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와라마치로 돌아와 교토에 하나 있다는 이치란 라멘에서 저녁을 먹었다. 30분 가까이를 기다려 독서실 같은 자리에서 꼬깃꼬깃 라멘을 먹고 나와보니 대기시간이 거의 2시간이란다. 다시는 안 갔다. 라멘은 맛있었지만.
시조가와라마치에서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청수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 다행히 서양인들이 많아서 '서양인들이 내릴 때 같이 내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아라시야마 갈 때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관광지 정류장에서는 영어로 안내를 해주니까. 그런데 둘 다 아니었다. 이상한 정류장에서 내렸지만 다행히 구글 지도의 힘을 빌려 목적지에 갈 수 있었다. 그 방향엔 별거 없는데 버스 안의 그 서양인들은 어디 가고 있었을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기요미즈데라 일정을 저녁에 넣은 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야간개장은 벚꽃, 단풍 시즌에만 진행된다고 한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해가 다 진 후에 도착해서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아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멈출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네이버나 구글에서 '기요미즈데라'를 검색하면 같은 구도의 사진이 수십 장 나온다. 이날 밤 숙소에 돌아와서 내 사진을 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진들 속의 전경을 본 기억이 없는 것이었다. 분명히 갈 수 있는 관람로는 다 돌아본 것 같았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후 사진을 보정하다가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위 사진의 장소였다. 사진의 오른쪽에 나무로 뒤덮인 곳이 본당(本堂). 올해 2월부터 시작된 보수공사가 2020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공사 중이라는 건 알고 갔었지만 그 구도를 볼 수 없는지는 몰랐다. 아무도 나무로 뒤덮인 사진을 올리지는 않을 테니 이 글을 보고 알고 가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본당의 전경을 볼 수 없다면 주간 관람은 좀 심심하지 않을까 싶다.)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는 기요미즈데라로 올라가는 완만한 언덕길이다. 바닥은 깔끔하게 돌로 포장되어 있고, 옛 목조 건축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져있다. 기요미즈데라로 향하는 길인 데다가 워낙 유명해서, 낮이었다면 사람들과 가게의 가판들에 정신없었겠지만 지금은 평화로운 밤이니까. 노란 가로등이 너무 잘 어울리는 거리였다. 나중에 다시 찾게 되더라도 밤에 오지 않을까 싶다.
니넨자카를 내려오는 도중에 저렇게 차려입은 두 분을 보고 멈춰 섰다. 심상치 않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 입구에, 옆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지키고 있기까지 했다. '혹시 보기 힘들다는 진짜 마이꼬나 게이샤인가?' 하며 다가가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랬더니 대답 없이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간신히 사진 한 장을 찍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역시 또다시 고개만 우아하게 끄덕.
'진짜구나'하면서 길을 가다가 무심코 다시 뒤를 돌아봤는데 핑크 아이폰으로 둘이 셀카를 찍고 있었다. 거기서 살짝 '아닌가..?' 싶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사진의 간판을 찾아보니 이탈리아 식당이었다. 아닌 것 같다.
니넨자카에 이어 네네노미치를 걸어가다가 멋있는 조명이 깔린 돌계단을 보고 올라갔더니 '고다이지'라는 절이 있었다. 마침 야간개장을 한다길래 들어가려고 보니 입장료가 무려 600엔. 처음 들어보는 별거 없어 보이는 절인데 입장료가 600엔이라니.. 하며 망설이다가 들어갔는데 웬걸. 엄청난 규모의 정원과 함께 연못이 있고 실내에는 옛날 그림 전시, 게다가 대나무 숲까지 있었다. 팜플렛을 보니 고다이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부인 '고다이인'이 출가를 해서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절이라고 한다. 크게 의미는 두지 않고 풍경만 열심히 감상하고 나왔다.
처음 보는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의 정원에서 진행되는 미디어 파사드를 감상했다. 멋있고 신기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야사카 신사 입구에서 오른쪽을 보면 '파블로(PABLO) 치즈 타르트' 교토 지점이 있다. 대부분 오사카에서 먹어보는데 교토에도 지점이 있다는 건 잘 모르는 듯하다. 오사카에서 넘어오기 전에 갔다가 개점시간 전이라서 못 먹어봤는데 이 날은 폐점시간 후라서 못 먹었다. 다음날 다시 가서 먹었다. 맛있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