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 길
KTX 역방향과 순방향이 만나 마주 보는 4인 가족석을 예매하니 정상요금에서 30% 정도 할인이 된다. 경기도 내 문화원 직원을 4인으로 묶어 서울역에서 만났다. 지방문화원에 근무한 지 만 10년을 넘었다. 법에 의한 설치근거를 갖고 세워진 지방문화원이지만 90%가 자치단체의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현실에서 바람이 없을 수 없다. 이제까지 잘 버티었고 정면으로 불어오는 세찬바람에 뿌리째 흔들리기도 했으나 다행히 꺾이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바람은 지나가고 잠잠해진다. 말없이 힘이 되는 고마운 사람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건지 한발 나아가는 건지 알 수 없는 담담함을 품게 되었다. 일부 국비가 지원된 이번 우수문화원 해외연수 참가는 그런 면으로 더욱 소중하고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부산역에 내려 먼저 돌아오는 날 차편 예매를 했다. 평일 주중이라며 다시 7% 할인이 추가되었다. 이런 작은 혜택에 기분이 좋다. 부산역에서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로 이동하여 여행사직원을 만났다. 오후 6시, 출국수속을 거친 후 부산 출발 시모노세키 향발 부관훼리 성희호에 승선했다. 출항시간이 오후 9시다. 저녁은 국과 반찬 서너 가지 나오는 선내식이다. 한 끼 800엔, 우리 돈으로 약 8,000원이다. 다들 비싸다며 머리를 내저었으나 깔끔한 맛이 있다. 여러 사람이 쓰는 선실도 예상보다 깨끗한 느낌이다. 적당히 자리 잡고 모여 앉아 즐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한정된 공간에서 같이 보내야 하는 긴 밤인 것이다. 출항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배의 흔들림이 커지면서 울렁거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바다가 편안하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잠을 청하는 게 낫겠다 싶어 누워 중얼거린다. 자동차도 이 정도는 흔들려, 여기는 시골길이고, 나는 차를 타고 있는 거야.
흐리고 비 뿌리는 날씨의 일요일이다. 오전 6시, 잿빛 하늘을 이고 종이배 같은 어선들이 흩어져있는 항구가까이로 배가 방향을 틀고 있었다. 혼잡을 피하기 위해 선내 식당은 정원에 따라 각 관광단체별 식사시간을 그때마다 정하는 듯했다. 식당에 들어가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차려져 있으며, 부족한 밑반찬은 셀프서비스 식으로 준비가 되어있다. 승선과 하선 때도 방송이 나오면 움직였다. 일본 시모노세키항 주변이 안개에 싸여 있다. 2007년 하반기부터 일본 입국 시 테러 미연 방지를 위한 개인식별 정보제공 의무화로 인해 입국심사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권을 제출하고 양쪽 검지 지문과 얼굴사진을 일일이 찍어야 했다. 지문 인식은 몇 번씩 되풀이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벨이 울린다. 의외로 연세 많으신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이 많았다. 이래저래 지루하고도 아까운 아침 시간을 보냈다.
입국 심사 통과 후 로비에서 일행이 모두 나오기를 기다렸다. 벽을 따라 '야마구치현 자매도 경상남도, 시모노세키 자매도시 부산'이라는 광고판이 사진과 함께 나란히 붙어 있다. 예상대로 날씨는 흐리다. 오늘은 일본에서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 총본산인 다자이후 텐만구(천만궁)와, 일본 3대 성의 하나인 구마모토성 답사 그리고 공식일정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원과 비슷한 기관인 ‘구마모토현 기쿠치군 기쿠요마치 중앙 공민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우리가 탄 버스가 4개의 주요 섬과 4,0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일본의 수도 동경과 시모노세키 항이 있는 ‘혼슈’ 섬에서 우리가 주로 머물게 될 ‘규슈’를 잇는 간문대교를 건넜다. 한 시간 정도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로부터 대략 일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일본은 습도가 높아 자연발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산불이 거의 나지 않는다. 흙으로 이루어진 산이 대부분이라 비가 내리면 산사태가 쉽게 일어난다. 산림의 90%는 삼나무이며 나머지가 삼나무와 공생을 이루는 대나무이다. 지진에 대비해 집은 대체로 높게 짓지 않으며 주재료가 나무에다 지붕의 기와도 가벼운 세라믹(도자기)이다. 습도가 높아 집은 지상에서 30cm가량 띄워 짓는다. 막연하나마 일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많은 부분이 달랐으며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차이는 역시 컸다. 사람 빼고 다 있다는 자판기천국의 나라, 운전석과 도로가 우리와 반대인 곳. 1,000cc 미만의 경차 종류만 200여 종 되며 그 수명은 보통 15~20년,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적게 드는 나라.
공기는 맑았다. 다자이후 텐만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슨 의식이 있는지 본전 앞마당에 차일과 천막이 쳐있고 그 안에 많은 기모노 차림의 여인들이 본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를 지켜보고 있다.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답게 이곳은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입시 철엔 수험생 합격기원을 위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설명이다. 넓은 연못엔 진한 녹색의 이끼가 나무줄기를 따라 잔디처럼 자라고 있다. 점심은 근처 식당에 도시락 형식으로 마련되었다. 날이 흐려 따뜻한 국물이 그리웠는데 미리 준비된 음식은 거의 식어 있었다. 생각만큼 음식이 맞지 않았다. 구마모토 성으로 이동하였다. 이 성은 임진왜란 후 우리의 축성법을 배워 돌로 지은 산성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비정규군인 사무라이들이 갇혀 결사 항전했던 곳으로 유서 깊은 성이다. 성루를 비롯한 대부분의 건축물 모양은 모자라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간결한 느낌이다. 공식방문인 공민관 일정을 맞추느라 느긋하게 돌아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농촌지역인 기쿠요마치 중앙공민관은 우리의 오래된 시민회관이나 좀 규모가 큰 마을회관 같은 건물이다. 일요일임에도 지역의 교육장과 중앙공민관 직원 여러분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요리교실회원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빵 비슷한 당고와 음료수 하나씩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간단한 질의응답 후 한국어교실 수강생들의 자기소개와 우리의 「고향의 봄」노래를 들려주었다. 한복을 입은 중년의 그녀들은 순서대로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와 앞으로 계획을 간단히 들려주었다. 말로만 듣던 우리 연예인들의 한류열풍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여인은 다음 주 부산에 가서 송승헌 나오는 영화를 볼 예정이라며 너무 설레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곧 개봉할 영화 「숙명」을 말하는 것 같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 축소해 만든 우리의 ‘솟대’를 방문기념 선물로 전달했다. 마을 어귀에 세워 수호신 역할을 하거나 나쁜 기운을 막는 경계 의미 통역을 들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며 우리를 배웅했다.
숙소가 있는 아소로 이동, 아소카도만 호텔의 전통 다다미방 2인 1실에 들었다. 바닥에 깔린 다다미에서 특유의 냄새가 난다. 목욕, 세안, 화장실이 작은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도 활발히 화산활동을 하고 있는 아소산 인근은 칼슘이 많아 농작물 2 모작이 가능하며 온천은 피부에 좋다고 한다.
맑은 날이다. 미세 먼지가 없어 공기도 깨끗하고 시야도 넓게 멀리 나간다. 원숭이쇼를 관람했다. 우리가 본 공연엔 일곱 살과 한 살 원숭이가 출연했다. 사람 나이로는 스물한 살과 세 살쯤이라고 한다. 준비자세인 듯 뒷짐 지고 다리를 벌리고 선 모습과 천연덕스런 몸짓에 웃음이 나면서도 심정이 복잡하다. 기저귀를 차고 나온 어린 원숭이는 귀여우면서도 겁먹은 모습이 안쓰러웠다. 한국어 자막으로 재치 있게 표현한 공연설명이 재미를 더하고 공연 후에는 조련사가 어린 원숭이와 악수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게 해 주었다. 100마리 중 훈련을 통해 공연할 수 있는 원숭이가 다섯 마리 정도 나온다는데 그 과정이 원숭이에게 다행일지 불행일지 판단이 안 되었다. 산 아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아소 활화산 분화구 가까이 가볼 수 있다는 말에 기대가 크다. 시뻘건 불덩어리가 끓는 물처럼 튀어 오르는 장면을 혹시 직접 보게 되는 건 아닐까 기대와 상상으로 설레었다. 아소산맥 일대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땅에 영양이 없어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가을이면 키를 넘는 갈대가 장관이라고 한다. 민둥민둥한 산과 언덕 사이 버스는 느리게 회전하며 오르고 올랐다. 어느 지점에서부터 멀리 회색연기가 솟아오르는 산봉우리가 보였다. 버스가 케이블카 타는 곳에 이르렀는데 바람의 방향에 따라 분화구에서 배출되는 유황가스가 관광객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어 관람운행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다. 전형적인 복식화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칼데라를 지척에 두고도 볼 수 없게 되어 몹시 서운한 마음이다. 용암이 흐른 검은 부분이 그대로 남은 아소산 주변은 황량하고도 삭막하여 지구의 끝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아쉬움을 달래는 건지 더 키우는 건지 모르게 꾸역꾸역 솟는 아소산 연기가 보이는 근처 식당에서 뷔페식 점심 식사를 했다. 역시 먹을 게 없었다. 그나마 입에 맞는 카레를 조금 가져다 먹었다. 다들 괜찮다는 녹차도 내 입맛엔 향도 맛도 지나치게 두꺼웠다. 못내 아쉬운 마음에 멀리 펼쳐진 고원과 호수 주변 대초원으로 ‘풀이 천리’라는 뜻의 ‘쿠사센리’와 쌀 무덤으로 불리는 ‘고메츠카’를 차창 통해 사진에 담으며 그곳과 멀어졌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어 규슈의 명소로 뽑히고 있는 유후인은 양지바른 언덕 위의 작은 집처럼 아름답고 아기자기하다. 온천호수인 긴린코호수 주변은 평화로운 한 폭 그림 같기만 하다. 호수 가장자리에 갈대로 대충 지붕만 두른 속에 노천온천욕 즐기는 사람들 모습은 영락없는 동화 속 신선놀음이다. 우연하게도 남들과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아 인적이 드문 변두리부터 살피게 되었다. 긴린코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온천수라 따뜻했다. 한 여인이 빨래를 헹구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햇볕은 따갑지 않게 눈부셨고 사람들은 여유 있어 보인다. 고양이, 까마귀, 부엉이, 너구리를 상서로운 동물로 여기고 있어서인지 중심부에 빼곡히 늘어선 크고 작은 상점에는 위 동물을 이미지로 한 상품이 많았다. 각종 전문몰과 공예품점, 체험장, 장난감 가게 같은 아기자기한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부지런히 걸었다. 숨이 찼다. 언제나 싱싱할 그 거리를 뒤로하고 일본 제일의 온천도시이며 원천수 2,848개소로 세계 제일인 오이타현 벳부시로 향했다.
벳부시가 가까워지며 멀리 밥 짓는 굴뚝연기 같은 풍경이 곳곳에 펼쳐졌다. 이곳은 일반 가정집에서도 온천이 나온다. 중간에 버스를 잠시 세우고 길가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나마 익숙한 초밥, 튀김, 우동이 나와 모처럼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 숙소는 벳부만 로얄호텔로 일본천왕이 묵은 호텔로도 유명하다며 가이드가 자랑한다. 호텔에서 보는 일출이 아름다워 작품사진에 자주 등장한다는 벳부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객실이 9층이었는데 자살방지를 위해 창문이 아주 조금만 열리게 장치되어 있다. 낯선 여행지 숙소에서 양쪽으로 객실이 늘어선 복도, 계단, 엘리베이터에 혼자 서게 되면 대체로 무섭다. 그런데 여기는 달랐다.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 때문인지, 바닥과 천장의 밝고 따뜻한 색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긴 복도가 거닐고 싶은 편안함으로 다가와 적잖이 놀랐다. 이곳 온천이 내장에 좋아 소화기능 등을 돕는다는 말에 그냥 쉬려던 마음을 바꿔 온천에 들었다. 손목을 잡혀 따라 나간 노천탕에 탐스런 장미꽃송이가 가득 떠 있다. 향기는 잘 맡아지지 않았으나 뜨거운 온천수에도 싱싱하게 살아있다. 모두들 한 방에 모이는 분위기였으나 TV 보며 쉬었다. 객실의 넓은 창 아래로 항구의 가로등과 나룻배들이 보이고, 터널을 빠져나오는 기차소리 들리고, 흐르는 시간이 만져진다. 복도를 타고 간간이 들려오는 왁자한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자장가처럼 정겨운 밤이다.
위치 상 조금 더 동쪽이라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해가 뜬다. 05:45 바다에서 해가 올라왔다. 손에 잡힐 듯 보인다. 호텔 주변을 걸었다. 깨끗하고 맑은 공기에 속이 다 시원하다. 가짓수 많은 호텔 뷔페가 더 먹을 게 없다. 모닝 빵과 오렌지주스를 조금 먹었다. 오전 첫 번째 일정으로 히지마치 중앙공민관 공식방문이 있다. 지역의 중앙공민관은 소규모 지구 및 자치공민관을 관리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히지마치 중앙공민관도 지역 내 78개소의 공민관을 관리하고 있다. 우리의 평생학습센터, 주민자치센터, 문화원과 비슷한 기관으로 보면 맞겠다. 이곳의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에는 게이트볼, 그랜드골프, 구슬치기 등 몸을 움직이는 운동과 요리, 서예, 원예, 다도 등 강좌가 있고 목공공작실, 화실을 비롯한 각종 실습실을 갖추어 취미와 여가를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가 시작되었기에 그에 대한 대비 등 시설도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60대 게이트볼 선수단이 대회참가 차 일본에 오기도 하는데 일본의 80대 선수들에게 예선탈락을 하기 일쑤라고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10여 년 앞선 훈련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띤 질의응답 시간을 거쳐 기념사진을 찍고 공민관을 나섰다.
일본인을 보통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으로 보는 경향에는 언어나 문화의 특성이 작용하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어 공부하는 딸아이 얘기를 들어도 깊이 파고들수록 문장의 피동과 능동이 복잡하게 얽힌다고 한다. 종교나 문화도 토속적인 면과 현대적인 면, 동양과 서양의 생활양식이 함께 융합하여 독특한 문화를 보인다. 국민신앙으로 가장 넓게 퍼져있는 일본의 종교는 씨족신과 자연을 섬기는 신도(神道)이다. 그 외 불교, 기독교 순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건강과 장래를 빌고, 성년이 되어 결혼식은 성당이나 교회에서 치르고, 죽은 이의 장례식은 사후 세계의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불교식으로 치른다.
우사신궁으로 향했다. 신도의 신을 제사 지내는 사당인 신사(神社)에는 여러 호칭이 있는데, 천황과 관계가 있는 신앙의 대상을 모신 곳을 신궁이라 부른다. 우사신궁은 고뇌를 없애주는 신궁이라는 설명이다. 기둥과 테두리의 오렌지색이 자극적으로 선명하다. 공간이 넓고 고요하다. 사람은 많지 않다. 내부는 들어갈 수 없다. 셀 수도 없는 많은 명패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꽃모양이 있는 문전에 참배하는 이들이 보인다. 동전을 넣고 손뼉 치며 절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 정서적인 동화가 안 되어 소원을 빌지는 않았지만 동전 던지며 흉내를 내 보았는데 역시나 어색하다. 우사신궁 입구 한 토산품 상점 2층에서 점심을 먹고 규슈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시간 없다는 이유로 생략하지 않을까 내심 염려했는데 잠깐이라도 둘러보기로 했다. 도쿄, 교토, 나라에 이어 일본에서 4번째로 설립된 규슈국립박물관은 2005년에 ‘일본문화 형성을 아시아사(史)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는 콘셉트로 개관하였다. 한국어로 된 홍보물에 건물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하며 ‘매우 박력 넘치는 건물입니다’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4층 ‘아시아관’만 보기로 했는데 전문해설사도 없이 시간에 쫓겨 그야말로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쳐 적잖이 아쉬운 마음이다.
버스에 오르기 전 궁금하게 여긴 깃발에 대해 가이드에게 물었다. 벳부만 로얄호텔 진입로에 물고기모양 깃발 세 개가 차례로 달려있었다. 바람이 불면 원통모양으로 부풀어 물고기모양이 제대로 보였다. 마을 중간에 높이 매달려 있기도 했다. 점치는 집이나 그 비슷한 장소를 상상했으나 호텔에도 있었으니 맞지 않았다. 가이드는, 잉어깃발로 아빠 엄마 아이 해서 네 마리를 매년 4월에 내건다. 개인이나 마을공동체에서 가정과 마을의 무사태평을 비는 의미로도 달며 예전에 아들을 낳으면 축하의미로 잉어깃발을 달았고 요즘은 5월 5일을 즈음해 단다고 말해주었다.
마지막 밤은 요란했다. 옆방 어르신들이 밤늦도록 흘러간 옛 노래를 연이어 합창하는 것으로 여행의 마무리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서글픔까지 슬며시 끼어드는 밤이었다. 부산은 가는 비가 내리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하선과 통관절차가 이루어져 KTX 예약시간이 많이 남았으나 일행 중 한 명이 열차표 시간을 앞당겨 곧 열차에 올랐다. 대전 역 부근에서 하늘이 맑아졌다. 전철과 버스를 타고 내리며 새삼 우리의 거리를 눈여겨보았다. 이번 연수에서 가장 먼저 느끼고 피부에 와닿은 부분이 거리의 깨끗함과 정리정돈이었다. 길에 널려진 쓰레기를 볼 수 없었고 갓길에 세워둔 차 한 대 볼 수 없었다. 동네 작은 마켓이라도 주차장이 없으면 문을 닫게 된다는 말처럼 건물이 차지한 공간만큼 주차공간이 함께 있었다. 집 주변에는 작은 구석일지라도 정성껏 나무나 꽃을 가꾸고 있었는데 지나친 애정의 탓인지 몰라도 본래 그대로의 자연미는 없어 보였다.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화장실 외 다른 곳에서 쓰레기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원이나 공공시설 어디서든 각자의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습관이 철저하게 굳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경제선진국일지는 몰라도 문화는 뒤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