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이러니

비행을 마치고 어딘가에 도착했다.

힘든 비행이었다.

무거운 케리어를 끌고, 마침내 호텔방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3일을 지낼 것이다.

유니폼을 옷걸이에 걸고, 케리어에서 챙겨 온  짐들을 풀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배가 고파진다. 의자에 앉아 와삭와삭 소리가 나는 과자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먹고 있다가 문득 책상 위 책 두 권이 눈에 들어왔다.


한 권의 책은 지쳤을 때 위로받기 위한 책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 권은 자기 개발서였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졌다.


나란 사람은 쉬고 싶기도 하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더 하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이 씻고, 푹 자고 일어난 아침.

맛있는 아침 뷔페를 먹고 소화시킬 겸 수영장 썬베드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었다.


따뜻한 햇살과 좋아하는 뉴에이지 음악 그리고 영어 책을 읽으니 잠이 솔솔 왔지만, 다시금 자세를 바로 잡고 30분 알람을 맞추고 공부를 했다.


요즘 들어 내가 어디에 시간을 써야 하는지가 보인다. 틈새 시간도 아까워 스트레칭을 하거나, 글감을 정리하거나 영어 공부를 한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시간의 속도를 체감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미 승무원으로서 마하의 시간을 살아가는 동시에 육아를 하니 올해는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돌이켜 보면 꽤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시간이 있었고, 아이들과 남편과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날 때면 책을 읽고 글을 썼고, 틈틈이 운동을 했다. 정신은 없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잘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우연히 읽은 책 중에 와닿는 구절이 있었다.


'인간은 평범한 일상을 충실하게만 살다가 죽게 된다' 구절이 그것이었다.


절실히 공감했다.

나 또한 한 달을 빼곡히 채워진 비행 스케줄에 비행 가기 전 준비와 비행 다녀온 후 휴식과 육아와 운동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충실이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삶은 충분히 바쁘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주신 유언대로 유한한 삶에서 나는 나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을 삶을 살면서 찾아가고 있다.


한번 태어난 인생 가능하다면 내가 행복한 순간의 빈도를 높여 많은 추억을 만들고, 인생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한다면 언제가 죽는 순간 후회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다시 시선은 두 권의 책으로 옮겨졌다. 문득 두 권의 책에서 느낀 아이러니가 지금의 내 상태인걸 깨달았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서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평범한 일상을 충실하게만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한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하루보낸다.



그런
아이러니 속 나에게 말한다.

급하지 않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
나답게
살다 보면

나의 쓰임이 있는 곳을
알게 될 것이란 것.





*이미지 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승무원이 느끼는 행복의 원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