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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 되는 날 로마에 있었다.

꿈꾸는 인생을 산다는 건.


승무원을 하다 보면 다양한 나라에서 생일을 맞곤 한다. 다양한 축하들이 있었지만, 그중 기억이 남는 생일 축하는 비행기 안에서 팀원들이 축하해주던 날과 올타팀에 조인됐는데 전팀 후배가 팀 사람들한테 이야기해서 서프라이즈로 생일 축하를 받았던 날 그리고 로마에서 보낸 서른 살 생일이 기억에 남는다.


내 나이 서른 되는 날.

나는 로마에 있었다.

나는 늘 서른 살이 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스물아홉과는 확연히 다른 완벽한 어른이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막상 서른이 되어보니 나는 그대로의 나였다. 친구들을 만나면 마냥 신나 하고, 다이어리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비행을 좋아하는 그대로의 나였다. 이런 걸 보니 오십이되어도 청춘이라는 이야기가 와닿았다. 내면의 나는 그대로인데 나의 겉모습만 나이 드는 것이 다소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막상 인생을 살아보니 생각보다 나이에서 오는 인생의 변화보다 아이를 낳고 찾아오는 변화가 훨씬 강도가 셌다. 그리고 나의 우려와는 달리 생각보다 나의 서른은 행복했다.


나의 서른 살이 행복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결혼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사랑하는 남자와 서른 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매일을 함께 사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10박 11일의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회사가 선물로 준 것만 같던 로마 5박 6일의 스케줄을 다녀왔다.


로마 비행을 준비하면서 다소 아쉬웠던 것은 우리 팀원들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득한 다른 팀 비행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긴 신혼여행으로 고된 나에게 호텔에서 충분한 휴식이 가능한 비행이었기에 그것마저도 좋았다.


로마 비 날이 찾아왔다.

타 팀원들의 대부분은 가족을 동반했다.

5박 6일 로마 스케줄 같이 좋은 스케줄에 해당 비행기에 좌석이 남는다면 많은 승무원들은 가족을 모시고 함께 떠난다. 90프로 할인된 티켓과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호텔에 머무르기에 여행에서 가장 부담되는 비행기 값과 숙박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투어에 드는 비용과 식비지불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싼 비용을 들여 로마투어 5박 6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나 또한 남편과 함께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이미 10박 11일 칸쿤 신혼여행을 다녀왔기에 이번 비행은 함께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휴가 때 이미 로마를 모시고가 여행을 시켜드렸기에 5박 6일 로마 꽃 스케줄은 나 홀로 가게 되었다.


로마에서 내 나이 서른 되던 날.

호텔방에 누워있는데, 밤 12시가 되자 화상통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이제는 남편이 된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열심히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그의 축하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 이후 이어지는 가족들과 내 사람들이 전해주는 축하에 비록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행복한 이유들이 가득한 생일날을 보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마음이 맞는 부팀장님과 로마 시내 투어를 하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로마의 하늘과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스페인 광장에 있는 계단에 앉아 바닐라맛과 초코맛의 젤라토를 한입 먹었다. 로마에서 먹는 특유의 찐득하고 달콤한 젤라토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울퉁불퉁한 로마의 바닥을 편한 운동화를 신고 걸어가다 보니 공사 중인 트레비 분수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서 나는 몇 번의 동전을 던졌던가.

다소 추운 봄에 내가 참 좋아했던 팀 언니와 함께했던 로마 밤 투어와, 햇빛 쨍쨍했던 여름날 6명의 마음 맞는 팀원들과 함께했던 왁자지껄했던 로마 투어와 엄마와 함께했던 휴가로 왔던 행복했던 로마 투어까지 같은 로마였지만 내 기억 속 로마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걷다 보니 판테온이 눈에 들어왔다. 웅장한 건물 앞 열정 가득 연주하는 재즈 트리 오분들의 노래를 들으니 내가 정말 로마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예쁜 파라솔이 펼쳐져있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화이트 와인과 피자 그리고 시저 샐러드를 시켰다. 덥고 배고팠었는데, 시원하고 달달한 화이트 와인 한잔과 피자 한 조각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 앉아 로마라는 곳을 투어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 이 시간이 갓 승무원이 되었을 때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었는데, 이제 승무원을 된 지 10년이 지나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우리의 테이블 위에 한 조각의 치즈케이크가 올려져 있었다. 함께 투어를 한 부팀장님의 깜짝 선물이었다. 생일날 머나먼 타국에 와서 외롭게 생일을 보냈을 나에게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해주었다. 예상치 못한 배려에 감동을 받아 눈물이 울컥했다. 재즈 트리오의 연주 소리와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낯설지만 누구보다 고마웠던 이의 미소 띈 얼굴과 로마의 햇빛으로 기억되는 서른 살의 생일을 보냈다.

불과 3일 전만 해도 나는 멕시코 칸쿤의 카리브해에 눈부셔했는데, 어느새 로마의 이국적인  모습에 매료되어있었다.

꿈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토록 꿈꾸던 승무원이 되었고, 그 선물로 전 세계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선물을 받고 있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어느 나라로도 떠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해지는 직업. 



내 나이 서른 되는 날 로마에 있었다.
그리고
내 나이 서른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내가 승무원이라는 이유로


서른살 되는 날 로마에 있었다.
내 기억 속 로마의 모습 중 하나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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