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비행을 하는 이유와 닮았다.


처음에 브런치는 나의 놀이터였다.

코로나 시대에 비행을 쉬고 있고,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아기 엄마인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놀 수 있는 곳.

글을 쓸 때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이유 없이 글 쓰는 것이 좋았다.


내가 처음 ‘브런치’라는 곳을 알게 된 건, 아이를 재우며 무선 이어폰으로 오디오북을 통해 태수`문정 작가님의 '1cm 다이빙’을 듣게 되면서였다. 책에선


“그동안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누가 물어보면 잘 대답하지 않았지만 사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브런치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 글을 올려보고 싶긴 해."


직업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작가로 활동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고.

그런 작가님의 말을 듣고, 순간 아이를 재우다 말고, 오디오 북을 멈췄다.

그리고 브런치를 검색하게 되었다.


나의 인생의 멘토이셨던 아버지께서 내가 아이를 낳고 항공사에 복직을 할 때, 나에게 비행에서 느낀 것들을 로 써보는 것이 어떻겠니라며 권하셨다. 사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 다만 시간이 없었을 뿐.

비행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아이를 키우느라 글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을 하는 나에게 아버지 거창하게 시간을 들여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핸드폰 메모장에 간단히라도 적어보라고, 경험은 시간 지나면 잊히기에 기록해 두면 나에게 큰 자산이 될 거라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비행 가는 리무진 버스에서, 해외 어느 곳에서, 지쳐 쓰러져 자고 일어나 침대에 기대어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글을 썼다. 아버지는 나에게 글 쓰는 습관을 만들어 주셨 것이었다.

그렇게 내 메모장에는 1년 치의 비행 이야기가 모였다.


해외의 찬란한 것들을 보고 느낀 어떤 것들, 내 일을 사랑하는 이유, 또 언젠가 선후배 관계로 고민을 하던 날과, 내가 가진 역할에 대한 중압감에 대해 적었다.

매일 1시간씩 아버지와 통화하며 아버지께 인생의 혜를 배웠던 시간들. 아버지와 글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은 아버지는 폐암 말기 환자도 아니셨고, 나 또한 아픈 아버지의 딸이 아닌, 그저 딸바보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의 관계였다.

그게 좋았다.

폐암 말기 셨던 아버지를 웃어 보이게 했던 내 글이.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책 한 권 내서 아버지 손에 놓아 드리고 싶었다.

아버지와 내가 쓴 책이라며-

하지만 생각보다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시면서 고민하고 있던 그날 밤, 브런치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 신청을 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하여, 그동안 쓴 글 중 3가지를 추려 작가 신청을 했다. 작가 심사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항공사에 취업한 후로는 다른 일에 도전을 해볼 일이 없었기에 그 오랜 기다림 후 찾아온 ‘합격’이라는 결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꿈만같던 브런치 합격 메일.
브런치 작가가 되니 너무도 좋아하셨던 딸바보 아빠.

'브런치'라는 곳에서는 나에게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해준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아버지는 너무도 행복하게 웃으셨다. 아프신 아버지를 웃게 해 드린 '브런치'라는 공간이 참 고마웠다. 아버지가 미소 짓던 그 시간 내 마음에 위안이 찾아오곤 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 만에 아버지의 병이 안 좋아지셨고 글을 쓸 시간이 없어졌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마르지 않는 눈물의 시간이 지나고,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나에게 많은 것들을 남주시고-


나의 우주가 사라진 느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더 치열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가치 있는 그 어떤 일도.


그러던 중 아버지가 너무 사무치게 그리워 눈물로 쓴 글이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에게 읽히게 되었다.

‘딸 바보 아빠가 죽었다."라는 글이 조회수가 19만이 넘어가면서 처음엔 사람들의 관심과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컸다. 하늘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께서도 함께 웃고 계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담감이 찾아왔다.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작가로 불리는 것도 낯선 내가.

감사하게도 23개의 글 중에 5개가 다음 메인과 브런치 메인 창에 걸리자, 너무도 감사한 마음과 함께 부담감 찾아왔다.


너무도 감사했던 순간들의 기록.
믿기지 않는 감사한 기록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두 달 여만에 나의 글에 대한 총조회수가 이십오만 명에 달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좋은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좋아하던 글 쓰기가 어려워졌다.

잠시 핸드폰을 무음으로 하고 생각에 잠겼다.

결국 내 안에서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것을 알기에-

우연히 보게 된 ‘대화의 희열’에서 선배인 유희열 님이 후배인 아이유 님께 조언해 주는 영상이 생각이 났다.



“네 논리가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서는 방향성이 있을 거야.
어떤 경우든지 네 논리가 확실하면
너는 안전해.
세상의 반응보다 그게 더 중요해.”


이제 막 글을 쓴다고 이 관심도 버거워하는 내게 아이유라는 유명한 가수가 느낄 중압감과 그 중압감을 덜어주는 선배로서의 유희열님의 조언이 너무 좋아 마음에 담았다.


사실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똑같은 햄릿을 읽어도 수백만의 햄릿이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 살아왔던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에

그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옳다고 믿고 있는 소신과 내가 살아온 인생을 한 글자 한 글자 쓰다 보면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한 문장이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김창옥 강사님 강의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오는 이유는
결국 그 강의를 통해
자신을 보기 위함이라고,
자신의 강의는 그들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말씀하셨다.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사람들은 내 글을 통해 자신을 투영해 본다는 것을 이젠 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떠한 거울이 될 생각보았다.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를 소개할 때 하셨던 다음과 같은 멘트가 마음에 았다.


“때로는 세계적인 석학의 강연보다
부모가 들려주는 조언 한마디가
인생에 도움을 줄 때가 있습니다.
신문의 경제면 기사보다
동네 편의점 사장님의
말 한마디가 피부에 더 와닿는
경우도 있고요.”


어쩌면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 그런 글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어렵게 승무원이 되어 12년 동안 행복하게 비행을 하면 인생을 배운 시간, 그 시간들이 승무원을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고,


폐암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내드리면서 느꼈던 과정과 감정이, 어딘가 존재할 슬픔에 빠져있는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도 있고,


몸이 3개라도 모자란 너무도 행복하지만, 고단한 아기 엄마의 그 힘듦과 아이가 자라나는 빛나는 일상을 나누며 누군가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


거리 비행에 도착해서도 너무 좋아해 졸린 눈을 비비고 봤던,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극 중 손범수(안재홍)는 드라마 감독으로 나온다. 그는 자신이 함께 일하고 싶은 드라마 작가 임진주(천우희)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했다.

난 택배 받는 것도 좋아하고,
식당에서 메뉴판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거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 일이 좋아요.

무엇보다 소중한 이 일을
작가님과 하고 싶다는 거예요.
막 아니고 잘.

이 대사를 만났을 때,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거지?'

라며 감탄했다.

사실 이 대사를 만났을 때 생각했다.

나 또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손범수 드라마 감독만큼 좋아하는데, 나랑 똑같라고.


"도대체 왜?"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날을 새고, 감정 노동을 하며,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 어려운 사회생활과, 선후배 관계 단점을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나는 이 많은 단점들을 12년을 겪고도 승무원이라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직업에 수많은 단점을 덮을 더 많은 장점을 찾았고, 그렇게 나는 내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사랑하기 쉬운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이유를 말하기보단 이유 없이 이 일이 좋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비행을 하는 이유와 닮았다.
이유 없이 좋다.

세 살 아이를 키우며, 잠을 줄여 글을 쓰고 있다. 아이와 놀아 줄 때는 핸드폰을 최대한 보지 않기에, 아이 목욕을 시킬 때 썼던 글을 퇴고하고, 아이가 잠든 새벽 일어나 글을 쓴다.

잠이 부족한 아기 엄마가 이렇게 잠을 줄여 글을 쓴다는 건 좋아하는 일이라고밖엔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것뿐인데,
내 글을 보고 좋아해 주는 누군가의 라이킷을 받고, 소중한 댓글을 읽으며, 196명이라는 귀한 구독자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

나를 12년 동안 비행하게 한 원동력이 여기에 있었다. 이 원동력의 힘을 알기에 나는 아마도 오래도록 글을 쓸 것 같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이 마음이, 귀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전해지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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