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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ii Apr 15. 2017

유치진지한 여행기 - 오사카&교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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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햇살 좋은 골목길 @시조가와라마치


@17번 버스


전 날 너무 많이 걸은 탓에 파스 6장과 휴족시간을 붙이고 잤더니 나름 상쾌하게 잠에서 깼다.(숙소 컴퓨터로 지나온 경로를 찍어보니 어제만 12km 정도를 걸었다.) 간단히 조식을 먹고 나와 산젠인(三千院)과 호센인(宝泉院)이 있는 오하라(大原)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본은 미세먼지도 별로 없던데 여행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는 현지인을 정말 많이 봤다. 버스 신호 대기 중에 찍은 저분은 마스크까지 쓰니 진짜 몸이 좀 안 좋으신 분 같았는데 지나가면서 보니 분위기 있게 흡연 중이었다.


@산젠인


빨간 카페트(?)가 깔린 마루에서 찍고 싶었는데 나보다 더 오래 사색을 즐기시던 분에게 져서 이곳으로 왔다. @산젠인


오하라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10분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여러 사찰들이 모여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산젠인이다. 산젠인의 거의 모든 것이 나무, 풀, 이끼, 돌로만 이루어져 있고, 실내와 크고 작은 정원들 모두가 잘 가꾸어져 있다. 나무 바닥마저 얼마나 매끄럽고 반짝거리던지 한발 한발 내딛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산젠인의 백미는 슈헤키엔(聚碧園, 위 2,3번째 사진)이었다. 작은 연못과 푸른 이끼로 가득 차 신비한 느낌을 주는 그 정원에 푹 빠져 한참을 앉아있었다. 나 말고도 5~6명의 관광객이 있었지만 모두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은은한 향 냄새와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액자 같은 풍경에 고요히 집중하고 있었다.


자라나라 이끼이끼 @산젠인


@산젠인


이렇게 초록으로 가득 둘러싸인 곳을 보면 비 올 때의 느낌은 어떨지가 궁금해진다. 


-_- @오하라


@호센인


산젠인을 나와 액자 정원으로 유명한 호센인으로 이동했다. 산젠인에서 호센인으로 가는 짧은 길에 절이 2개나 더 있는데, 나름 관광지인데 절 이름이 한자로만 쓰여있어서 스마트폰으로 뒤늦게 찾아보고 나서야 호센인을 찾아갈 수 있었다. 하마터면 다른 절에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뻔했다. 호센인을 보고 나오는 길에 서양 아주머니 한 분이 다른 그 절 앞에 서서 '호센인을 가려고 하는데 여기가 맞냐'라고 물어봤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 더 들어가면 된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알려줬다. 


말차와 떡을 준다 @호센인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호센인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액자 정원이 있는 이 곳으로 안내를 해주고 말차와 떡을 가져다준다. 차를 가져다주시던 분께서 무릎을 꿇고 차를 내어주시고 갈 때는 절까지 하며 인사를 하셨다. 그 순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무릎을 꿇고 받았어야 했는데. 스미마셍.


700년이 넘은 노송 @호센인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며 보니 같은 곳에서 각도를 살짝 틀어서 찍었을 뿐인데 다른 장소에서 찍은 것 처럼 느껴진다. @호센인


@호센인


이 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채 바람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곳 같았다. 나 혼자 있었는데도 일어나서 사진을 찍는 것이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얼른 사진을 몇 장 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가만히 앉아서 정원을 감상하는데 한 여자분이 스미마셍-하면서 내 근처에 앉았다. 차를 내어주시는 분과도 능숙하게 인사하고 대화도 주고받길래 일본인이구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한테 '한국분이세요?' 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한국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하며 인사를 했다. 그분도 혼자 오셔서 사진도 몇 장 찍어드리고 오하라에서 나가는 버스도 같이 타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나마도 3박 4일 여행 중에 가장 길게 한 대화였다.


밖으로는 자라지마 @철학의 길


일주일만 더 늦게 올걸. @철학의 길


 일주일만 더 늦게 올걸. 나보다 더 아쉽겠죠. @철학의 길


생각보다 오하라에 앉아 시간을 많이 보내서 숙소를 들르지 않고 바로 '철학의 길'로 이동했다. 아무 데나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오니 철학의 길을 따라 끝이 안 보이는 인파가 이어졌다. 과거 철학자가 이 길을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다 해서 철학의 길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이 인파 속에서는 사색은 커녕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들 것 같다. 


이제 목도리는 안해도 되겠던데 @철학의 길


@철학의 길


고개를 돌릴 때마다 동전 만한 침이 사방으로 튀었다. @철학의 길


걷는 사람을 제외하면 70%가 이 자세 @철학의 길


@철학의 길


사실 벚꽃잎이 떨어져 작은 운하를 덮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올해는 비교적 벚꽃이 늦게 개화를 해서 아직 피다 만 벚꽃만 감상했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에 겁먹은 나머지, 중간에 들르려고 했던 은각사와 호넨인, 난젠지를 그냥 지나쳤다. 


@모르는 동네 주택가


결국 철학의 길을 못 견디고 중간에 큰길로 나와 카페에 앉아서 쉬었다. 가와라마치로 돌아가는 버스를 찾으려고 구글 지도를 켰는데 주변에 주택가를 따라 작은 천이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학의 길 같은 산책로는 아니었지만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한산한 주택가였다. 당장 눈 앞에 다른 사람 뒷머리와 등이 안보이니 살 것 같았다.


자동차 정비소인줄 알고 지나가려는데 간판이 커피샵. 커피용품 파는 곳인줄 알았는데 커피 파는 커피샵. @커피샵


평창동 같은 부자 동네 느낌이었다. @모르는 동네 주택가


차가 벽 색깔에 물든 것 같다 @모르는 동네 주택가


사람들이 안보이니 해방된 느낌에 아예 스마트폰을 백팩에 집어넣고 머릿속 나침반에 의지해서 주택가 골목을 쏘다녔다. 한가한 골목 분위기 넘나 좋은 것.


패션리더 @헤이안 신궁


이게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풍경이라니 @이름모를 운하


@이름모를 운하


카모 강(鴨川)으로 흘러들어가는 이름 모를 운하에서 하늘에 주황빛이 비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사람, 한가로이 독서하는 사람,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하러 가는 사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년 보는 경치일 텐데도 지나가다가 좋은 경치를 보면 마치 관광을 온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가만히 앉아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한없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계절 변화하는 경치를 보며 지내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렇게 내 여행의 마지막 노을이 지고 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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