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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공항 도착 후 유니폼을 입고 울어버린 이유.

선배들이 만든 동그란 원에서 나는 성장했다.


비행을 하다 보면 피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나의 경우엔 비행에서 새로운 업무를 처음 맡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으로 면세품 판매 듀티가 되었을 때, 승객 식사를 체크해야 하는 밀 체크 듀티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비즈니스 클래스에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마침내 퍼스트 클래스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해당 업무를 처음 부여받은 날 부담감에 늘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이 부담감이 어디서 오는 감정인지 안다.

실수 없이 잘하고 싶은 마음, 사실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건 잘 알지만 처음은 누구나 그렇듯 실수를 동반하게 된다. 실수하고 혼이 나고 앞으로 주의할 것을 배우고,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누군가에게 혼이 나는 것에 대한 방어 기제가 생긴다. 처음 하는 업무에서 혼이 나지 않고 수행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해당 업무에 대한 철저히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처음 하는 업무에서는 혼이 날 수 있다고 미리 나를 다독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갓 상위 클래스 교육을 받았던 날이 떠오른다.
이코노미 클래스를 근무한 지 2-3년 정도가 지나면 상위 클래스에 근무할 수 있는 교육이 나오는데, 이 교육 또한 정해진 점수에 미달하면 떨어질 수 있는 교육이다. 그리서 입과 전부터 상위 클래스에 대한 규정, 기물, 와인, 메뉴, 좌석 작동법 등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입과 시험과 최종 시험을 통과해야만 상위 클래스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상위 클래스 교육 입과 전 나에게 주어 귀한 데이 오프에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가방에 눈 보호안경과 공부할 자료들을 챙기고, 텀블러에 커피를 타서, 집 근처 독서실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똑같은 날의 반복을 통해 내 머릿속엔 상위 클래스에 대한 지식이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교육을 받았던 10년 그날은 이제 막 가을이 되는 기분 좋은 바람이 볼을 스치는 계절이었다. 열심히 공부를 하다 잠시 쉴 겸 밖으로 나왔다. 거리의 나무들은 어느새 붉은빛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좋은 계절에 공부를 하고 있다니.'

늘 공부할 때는 안 하던 책상 정리가 가장 재밌고, 밖에 나가서 놀고 싶고, 공부 빼곤 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날도 때마침 눈에 들어온 붉은 단풍과 가을바람에 내 마음을 뺏기고, 친했던 선배에게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답이 왔다.


‘OO아 열심히 한만큼 보상받을 거야.

단풍은 내년에도 예쁘게 물든다.’


열심히 공부하느라 펜잉크를 모두 써버리고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의 뻐근함이 느껴졌던 그때, 선배의 그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공부하느라 세번째 손가락이 감각이 없던 시절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상위 클래스 교육에 입과 했다. 이코노미 클래스와는 다른 점이 많았던 상위 클래스 교육을 받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교육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 회사 홈페이지에 상위 클래스 코드가 부여되면 내가 상위 클래스 교육을 잘 이수한 것이고, 코드가 부여되지 않으며 떨어진 것이었다. 몇 번이고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나갔다 했는지 아직도 그 떨렸던 마음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침내 상위 클래스 코드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감격이란. 

잘 이수한 것을 확인하고 가까운 곳,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심히 노력한 나에 대한 보상의 선물로.


하지만 감격스러운 순간도 잠시 아직 나에겐 실전이 남아있었다. 교육에서 배운 내용을 비행에서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피하고 싶던 그날은 찾아왔다.

나의 첫 비즈니스 클래스 데뷔 비행.

나의 첫 데뷔 비행은 바로 ‘JFK’ 뉴욕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이었다.

거기에 심지어  비즈니스 클래스 만석의 상황. 지금은 선배님들이 상위 클래스 겔리 역할을 하지만, 내가 상위 클래스 교육을 받았을 때만 해도 후배가 겔리라고 불리는 비행기 부엌 같은 공간에서 선배님들이 코스별로 식사를 나갈 수 있게 예쁘고 빠르게 카트를 차려야 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교육을 받고, 이론적으로는 공부를 많이 했었지만 막상 실전이 눈앞에 닥치니 긴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함께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함께 일하게  된  다른 팀 선배님이 아주 무서웠다.

아직도 선배님에게 한 첫인사가 기억이 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비즈니스 클래스 첫 데뷔 비행입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는 나를 무섭게 쳐다보며 말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한 거 알죠? 잘해요. 오늘."


아우라부터 무섭던 그 선배와의 상위 클래스 데뷔 비행이 시작되었다.


바쁘게 지상 서비스가 끝나고, 비행기는 이륙했다.

어느 정도 안전고도에 이른 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안전고도에 이르면 국을 끓이고, 카트를 피고, 음료 나갈 카트를 준비하고'


이런저런 생각 중에 안전고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리는 '띵' 소리와 함께 벨트 사인이 꺼졌다. 그리고 내 머리 속도 함께 꺼졌다.


벨트 사인이 꺼지자 바쁘게 움직이는 선배님들 사이에서 한동안 멍 하게 서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하고 선배님은 국부터 끓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코노미 클래스와 달리 비즈니스 클래스는 식사를 코스 별로 나가게 되어있다. 식사 4가지 혹은 3가지 중 선택이 가능하며 선택한 식사를 취합해서 서비스가 시작되게 된다.


양식의 경우는 스테이크를, 레어, 미듐 레어, 미듐, 미듐 웰던, 웰던 5가지 굽기로 선택이 가능하다.

사실 상위 클래스에 근무하게 되면 승무원들이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스테이크다. 스테이크를 주문한 승객보다 탑재된 스테이크의 수량이 남는 경우면 부담이 덜하긴 하지만, 주문한 승객과 스테이크 수가 딱 맞게 되면 승객이 요청한 굽기에 맞게 잘 구워야 하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메인 식사가 제공되면 물과 와인을 리필하며 스테이크가 승객의 입맛에 맞으시는지에 대한 여부를 묻게 되는데, 아주 맛있다고 말씀해주시면 그때만큼 뿌듯한 순간이 없었다.

큰 기종의 만석의 경우 보통 첫 번째 서비스에  2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이 시간만큼은 집중해서 코스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지금이야 비즈니스 클래스 만석 비행의 경우도 능숙하게 겔리 역할을 해내지만, 처음 비즈니스 클래스를 했던 그날은 실수도 많이 하고, 느리기도 느렸기에 같이 일을 했던 선배님도 많이 답답해하셨을 것이다.


승무원의 업무는 일이 서툰 사람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누군가는 그 사람의 몫만큼 일을 더 해야 한다는 특성이 있기에 그 선배님도 참 힘들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제야 내가 선배가 된 입장이라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너무 많이 힘들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에서 오는 미숙함과 느림과 실수가 반복되었다. 그날따라 승객들의 요청사항이 많았고, 24개의 라면을 모두 끓이고, 14시간 동안 이착륙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하고 뉴욕의 하늘을 걸어 한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탔던 기종은 13명의 승무원이 근무하는 기종이었는데, 5명의 팀 언니들이 다른 클래스에서 처음 상위 클래스에 데뷔하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응원 차 잠시 쉬는 시간에 내가 있는 곳으로 살짝 왔다가 커튼을 뚫고 나오는 선배의 호통 소리에 놀라 후다닥 다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도착 후 같이 비즈니스 클래스에 근무한 무서운 선배님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너무 많이 혼나서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잘하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게이트를 나서고 있는데, 내 눈앞에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5명의 팀 선배님들이 서 있었다. 선배님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 나를 본 선배님이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고생 많았어. 처음이라 많이 힘들었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비행 내내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깜짝 놀란 선배님들은 유니폼을 입고 서럽게 우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감싸주었고, 울고 있는 내 머리 위로는 선배님들이 만들어 준 따뜻한 울타리가 생겼다. 10년이 지나도 선배님들의 그 따뜻했던 배려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조금 진정이 되자, 선배님들은 시원한 비타민 음료를 나에게 건넸다.


"OO아, 처음이라 서툴고, 혼도  많이 나겠지만 힘들어도 지금처럼 웃으며 열심히 배우려는 모습 보여주면 선배님들도 많이 가르쳐 주려고 할 거야. 그러다 보면 금방 일도 익숙해질 거고, 오늘처럼만 하면 돼. 고생 많았어"


팀 선배님들이 나에게 하는 한마디 한마디, 건네는 미소, 어깨를 토닥여줬던 손바닥의 온기까지 그 모든 것이 위로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의 첫 상위 클래스 데뷔 비행이 끝이 났다.


비행을 하며 참 많은 선배들을 만났다.

퍼스트 클래스 근무할 때, 정갈하게 카트 차림을 차리는 법부터, 승객에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 상위 클래스에 어울리는 우아한 승무원이 되는 법까지. 나는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좋은 것은 내 것으로 만들며 마침내 선배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내가 비행을 하며 만났던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선배들이 나게 보여주었던 그 사랑이 내 안에 살아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던 그 사랑을 이제 선배가 된 내가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처음 상위 클래스에 데뷔로 걱정하는 후배에게 누구나 처음은 있고 차근차근해보자라고 이야기하며 함께 해내가고, 후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칭찬해 주었다.


어느 날 나와 함께 첫 상위 클래스 데뷔를 마친 후배가 나에게  고맙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상위 클래스 첫 데뷔 비행 후 후배가 보내준 문자♡


승객들이 모두 잠든 퍼스트 클래스 앞쪽.

처음 데뷔 비행을 하는 후배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고, 후배는 실전에서 기억해야 하는 것을 열심히 노트에 적었다. 새로운 것을 열심히 배우려는 후배의 반짝이는 눈이 예뻤다.


질문의 시간이 지나고, 후배는 나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나는 내가 가장 존경하던 선배님이 해주신 말을 후배에게 전했다.


"언제가 OO가 선배가 되었을 때, 오늘을 기억하길 바랄게.  또한 상위 클래스가 처음이 던 그 시절 좋은 선배님들께 도움을 많이 받았어. 그리고 상위 클래스에 걸맞은 좋은 서비스를 배웠어. OO도 후배들에게 상위 클래스에 걸맞은 서비스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선배로 성장하길 바랄게. OO는 잘할 거야!"


이야기를 들은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언제 상위 클래스에서도 날아다닌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경험하기 싫었지만 혼도 많이 났고, 실수도 많이 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 안에 은살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상위 클래스에서도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는 베테랑 승무원이 되어있었다. 늘 그렇듯 피하고 싶은 순간들은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공항 도착 후 유니폼을 입고
울어버렸던
 미숙했던 그 시절의 내가,
선배님들이 만들어 놓은
 동그란 원안에서
위로받고, 성장했다.

그리고 이젠
내가 받았던 그 사랑을
내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의 내리사랑은
계속될 것 같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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