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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은 오후 5시 오사카에 도착하고 무엇을 했을까

비행이 여행이 되는 순간.

오늘은 오사카 레이오버(1박 2일) 가는 날이다. 첫째 아기를 키우며 비행하는 워킹맘이 된지도 8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미숙하다. 간절하게 꿈꿔서 승무원이 된 케이스라 늘 비행은 완벽하게 준비하고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혹여 놓친 게 있지 않을까 가는 나라의 대한 면세 허용량과 가는 비행기 기종에 대한 정보, 안전, 서비스, 면세품 관련 업데이트된 내용을 숙지한다. 매 비행마다 이 모든 것을 꼼꼼히 숙지하고 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깨끗하게 드라이한 유니폼을 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머릿속은 오늘 가는 노선에 대한 모든 준비가 마친 상태라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은 오사카 3+1 비행이 있다.

인천-오사카, 오사카-인천, 인천-오사카 구간을 세 번 비행 후 오사카에 내려서 하루 현지 체류를 하고 다음날 일찍 오사카-인천 비행을 하면 3+1 비행이 끝나는 스케줄이다. 한편 한편 비행이 끝날 때마다 포스트잇에 적어놓은 비행편수를 볼펜으로 찍 긋는다. 마침내 세 개의 줄이 그어질 때의 희열이란 비행을 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오사카와 비슷한 단거리 비행인 나리타가 나의 첫 단거리 비행이었다.

비행 전 선배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담요를 많이 찾는 승객들의 성향을 숙지하고 있었지만, 정말 많은 승객들이 담요를 찾았다. 입국서류를 배포하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승객들은 공손하게 나에게 담요를 요청했고, 나는 10개의 담요를 품 안 가득 안아 턱으로 고정하고 요청한 승객의 좌석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내려다보며 한 장씩 배포했다. 혹여 추가로 승객들이 요청할 것을 대비해 몇 장 더 준비하여 요청한 승객에게 제공하였다.


일본 비행의 또 다른 특징은 일본 승객들은 식사를 천천히 드신다는 것이었다. 정말 브리핑에서 공유된 내용대로 일본 승객들은 천천히 식사를 드셨다. 녹차와 커피를 리필하며 회수를 하는데 승객들의 식사 속도에 맞춰 회수하기 위해서는 조금의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왔다.

식사 회수 후 입국서류를 리필하고 안전점검 후 착륙을 했다. 이렇게 세 번 반복하니 드디어 3+1 비행 중 3이 끝이 났다.


유실물 확인 후 오사카에서 체류하기 위해 앞치마와 화장품 파우치를 챙기고, 구두를 갈아신었다. 문득 비행기 창문 너머 보이는 오사카엔 아직 해가 떠 있었다.

 

'이상하다. 왜 오사카에 아직 해가 떠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체류하는 비행은 보통 밤 8시쯤 도착하기에 편의점에서 먹을 간단한 간식들을 사서 호텔에서 먹고 작은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고 잠들어 다음날 아침 조식 뷔페를 먹고 비행 가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오사카에 떠있는 해를 보며 의아해했다.

유니폼 주머니에서 오늘 스케줄을 적은 포스트잇을 꺼냈다. 물끄러미 메모를 쳐다보니 마지막 비행인 오사카 도착시간이 오후 5시로 적혀있었다. 

묘한 행복이 찾아왔다.

호텔 근처에 쇼핑몰이 있으니 가서 맛있는 걸 먹자는 계획을 세웠다.


비행이 여행으로 바뀌었다.
승무원이 되고 늘 이 순간이 좋았다.


크루 버스가 체류 호텔에 도착했다.

함께 일한 승무원들과 함께 호텔방 키를 받고 내일 보자는 인사를 서로에게 건네고 헤어졌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나갈 거란 다짐은 푹신한 침대를 보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비행을 하느라 피곤한 내 몸은 잠깐 쉬었다 나가자 했고, 빠른 샤워 후에 침대에 누웠다.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하며 뒹굴거렸다.

천국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창문 너머 보이는 오사카에는 조금씩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음속에서 '안돼'라는 소리와 함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옷을 입고 코트를 걸치고 작은 가방 하나 매고 방문을 나섰다. 


호텔을 나서니 다소 차가운 1월의 밤바람이 불어왔다. 근처 쇼핑몰에 가기 위해서는 기찻길을 건너야 했다. 서울에서는 본지가 오래된 기찻길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일본의 직장인들과 교복 입은 학생들과 함께 건넜다. 갑자기 일본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잔잔한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마치 일본 영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승무원이 되고 특별해졌다.

아무 날도 아닌데 일본을 거닐고 있는
 이 현실이 가끔은
꿈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꿈같은 현실에서
나는 오사카의 차갑지만 기분 좋은
 1월의 밤공기를 마시며
오사카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1월의 밤공기를 마시며 오사카거리를 걷고있다.


일본 영화 속 같은 일본의 거리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10분이 지났을까 눈앞에 목적지였던 쇼핑몰이 보였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소고기를 철판에 구워 먹는 음식과 작은 맥주를 한잔 시켰다. 물론 술을 잘 못 먹지만, 퇴근 후 마시는 맥주 맛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나중에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연습 삼아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맥주보다는 사이다가 어울리는 나지만, 인생은 길고, 다양한 낙을 찾는 건 내 인생의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의 힘을 빌어 약해지기도 해 보고, 마음속의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다.


"이따다끼마스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소고기 한 점을 집었다. 부드러운 소고기가 몇 번 씹지 않았는데 사라졌다. 아삭한 샐러드와 짭짤한 미소국, 오도독 터지는 옥수수와 아스파라거스. 거기에 시원한 맥주 한잔. 혼자 먹는 저녁이었지만 영상도 보지 않고 음식 고유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 집중했다. 어느 것 하나 남김없이 맛있게 먹은 저녁시간에 행복이 찾아왔다.


오사카에서의 탁월한 선택


식사 후 마트에 들러 남편과 나눠먹을 간식을 사고, 딸아이가 좋아할 작은 장난감을 샀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무엇을 산다는 건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저트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눈에 들어온 녹차 아이스크림 가게를 선택했다. 어색한 일본어로 주문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특히 일본에서 먹는 조금 더 달콤 쌉싸름한 맛이 느껴지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며 가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본어로 쓰여있는 간판과 일본 특유의 유니폼을 입고 음식을 파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내 손에 쥐어진 녹차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차갑지만 익숙한 일본 특유의 달콤 쌉싸름한 녹차맛이 퍼졌다. 속으로 외쳤다.

'이 맛이야.'

이 맛이야. 내가 좋아하는 녹차 아이스크림


오후 5시 오사카에 도착하고
승무원인 나는
내 취향대로 짜인 계획 속에서
비행이 여행이 되는 순간을 만났다.

승무원.
여행자의 삶.
나는 그 삶에 충실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 삶이 참 좋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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