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 길
여러 해 전, 뉴욕타임스가 세계여행지 중 꼭 한 번 가봐야 할 곳 1위로 라오스를 선정하였다. 인도차이나의 숨은 보석이라 불리며 평화롭고 고즈넉이 순수한 자연을 품은 라오스, 비엔티안과 방비엥으로 올해 해외문화탐방을 다녀왔다. 1당 공산주의 독재 국가임에도 불심 깊은 불교국가이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다. 인구밀도 또한 동남아 내에서 가장 낮다.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로 무역과 교통의 제약으로 경제성이 낮아 앞으로도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인천에서 오후 비행기로 출발해 늦은 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에 도착했다. 일행 중 한 명의 캐리어가 파손되어 보상협의 하는 동안 남은 일행은 버스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런 경우 공항 내에서 해결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불만이 높아질 때쯤 여행사 직원과 일행이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왔다. 숙소인 라오텔로 이동해 짧은 밤을 보냈다.
조식 후 8시 30분 버스에 올랐다.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사원 두 곳을 방문한다. ‘왓 시사켓’ 사원과 ‘왓 호 파깨우’ 사원이다. 왓 시사켓 사원 벽면을 따라 작은 구멍 속 불상들이 촘촘히 들어있다. 크고 작은 불상이 총 6,840개에 달한다고 한다. 라오스는 상좌부불교로 힌두교 영향을 받았다. 사원 방문 시 복장 규정이 엄격하고 신발을 벗어야 하는 구역이 많다. 가볍게 둘러보았다. 오래된 습기로 검게 변한 조형물과 바닥 여기저기 오염되고 낡은 부분이 보인다. 종교와 무관하게 별다른 감흥 없이 둘러보고 이동한다. 차창으로 새까맣게 엉켜있는 전봇대와 전선이 몹시 위태하게 스친다. 우리의 1985년과 비슷하니 과거로의 추억여행이라고 보면 좋겠다는 현지 가이드 말이다. 지붕 가득 매끈한 면 없이 뾰족하게 장식된 입구의 불상공원 ‘왓 씨앙쿠안’으로 들어간다. 불교와 힌두교가 결합된 수많은 석재불상을 모아 넓은 공원 안을 꾸몄다. 머리를 기대고 오른쪽으로 길게 누운 대형 불상이 유명하고, 입 벌린 석상 안으로 들어가 위로 오르면 전망대처럼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기괴하고 신기한 형상들이 많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의 젖줄역할을 하는 메콩강이 불상공원 옆을 흐르고 있다. 메콩강 너머로 태국의 풍경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더웠지만 화창한 날이다. 미로처럼 이어진 공원을 벗어나 강가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이 한가로웠다.
탕원유원지 선상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한다. 물 위로 낮게 삐걱대는 나무다리 지나 지붕 씌운 배의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 다양한 현지음식이 차려져 있다. 현지인 도우미 여럿이 그때그때 필요한 주문을 돕는다. 노래방 기계가 있어 음식을 먹으며 넉넉하게 유흥을 즐기는 시간이다. 강둑에 풀로 지붕을 덮은 방갈로 형태의 집과 작은 조각배에서 낚시하는 사람 그리고 황토 빛 강물과 함께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넉넉한 점심과 휴식을 보내고 방비엥으로 이동해 오늘과 내일 묵을 ‘티마크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한 리조트는 입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마도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곳이었다. 카르스틱 산맥과 남송강의 아름다운 전망은 ‘작은 중국의 계림’이라는 별명이 있다.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인지 안개인지와 배경이 되는 둥글둥글한 산 모양, 낮은 리조트 건물이 감싸고 앞마당의 수영장과 야자수가 더없이 평화로운 기운이었다.
잠시 쉬며 씻고 나왔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우리 방만 그런가 알아보니 다른 방을 비롯해 리조트 전부가 나갔다. 직원에게 물으니 방비엥 도시 전체가 정전이라며 언제 전기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대답이다.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 상태로 사전 예약된 저녁장소로 이동하였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강변식당’, 강가 식당 한쪽에서 직원이 고기를 구워 가져다주는 바비큐 메뉴이다. 그 사이 해가 지고 어두워져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식탁마다 촛불이 등장했다. 불편함이나 불평에 앞서 이상한 감정이 들며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시감에 빠졌다. 갑자기 이 도시가 정겹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불 앞에서 열심히 고기 구워 나르는 직원에게 미안하면서도 고기는 또 맛이 있다. 그러다 전기가 들어와 일시에 와하며 밝고 환한 빛을 맞이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희미한 촛불아래 눈조리개를 조절하며 주변을 담아내던 그 시간이 더없이 다정하였다. 식사 후 야시장을 들렀다. 내일 종일 물에서 보내야 한대서 물놀이 신발을 하나씩 구입했다.
방비엥은 젊은이들이 액티비티 활동을 즐기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이 당초 연령이 있는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보여 망설이기도 했다. 오늘 일정은 버기카 투어, 블루라군 다이빙, 집라인, 탐농동굴 튜빙체험과 쏭강의 카약킹이다. 버기카는 2인 1조로 탄다. 간단히 운전 조작을 배우고 한 바퀴 시운전 후 마을외곽 흙길을 돌아온다. 소박한 마을과 아이들을 만나고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고르지 않은 길 곳곳의 웅덩이와 파인 곳을 피해야 하고 흙먼지와 소음이 심해 대화는 불가능하다. 블루라군은 TV에서 익히 보아온 그대로이다. 마치 신선들의 놀이터 같다. 다이빙에 도전하는 일행을 구경하며 근처에서 쉬며 여유를 즐겼다. 트럭을 개조한 툭툭이로 집라인을 타러 이동한다. 헬멧 쓰고 장비를 착용한 후 등산하듯 한참 올라간다. 지칠 때쯤 시작점이 나온다. 현지인 안내에 따라 줄 타고 허공을 날아 반대편으로 건너간다. 순식간이다. 끝났다, 해냈다는 뿌듯함이 잠깐 지나간다. 장비를 반납하고 옆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는다. 빵과 꼬치구이와 채소가 있다. 빵 속에 재료를 넣어 먹으면 맛있다고 하여 그렇게 한다. 다음 탐농동굴 튜빙체험이다. 논 동굴이라고도 불리는 동굴내부 상당부가 물에 잠겨 있어 헤드램프를 끼고 대형튜브에 반 눕듯이 앉아 밧줄로 이동하여 동굴 안을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안정감이 없어 이리저리 흔들려 서로 부딪치고 램프도 벗겨졌다. 동굴내부가 어땠는지 기억에 없다. 물에 빠져서 관광객을 튜브에 앉히고 돌아 나온 사람을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내보내느라 분주한 현지인들이 눈에 보였다. 전부 사람 손으로 하고 있다. 재미로 한 번쯤은 도전하겠지만, 이 방법 밖에 없을까 생각했다. 마지막 쏭강을 내달리는 카약킹은 시원하였다. 2인이 타고 뒤에 현지인과 앞사람이 노 젓는다. 물살 흐르는 방향이라 자연스레 나아간다. 노는 다른 팀에 물을 끼얹는 용도를 쓰인다. 서로에게 시원하게 물벼락 날리며 신나게 물싸움한다. 리조트로 돌아와 생기 넘친 하루를 가라앉힌다. 리조트를 감싸는 그림 같은 풍경과 수영장에서 가볍게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보며 차 한 잔 마시는 지금이 비할 데 없이 행복하다.
마지막 날, 방비엥에서 다시 비엔티안으로 이동해 ‘라오 아트 뮤지엄’인 조각아트박물관을 관람한다. 이곳은 라오스 최대 사립미술관으로 정교한 목조 조각이 유명하다. 수백 점의 국보급 불상과 도금 불상, 고대 청동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점심은 동남아식 샤부샤부인 ‘수끼’를 맛보았다. 이어서 라오스의 아픈 역사와 회복 과정을 볼 수 있는 코프(COPE) 센터를 방문하였다. 라오스 내전과 베트남 전쟁 시 투하된 많은 양의 폭탄 중 일부가 아직도 불발탄으로 남아 있어 현재도 농사를 짓거나 길을 걷다 사고를 당하고 있다. 이곳은 그런 장애인의 재활을 위한 의수족 제작과 심리프로그램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이다. 입장료는 없으며 피해자들을 위한 기부금을 낼 수 있다고 해서 시흥문화원으로 일정 금액 기부금을 전달하고, 개인적으로 각자 한국 돈을 기부함에 넣었다.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전시물로 전쟁의 비극을 통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라오스의 상징인 ‘탓 루앙’ 황금탑 사원 앞에 내렸다. 부처의 뼈 일부를 모신 불탑으로 라오스 지폐에도 등장하는 라오스 국가적 기념물로써 위용이 대단하다. ‘위대한 불탑’ 뜻답게 전체가 금칠로 입혀져 있어 멀리서도 눈부시게 빛난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저녁을 먹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승리의 문’인 프랑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지만 천장과 기둥에 라오스 신화 속 인물과 불교적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 빠뚜싸이를 감상하였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여 만든 건축물에 라오스의 정신을 담았다. 분수가 있는 광장벤치에 현지인과 섞여 한가하게 여유를 즐긴다.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 최대 규모 메콩 야시장 입구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신다. 메콩강을 따라 이어진 대규모 노천시장이다. 강을 따라 불을 밝힌 점포가 수없이 늘어서 있고 다양한 오락놀이기구도 어지러운 조명과 음악소리로 이목을 잡아끌고 있다. 커다란 유원지다. 엄청난 규모에 비해 고를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냥 정신 사나운 기분이다. 다들 둘러보고자 흩어졌다가 시간보다 일찍 모였다. 비엔티안공항에서 00:50에 이륙, 5시간 비행하고 2시간 시차로 오전 8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라오스는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매력인 곳이다. 덜 세련된, 애써 꾸며 친절하지 않은 순박함이 남아있다. 4일 차, 방비엥에서 비엔티안으로 이동하는 중에 화장실 사용으로 잠시 버스가 멈췄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텅 빈 건물이 우범 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서둘러 볼일을 마치고 차에 올랐고 버스가 출발했다. 얼마 안 가 가이드가 전화를 받고 버스가 잠시 길가에 정차한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차를 놓치고 다른 한국여행사 버스에 승차해 뒤따라 온 것이다. 일은, 사고는 조용히 일어난다. 우연이지만 한 끗 방심한 틈이 벌어져 돌이킬 수 없게도 된다. 원체 긍정적이며 유한 성격이라 위기상황에 침착히 대처하고 유머러스하게 넘겼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동행한 여행사 직원과 현지에서 함께 한 가이드 세 명, 일행 30인 모두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를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