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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선배가 물었다. 호텔 방에서 안 심심해?

오랜만에 장거리 비행을 왔다.

맛있는 아침 뷔페가 있는 곳.

아침 일찍 조식을 먹자는 팀언니의 카톡에 간단히 메이크업을 하고 가지고 온 원피스를 입고 호텔 1층으로 내려왔다.


익숙하게 오믈렛을 시키고, 아이스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녀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오랜 기간 비행을 한 선배와의 대화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아 잠깐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의 호텔 방에 올라가려는 찰나


"호텔 방에 올라가면 뭐 해?
안 심심해?"


 라고 선배가 물었다.


나는 웃으며


"한국에서 아기들이 있어서 못한 거 이것저것 가지고 왔어요."


라고 대답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심심하다.
내 인생에 심심한 적이 있었나?'


삶을 돌이 켜봤을 때 스무 살 이후로 단 한 번도 심심한 적이 없었다 단언할 수 있다.


나의 삶은 늘 치열했고, 매사의 열정적으로 살아와서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심심할 틈이 없다. 글로 쓰고 보니 그 기간이 20년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인생의 어떠한 이유로 나에게 시련이 찾아왔고, 어떠한 이유로든 내가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도전을 했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원치 않았던 시련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 단단함으로 나는 강한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늘 비행이건 공부 건 진심을 다해 임했고, 그 진심은 늘 나에게 더 좋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인생에 찾아온 수많은 도전에 두렵다고 머뭇거리기에는 내 인생엔 이미 배수진이 쳐져있었다. 피할 곳은 없었기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조건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졌다.


언제가 실패로 찾아온 시련에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하지만 시련에 잠식되어 있기엔 가족의 생계가 나에게 달린 내 삶이 너무도 팍팍해서 살아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엇이든 도전하기 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준비하고 도전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것을.


아직 날지 못하는 새를 벼랑 끝으로 계속 미는듯한 느낌이 들었던 그때. 나는 여러 번 땅으로 떨어졌지만 다행히 그곳엔 안전장치가 되어있어서 다시 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어린 나이에 두려웠지만 수많은 도전을 했던 그때, 그 결과가 실패든 성공이든 궁극적으로 내 삶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매년 다이어리를 산다.

다이어리 첫 장에 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삶의 목표를 적는다. 그리고 그 아래 적는 글귀가 있다.


'나에게는 늘 좋은 기회와 좋은 인맥만이 찾아온다. 나는 그 모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고, 나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을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라는 글귀였다.


수많은 사람이 많은 기회를 만나지만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그 기회는 그 사람을 지나쳐가 버린다. 나 또한 지나쳐버린 기회도 있지만, 잡은 기회의 수가 훨씬 많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심심한 호텔 방에서 단 한 번도 심심한 적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수많은 나라를 비행하지만, 늘 호텔 방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있었다. 호텔 안에 있는 책상이 큰지 의자는 공부하기 좋은 의자인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책상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많은 논문들을 펼쳐 놓고 과제를 하기도 하고, 논문을 쓰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영어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같은 문장을 되뇌며 지겹지만 꼭 해야 하는 그 시간을 위해 공부했다. 방송자격을 위해 한 단어 한 단어 정확하게 읽기 위해 노력했고, 30초도 안 되는 방송문을 다 읽기 위해 5시간을 앉아서 공부했다.


침대에 기대어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하고, 가지고 온 책을 읽기도 했다. 수영장이 좋은 곳이면 수영하러 가거나, 틈틈이 요가와 운동을 했다.


"호텔 방 가면 뭐 해? 안 심심해? 넷플릭스도 오래 보면 눈 아프고, 난 심심하던데."


라는 그녀의 질문에 웃으며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대답했지만, 돌이켜보니 심심할 수 있는 승무원의 호텔 라이프를 바쁘게 만든 나의 노력은 고스란히 결과로 찾아왔다.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영어 자격과 방송 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박사 공부도 끝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인생을 살며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내가 있는 이 자리.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

사실은
심심하지 않았던
승무원의
호텔 라이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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