천상계를 오르는 계단 경사는 70도이다. 계단은 높고 폭은 좁아 발을 똑바로 디딜 수 없어 누구라 해도 네발로 기지 않으면 오를 수 없다. 자신 없으면 오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으나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상(?)에서 가슴 쓸어내리며 서로 격려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다. 건너편 내려오는 계단엔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천상계에 오른 후, 몇 년 전 과로로 이 계단에서 굴러 지금까지 병원에 있다는 친구를 위해 삼배를 올리는 우리 가이드 모습을 보았다.
-영화 「킬링필드」의 기억
단체영화관람,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중, 고등학교시절의 그 기억은 영화의 내용보다도 주변적으로 떠오르는 상황이 더 분명하다. 줄 서서 기다리던 극장 앞 도로, 오징어 매달린 매점, 화질 안 좋은 대한뉴스 등. 초등시절 인천 주안동의 중앙극장 건너편에 살았다. 아버지 아시는 분이 극장에서 일을 보는 덕분으로 마지막 영화 끝 부분을 공짜로 보게 해 주셨다. 두꺼운 커튼을 조심스럽게 들추던 두근거림과 설레던 감정이 어제 같다. 영화관 뒤쪽 쓰레기통에 찢어버린 극장표가 수북했다. 남동생과 그것을 주어와 열심히 짝을 맞추는 부질없는 짓도 했다.
1985년이면 단체관람으로 본 영화는 아니다. 어떻게 이 영화를 보게 됐을까. 몹시 암울하고 불행한 심정이었으며 화면을 가득 채운 늪지의 시체더미 영상은 ‘실화’라는 말로 인해 더 충격이었다. 반공영화, 공산당을 빨간색괴물로 만들었던 이념교육의 선전물 역할을 톡톡히 했던 미국영화였음을 그 당시 알지 못했다. 킬링필드라 불리는 캄보디아 학살은 둘로 나누어진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중이었던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중립국인 캄보디아에 보급로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한다. 그로 인한 사망자 수를 60~80만으로 본다. 그 후 1975년부터 5년간 폴 포트가 이끄는 공산세력인 크메르루주에 무참히 학살된 지식인과 일반인의 사망자 수를 80~100만으로 추정한다. 영화는 두 번째에 대한 내용만을 다루며 캄보디아에 벌어진 비극을 오로지 공산주의 크메르루주에 떠넘기고 있다. 1기와 2기로 나누어진 10년간의 학살과 뒤로 이어진 내전으로 200백만, 전 인구의 1/4이 사망한 것이다.
현지 캄보디아인의 반미 감정이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갖는 것의 100배로 보면 맞을 거라는 가이드 설명이었다. 프랑스 식민지였으나 프랑스 사람들을 좋아하며 미국이 없었다면 킬링필드도 없었을 거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일정에 있었던 지뢰박물관은 공사 중이라 취소되었다. 씨엡립의 ‘왓트마이’라 불리는 작은 킬링필드 사원에는 당시 고통스럽게 죽어간 이들의 유골을 모아 놓았다. 악명 높은 폴 포트의 얼굴과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고문 장면을 담은 사진도 볼 수 있다. 캄보디아에는 학살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의 킬링필드 사원이 수백 곳 있다.
-아름다운 세상, 캄보디아
현재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과제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로 보고 있다. 폴 포트 정권 때 거의 모든 지식인과 중산층이 학살로 사라지고 살아남은 어린이와 여자(어머니)들은 당장 먹고사는 생존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기고 가난과 굶주림으로 구걸에 나서는 이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스스로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씨엠립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수원포교당 성보스님이 원장으로 있는 학교와 고아원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10년 전 앙코르와트를 처음 접하고 12세기 전 이토록 찬란한 문화유산을 이룩한 지혜롭고 위대한 땅의 민족이 오늘날 너무도 비참하게 된 상황에 충격을 받은 주지 스님이, 그 후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의지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성과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스님의 얘기로는 규칙적인 식사와 생활할 수 있는 이곳에 아이가 들어오고 일주일 정도만 되면 얼굴이 꽃처럼 피어난다고 한다. 시설을 마련하고 올해 처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한 아름다운 세상에는 자매시인 수원시에서 지원해 준 컴퓨터실이 우리 글로 이름표를 달고 있다. 여행 전 안내문을 보고 아이들에게 줄 문구류를 준비해 갔다. 스케치북, 무제 공책, 연필, 색연필, 크레파스, 색종이, 풍선 등을 고르며 즐거웠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냐고 일행이 물었다. 없다. 아이들은 어느 나라나 똑같지 않을까? 가난했던 어릴 적 색종이로 남자 색 여자 색 나누던 기억이며, 터질까 아슬아슬한 풍선 불기와 바람이 빠질 때까지 가지고 놀던 기억은 떠올릴수록 애틋하다. 앞으로 병원과 대학설립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이름대로 영원히 아름다운 세상으로 남기를 같은 마음으로 기원했다.
알려진 대로 캄보디아는 천연 뽕나무에서 자라는 상황버섯과 천연고무나무 라텍스 그리고 보석이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한낮의 더위도 피할 겸해서 들른 보석상점에서 넉넉하게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준비했다는 양촌리 믹스 냉커피가 고향의 맛을 일깨우며 일행을 반겨주었다. 진열된 상품이 원산지라 저렴한 편이라고 하였으나 내겐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오래 망설이다가 딸아이를 떠올리며 여자의 성공보석이라는 ‘가넷’을 하나 골랐다. 프놈바켕으로 이동하기 전 어두워지면서 비가 잠깐 지나갔다. 거짓말처럼 기온이 우리나라의 가을날처럼 바뀌었다. 울창한 숲길을 걷는 발걸음이 더없이 가볍고 상쾌하다. 행복한 순간은 짧아서 더욱 빛난다.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