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교육생 시절.
아직은 어색했던 유니폼을 입고 서비스 교육을 받고 있었다.
커피와 차 서비스를 배우고 있었는데 교육원생 한 명씩 나가 시연을 했다.
동기들이 좌석에 앉아 승객 역할을 하고, 두 명의 교육생이 승무원 역할을 맡아 한걸음 한걸음 미소를 띠며 커피를 드실지 여쭤보는 과정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며 시연을 했고, 시연이 끝나자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OO 씨는 교육생인데도 퍼스트 클래스 승무원의 우아함과 친절함이 느껴지네요. OO 씨한테 서비스받으시는 승객들이 좋아하시겠어요."
아직 서비스의 '서'자도 잘 모르는 내게 강사님께서 해주셨던 그날의 칭찬을 12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아마도 다짐했던 것 같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이 되어야겠다고.
단순히 음료 한잔을 건네도 그 안에 정성과 진심을 담아 모든 승객들을 만족시키는 그런 서비스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 비행을 시작했을 때, 나의 초심은 무너져 내렸다.
나의 첫 장거리 런던 만석 비행.
갓 비행을 하게 된 나에게 '막내 승무원'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막내 승무원이 담당해야 하는 구역은 이코노미 클래스 앞쪽. 막내인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건너편에는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가장 경력 있는 선배님이 배정이 된다.
드디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고, 첫 장거리 비행이 시작됐다.
정신없이 막내 승무원의 역할인 신문 세팅을 하고, 탑승 인사를 했다.
비행기는 이륙했고, 식사 서비스가 시작됐다.
나는 초심대로 승객 한 분 한 분 정성 들여 식사 서비스를 했다. 그렇게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부팀장님과 함께 서비스를 하는 나보다 혼자서 서비스를 하는 건너편 선배님이 좌석의 세줄이나 앞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도저히 빠르게 진행되는 건너편 선배님의 식사 서비스 속도를 쫓아갈 수 없었다. 처음엔 세 개가 있었던 메뉴가 빠른 속도로 두 개가 되더니 마침내 한 개가 되었다. 내 담당구역에 있던 승객들에게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두 번째 식사 때는 가장 먼저 식사 선택을 받겠다고 했다.
진땀 나는 첫 번째 서비스가 끝나고 갤리로 들어오자 건너편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나를 쏘아보며 한마디를 건넸다.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퍼스트 클래스처럼 서비스하고 있네. 그렇게 느리게 하는 서비스는 이코노미와 어울리지 않아."
가슴에 쿵하고 내려앉았다.
나의 초심이 잘못된 것인가?
답을 내릴 틈도 없이 두 번째 식사 서비스가 시작됐다.
우선 두 번째 서비스는 속도를 붙여 빠르게 진행했고, 다행히 식사 초이스를 다 받을 수 있었다.
한 분 한 분 정성 들여 서비스를 하고 싶었는데, 이코노미 식사 서비스 시에서는 모든 승객들에게 더 많은 식사 초이스를 제공해 위해서는 빠른 속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빠르게 서비스하되 더 친절한 미소로, 식사 서비스가 아닌 시간엔 한분, 한분 정성 들여 서비스하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막내 승무원 시절.
나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선배에게 깨졌지만, 클래스별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의 모습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어느새 12년.
나는 감사하게도 나의 초심을 지키고, 퍼스트 클래스에 어울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이 되었다.
언제가 비행을 하다 보면 나의 막내시절이 떠오르는 승무원들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친절히 서비스하려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기특해 보인다.
물론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많은 사람들도 있다.
외항사에서는 승무원에게 친절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승무원에게만 너무 친절을 강요한다는 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승무원의 직업의 특성상 승객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로 모셔야 하는데, 무뚝뚝하고 친절하지 않는 서비스보다 아픈 승객에게 먼저 다가가 괜찮으신지 물어보고, 아이가 있는 승객의 마음을 헤아려 다가가 말 걸어주는 승무원이 있다면 누군가의 하늘 길이 더 따스하게 기억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친절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승무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고객이 행복하면 나 또한 행복해지는 사람. 나는 감사하게도 그런 사람이어서 아직도 내 직업에 애정을 가지고 비행을 하고 있다.
막내 승무원 시절 선배에게 깨졌지만, 12년 동안
내가 지켜온 소신대로
서비스할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