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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의 블랙리스트 상사 대처법

삐뽀삐뽀, 블랙리스트 상사랑 비행하게 됐다.

항공사에는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상사들이 있다. 항공사에서 팀제를 운영하는데, 14명 정도의 팀원들이 1년 동안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가 된다.

팀이 바뀔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나의 상사가 누가 될지이다. 나의 상사는 두 분으로 팀에 팀장님과 부팀장님으로 구성되어있다.


새로운 팀 배정이 미리 발표되던 날.

기존팀 팀장님이 새로운 팀 팀장님의 이름을 보시고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1년 동안 비행 나와서의  개인 생활은 없을 거라며 말씀해주셨다.

불안한 마음으로 몇 달이 지나고, 결국 오지 말아야 할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블랙리스트 팀장님과의 첫 팀 비행.'
중간 시니어였던 나는 팀장님과 비행기 앞쪽에서 함께 근무하고, 마주 보고 앉아 이착륙해야 하는 퍼스트 클래스 듀티를 맡게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동안은 안전규정에 의거하여, 예상되는, 예상되지 않는 비상탈출에 대한 리뷰를 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그 이후 안전고도까지 도달은 4-5분의 시간 동안 점프 시트에 팀장님과 마주 보고 벨트 싸인이 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사실 이 시간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특히 나를 혼낸 무서운 선배나 무서운 팀장님과 마주 보고 이착륙하는 좌석이 배정되었을 때는 점프 시트에 비상탈출 버튼이 있다면 그 버튼을 눌러 비행기 밖으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색한 공기 속에서 비행기 창문을 쳐다보거나, 비행기 천장을 보거나, 내 손끝을 바라보는 등의 행동으로 어색한 이 시간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어색한 시간을 견디고 있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유명한가 봐. 나랑 팀에 되자마자 팀원 4명이 팀을 나갔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해석하느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본인이 무서워서 팀원 4명이 나갔다는 이야기를 지금 나한테 하시는 건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정말요? 아닐꺼예요."
라고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했다.

사실 블랙리스트 팀장님과 1년 동안 팀이 된다는 건 승무원으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중 하나이다. 그러기에 팀에 배속되자마자 임신을 해서 휴직을 한 후 복직 시 다른 팀으로 배정을 받거나, 장기 휴직으로 팀에서 빠지고 새팀을 배정받는 방법으로 이 위기를 탈출한다. 하지만 장기 휴직을 쓴다는 건 진급에 영향을 주기에 회사를 열심히 다니지 않는 승무원이나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방금 위에 팀장님이 언급한 4명의 승무원에 임신을 했거나 장기 휴직을 낸 승무원이 포함돼 있었다.

안타깝게도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만 했던 나는 나에게 주워진 운명에 순응해야만 했다. 블랙리스트 팀장님과 팀이 된 후, 어려웠던 부분은 완벽한 어피(비행에 맞는 깔끔하고 정돈된 헤어, 메이크업, 네일, 유니폼과 앞치마 청결상태, 구두 닦음 여부.)와 완벽한 비행 준비 상태, 완벽한 비행이 가능하도록 비행 동안 팀장님의 관찰 및 지도받기, 해외 스테이션에서 팀장님과 식사 함께하기, 쇼핑 함께 가기 등의 의전은 필수였다. 한마디로 '완벽한 승무원이자, 팀장님을 잘 모시는 팀원'을 바라셨다. 칭찬보다는 늘 훈계를 하셨고, 인신공격을 많이 하시는 분이었다.

팀에 결혼 안 한 나이가 많은 언니에겐 독고노인이라 칭하시고, 팀원들에게 독설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며 자신만이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팀원들 또한 자신만을 칭찬하길 바라셨다.

비행을 하며 많은 팀장님을 만나왔지만, 이런 부류의 팀장님을 만나면 느끼는 감정이 하나 있다.

'안타깝다. 팀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니.'

갓 입사했을 때는 화가 나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승무원 세계에 들어온 지 10년의 시간이 지나자 달관의 자세가 찾아왔다.
마음에 찾아온 '측은지심'이라는 사자성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이만큼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다니고 그것이 잘못된 줄 모르고 사는 삶이라니.

이 팀에서 당장 나가고 싶었지만, 방법은 없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인생에 찾아온 모든 사람은 내 스승이라는 말씀처럼 그녀에게도 배울 점을 무던히도 찾았다. 그리고 아주 어렵사리 배울 점을 찾았다.

'내가 팀장이 되면, 저 팀장님같이 되진 않아야지.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하는 인신공격이 담긴 농담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알았으니깐. 또한 자신의 감정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야지.'

비행 중 인신공격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누군가는 당황하고, 누군가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 누구도 막아줄 사람은 없었다. 팀에 절대 권력자가 팀장님이기에.

이미 인신공격이 한 바퀴를 돈 순간.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그 와중 그녀의 인신공격을 당하고 싶지 않아 미소 지으며 표정으로 말했다.

'저한테 인신공격하시려고요? 그만하시죠.'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일본 얘같이 생긴 얘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니깐. 무서운 얘야."


라는 말로 순화된 인신공격이 내게 돌아왔다.

내가 받을 칭송 레터를 선배의 이름으로 바꿔서 승객에게 알려주던 팀장님과, 팀원에게 질투를 하는 팀장, 잘 나가는 사람에게만 아부하는 팀장,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팀장. 수많은 다양한 팀장님들을 만나왔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처음에 팀장님들의 성향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깨달았다.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내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 후 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화가 나지도 않았다.


12년이라는 비행을 했던 시간과 경험이 나에게 내공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에게 당하지 않고, 내가 나를 보호하는 법에 대해서.

내가 경험으로 터득한 방법은 세 가지이다. 조건은 내가 진급 연도가 아닐 때가 좋다.(팀장님 부팀장님이 내 진급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주니어일 때는 첫 번째 사항을 연습하고, 중간 시니어 정도 될 때 세 번째 사항을 연습하면 좋다.

1. 일 잘하는 승무원이 된다.
실수를 자주 하게 되면 이상한 팀장님의 타깃이 된다. 내 일에 있어서는 실수 없이 확실하게 한다.

2. 팀원이지만 만만한 이미지로 보지 못하도록 한다.
좋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든다. 팀원이라고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이미지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중하지만, 나를 지키기 느낌이 들도록 나 자신을 이미지화시키는 사람도 있다.

3. 나를 함부로 대할 때는 예의 갖춰서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린다.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인식 하지만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이 부분을 돌려서 이야기해주면 더 이상 나를 타깃으로 안 삼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나는 비행을 하며 수많은 좋은 팀장님들을 만났다. 아이러니 하지만 좋은 팀장님을 만났을 때보다 좋지 않은 팀장님을 만났을 때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민과 어떻게 하면 그녀의 타깃이 되지 않을 수 있지라며 고민하는 시간들로 한편으로는 성장하는 부분은 있었다.

그리고 돌이켜 내가 피하고 싶었던 무례한 팀장님들과의 팀 경험을 통해 내가 좋은 팀장님과 팀이 되었을 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팀장님을 모시고, 팀장님의 좋은 점을 닮고자 노력하며 1년의 팀 생활을 귀하게 보내는 법을 배웠다.

이렇듯 피하고 싶은 현실에서도 배울 수 있는 은 늘 찾아온다.
나의 고난의 시간이 지금의 글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비행한 지 12년의 경험의 선물로
블랙리스트 팀장님 대처법을
배우게 되었다.

늘 생각한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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