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의 진상 선배 대처법

삐뽀삐뽀, 진상 선배랑 비행하게 됐다.


비행을 하다 보면 억울한 상황을 종종 만나곤 한다.

선배의 잘못이 내 잘못이 되고, 이상한 팀장님의 잘못이 나의 잘못이 되어버리는 상황.


갓 승무원이 되었을 때는 이런 억울한 순간을 마주하면, 공항에서 하염없이 울기도 했고,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인 듯, 비행 5년 차가 되자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거나, 재즈댄스학원에 가서 열심히 춤을 추는 등의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 인간관계에서 찾아오는 피로도를 낮췄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비행 10년 차가 됐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곳에서 나는 진상 선배에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 후배가 되었다.


한 번은 한 팀으로 되어있는 팀에 나 혼자 타 팀으로 조인을 해서 장거리 비행을 간 적이 있다. 사실 이런 비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이 친해진 팀원 사이에 처음 본 사람이 들어와서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비유가 적절할 듯싶다. 하지만 비행 스케줄이 배정되는 상황 이런 비행도 배정되곤 한다.


그날은 브리핑 때 나와 비슷한 사번을 가진 아나운서같이 단아한 이미지의 선배와 인사를 나누며 오늘은 좋은 선배와 같이 비행하겠구나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선배와 함께 같은 클래스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 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에 바쁘게 맡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 그 선배는 본인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우선순위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약간의 불길한 느낌은 감지가 됐지만, 정신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업무까지 함께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바쁜 보딩 시간이 끝나고, 승객들의 식사를 힛팅 하고 이륙을 했다.

식사가 알맞은 온도로 익기까지는 식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15분에서 20분까지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기에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식사를 힛팅 하고 이륙 후 안전고도에 다다르면 어느새 식사는 맛있게 힛팅 되어있다.


그날도 비행기가 안전고도에 이르고 식사가 잘 익었는지 체크를 하는데, 오븐 하나가 돌아가지 않았다. 차가운 28개의 식사가 내 눈앞에 들어왔다. 그때쯤 팀장님께서 객실을 순회하며 내가 있는 곳까지 오셨다. 한 오븐이 힛팅 되지 않은걸 확인한 선배가 팀장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내 팔을 갑자기 잡아끌며 화를 냈다.

"아니, 식사 힛팅이 안됐잖아. OO 씨 이것도 확인 안 하면 어떡해?"

갑작스러운 선배의 호통에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자신의 팀 팀장님 앞에서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나에게만 잘못을 넘기고 싶은 듯 보였다. 이런 부류의 선배들을 만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기에 나는 차분한 표정으로 웃으며 선배님에게 대답했다.


"식사 힛팅 할 때 선배님이랑 같이잖아요.

그때는 버튼도 다 들어와서 힛팅이 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오븐이 고장 났나 봐요. 팀장님 제가 고장 난 오븐 번호 적어드릴게요. 현지 도착하면 정비사님한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라고 말했고, 선배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힛팅 된 식사를 식사 카트에 세팅하고 고장 나지 않은 오븐에 힛팅 되지 않은 식사를 세팅하고 다시 힛팅 했다. 단아한 그녀는 팀장님 앞에서 선배인 자기가 깨도 깨지지 않는 코렐(?) 같은 후배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자꾸 쫓아다니며 나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나는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그 자리를 피했다.


예전에는 이런 부류의 선배들과 비행을 하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왜 그러는 거지?'

억울한 생각에 비행이 끝나 호텔에 오자마자 다 토하는 등 내 몸은 점점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다.

'그들은 내 상사가 아니기에 나를 평가할 수 없고, 내 인생에 중요한 사람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해도 의미가 없고,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가짐을 바꾸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도가 적어졌다.


오랫동안 비행하며 깨달은 진상 선배 대처 노하우는 다음괴 같다.

첫째, 그 비행에선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

그런 진상 선배는 후배가 작은 실수라도 했을 때 더 크게 부풀려 잔소리하는 부류이기에 내가 맡은 업무를 신경 써서 더욱 완벽하게 낸다.


두 번째, 승객과 다른 동료에게 잘한다.

승무원으로서 승객에게 잘하는 승무원을 팀장님 부팀장님은 좋아하신다. 비행 동안 웃으며 친절하게 승객과 동료들을 대하면 팀장님과 부팀장님이 칭찬을 하시게 된다.

"어쩜 그렇게 친절하게 서비스를 잘해요?"

라는 칭찬을 듣게 되면 팀장님 부팀장님은 내 편에 서게 된다. 그러면 팀장님 부팀장님께 인정을 받은 나를 더 이상 진상 선배가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마지막 세 번째, 마인드 컨트롤이다.
'누군가 나를 오해한다고 해서 내가 소진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소노 아야코 작가의 '약간의 거리를 두다'에서 나오는 문장을 다시금 되뇐다. 이상한 선배와 비행한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은 소진되지 않는다. 그 본질에서 위로를 받는다.


10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선배님과 비행을 했고, 많은 경험을 했다. 물론 배울 점이 많은 선배님도 많았지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승무원 세계이기에 그렇지 않은 선배님들도 있었다. 승무원의 직업의 단점 중 하나가 엄격한 위계질서도 해당된다. 엄격한 위계질서로 포장된 상황 속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후배를 공격하는 진상 선배를 만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나를 보호하는 진상 선배 대처법으로
나 자신을 지키며
비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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