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을 꿈꾸고 있다면 이걸 꼭 해보시길 권합니다.
이번 생애 승무원 지망생은 처음이라
12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승무원으로 행복하게 비행을 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문득 승무원 지망생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승무원'이 되는 게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
그 시절 내가 가장 잘 한일을 뽑는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많은 경험을 해보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공감 가는 내용이 있었다.
신은 각각의 개인에게 무언가를 잘하는 재능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 자신이 알려고 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게 꽁꽁 숨겨놓았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나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은 영 재능이 없었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다.
요리를 영 재능이 없었다.
이 세상에는 '나'라는 사람은 하나이기에 각기 다른 '내'가 잘하는 것 또한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뿐이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영영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가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또한 '경험'을 통해 나에게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천직이 될 것이라는 힌트를 찾아냈다. 이런 힌트를 만날 때면 내 인생에 보물을 찾은 느낌이 들곤 한다. 이런 보물을 만났을 때 나는 깨닫는다.
'나는 이걸 했을 때 즐겁고, 행복하구나.'
'나는 이걸 잘하는구나.'
내가 보물을 만났을 때는 내 나이 20살이었다.
갓 대학생이 되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 너무 신났고, 고객들과 소통하고, 서비스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나는 고객이 말하기 전 고객이 원하는 게 눈에 먼저 들어왔었다. 가령 바비큐 폭립을 드시는 분들은 손에 양념이 많이 묻기에 먼저 다가가 고객이 요청하기 전 여분의 물티슈를 준비해드렸다. 예상하지 못한 서비스를 먼저 제공받은 고객들은 더욱 고마워했다.
그리고 아이를 동반한 고객들에게 각별히 더 신경을 썼다. 아기 의자와 식기류를 준비해 드리며 수시로 도움이 필요한 게 없는지 살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고,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상대방에 모습을 보는 것이 그냥 좋았다.
인생에 뜻하지 않는 사건은 여기서 발생했다.
그렇게 즐겁게 그곳에서 일한 지 일주일 만에 나는 최다 칭찬사원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칭찬사원을 시상하는 시간이 있었다. 키가 크셨던 점장님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호명되었다. 멍해져서 서있는 나를 옆에 있던 동료 언니가 앞으로 가라고 살짝 밀어줬다.
그때 알았다.
점장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내 이름이라는 것을
잠시 얼떨떨했다.
"새로 들어온 신입생이 이렇게 칭찬 사원도 되고 대견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부탁해요."
점장님의 말씀이 끝나자, 다른 동료들의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내 손에 놓인 봉투에 담긴 외식 상품권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서비스하는 게 즐겁구나.
나는 이 일을 잘하는구나.'
그렇게 나는 감사하게도 그곳에 일하는 동안 계속해서 칭찬사원이 되었다. 그곳에서 받은 외식 상품권이 많아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내 돈을 주고 밥을 사 먹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나에게 숨겨진 재능을 찾았다. 나는 서비스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며, 그것을 통해 뿌듯함을 얻는 사람이었다.
시니어 사무장님들이 내가 갓 입사했을 때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승무원이 서비스를 잘하기 위해서는 센스가 필요해."
많은 승무원들이 있고, 항공사에서 정해준 서비스 가이드라인이 있다. 작은 차이가 서비스의 질의 차이를 만든다. 나는 이것을 타고 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서비스 가이드라인에서 누군가는 서비스를 누군가는 감동을 전달한다.
내가 승무원 지망생 시절 계속해서 내가 원하던 항공사에 공채가 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승무원이 안되면 죽을 것 같던 시절이라 몇몇의 항공사의 공채가 나는 것을 보며 내가 원하지 않는 곳이라도 지원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옆에 있던 친오빠에게 살짝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오빠, OO항공사 공채 났는데 지원해볼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오빠는
"네가 원하는 항공사가 아니잖아. 조금만 더 참고 원하는 곳에 원서 넣어. 그래야 후회가 없어."
오빠의 대답에 마음이 쿵하고 떨어졌다. 15년이 지났지만 오빠가 나에게 했던 그날의 말은 잊히지 않는다. 조급한 나를 잡아줬던 오빠가 있었기에 나는 다행히도 원하는 항공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빠의 말이 맞았다는 걸 알게 해 주는 사건이 있었다.
친했던 학교 후배가 조급한 마음에 원치 않는 항공사 면접에 지원했고, 덜컥 합격하게 되어 그곳에 입사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 후배와 한국 도착 시간이 비슷한 날 약속을 잡아 공항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적이 있었다. 서로 다른 항공사 유니폼을 입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녀는 나에게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나도 언니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오빠의 조언 덕분에 나는 눈 돌리지 않고, 내가 목표한 항공사의 공채를 기다릴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서비스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며, 수영을 다니고, 면접 준비를 하면서 공채를 준비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서비스직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정리해 면접에 녹여 답 할 수 있도로 준비를 하였고, 수영도 실력이 늘었으며, 토익 점수도 목표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항공사 공채가 났다. 나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동안 내가 승무원 지망생으로서 성실히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빛을 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면접 합격을 받으며 마침내 그토록 간절히 꿈꾸던 승무원이 되었다.
내가 승무원을 꿈꾸던 시절.
여러 가지 상황들로 나는 정말 승무원이 안되면 죽을 것 같은 시절을 보냈다. 이 간절함은 내가 12년 동안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하면서 아직도 이 직업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코로나 시기로 항공사 공채를 기다리는 많은 승무원 지망생들의 조급한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나 또한 그 간절함을 가지고 언제 날지 모르는 공채를 기다려봤다. 하지만 조급해한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지금, 여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늘 마음에 새기는 말이다.
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찾아왔을 때,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곳에 힘을 쏟았고, 훗날 큰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라는 힘든 시기를 나에게 숨겨진 재능을 찾는 시기로 만들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승무원 지망생 시절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비스가 적성에 맞는다는 걸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면접 노하우라고 한다면 경험을 녹여 면접 대답을 준비하는 것이 면접관님 귀에 더 잘 들린다는 사실이다. 부디 이 경험들을 통해 면접관님의 마음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일들을 만나길 바란다.
반짝이는 파리의 에펠탑을
숨이 탁 트이는 취리히의 자연을
발리의 여유와 낭만을
승무원이 되고 싶은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그러니 부디
포기하지 말고,
조금 더 힘내기를
나의 이 글이
승무원을 꿈꾸는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승무원이 되고 싶은 당신과 나누고 싶은 모든 곳들.
*이미지 출처: Unsplash,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