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인생의 무게

어딘지 모르게 숨이 벅찬 그런 하루였다.


사람이 없는 골목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쉬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밤 냄새가
코끝 가득 들어왔다.
덩굴이 우거진 벽을 지나가자
내 코끝엔 풀내음이 가득했다.

늘 당연하게 느껴왔던
여름밤 공기를 마주하던 일상을 누리는 일이 어려워진 지금.
평범함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아예 못 맡은 건 아니니깐.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문득 커피가 먹고 싶어 졌다.
비행을 했다면
카페에 가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마셨겠지만-
난 지금 휴직 중이기에
편의점에 들어가 2+1 하는 커피를 샀다.
카페에서 한잔 가격에 세 개의 커피를 사니 마음이 넉넉해졌다.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깜깜한 여름 밤하늘.
어딘지 모르게 숨이 벅찬 그런 하루였다.
누군가는 이런 날엔 술 한잔을 하겠지만,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하고
돌봐야 하는 아기도 있기에
팩소주 같은 카라멜 마끼또를 여러 모금 나눠 마셨다.
마음에 맺혀있는 게 조금은 내려가는 기분.

가끔 인생은
내 잘못이 아닌데,
감당해야 할 무거운 숙제를 안겨주곤 한다.

요즘이 그랬다.
담배를 태우지 않고
폐암에 걸리신 아버지와
점점 컨디션 안 좋아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

'왜 우리에게 이런일이'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이 고난을 통해
인생은 우리에게 무얼 알려주려는 것일까?

커피를 다 먹을 무렵
집 앞 아파트 정문에 도착했다.
마음에 찾아온 답답함도
어느 정도 내려가 있었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이 꺼진 깜깜한 집안에서는 남편과 아이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비누로 손을 깨끗이 닦고 화장실로 가보니 남편이 아이를 목욕시키고 있었다.
잘 다녀왔냐고, 아버지 모시고 병원 다녀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자상한 남편과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수줍게 예쁜 말을 하는 세 살 아이.

남편과 르르 웃으며 행복하게 노는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문득 어렸을 때 아빠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오버랩돼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른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서 나는
아버지에게
오늘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하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현미밥을 짓고,
전복 우렁 된장국을 끓인다.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늠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지금의 마음과 고통을-
그저 바라는 건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시길
조금 더 맛있는 음식 드시며,
산책하실 수 있길 바랄 뿐.
그뿐이다.

식탁에 앉아
막 목욕을 끝낸
사랑하는 두 존재를 위해
과일을 깎았다.
셋이 도란도란 앉아
맛있는 무언가를 먹는 이 시간.
언제부턴가 이 시간이 나에겐 마음이 풍족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 발끝에 맺혔던 오늘.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리고 싶던 오늘.
내 마음의 위안이
이 곳에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