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되기 전 나에게는 꿈의 지도가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주신 인생의 가장 큰 선물
내가 가진 남다른 재주라고 한다면, 나는 늘 상상하던 것들이 현실로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는 다양한 사진들이 가득한 한 권의 책과 하드 보드지를 사다 주셨다. 그리고는 앞으로 되고 싶은 것 살고 싶은 집, 갖고 싶은 차 등을 하드보드지에 오려서 붙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름하여 ‘드림보드’였던 것이다.
집안 상황이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아버지께서는 돈 대신 우리에게 꿈을 선물해 주셨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아버지가 우리에게 '드림보드'를 만들게 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살고 싶은 집, 갖고 싶은 차,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에 해당하는 사진을 잘라 풀로 하드보드지에 붙여 ‘드림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드림보드'를 내 책상 앞에 붙여 주셨다. 그리고는 책상 앞에 붙여두고는 가끔씩 쳐 다는 보라고 알려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꿈의 시각화'에 대해서
매일매일 '드림 보드'를 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내 삶에 함께 존재하게 됐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승무원이 되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게 될 때쯤, 우연히 보게 된 나의 ‘드림보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계일주 하자,”라는 문구와 함께 세계 각 나라의 사진들이 붙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승무원 입사 교육을 1등으로 수료한 것에서부터, 나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내가 존경하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라는 것과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시간이 지나 ‘드림보드’의 많은 부분을 이룬 현실을 보고,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알려주신 '꿈의 시각화'는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무언가 해야 할 목표가 생기면 포스트잇에 적어 거울 앞에 붙이고, 될 때까지 생각하고 상상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이루어졌다.
많은 선택과 '꿈의 시각화'로 이루어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마음에 든다. 나는 나의 좌우명처럼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반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라’와 같이 충분히 내 인생에 반하며 살고 있다.
유치원 원장님이시던 어머님을 따라 유치원 원장님을 꿈꾸던 내가 상황상 갑자기 유치원을 정리하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3 때 갑작스럽게 꿈을 잃고, 고3 담임 선생님 추천으로 승무원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승무원을 목표로 항공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우연히 아르바이트하게 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한 달 내내 칭송 사원으로 선정됐고, 서비스가 나의 적성에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승무원이 안되면 죽을 것 같은 시절.
몇 번의 좌절을 겪고, 승무원이 되기 위해 몇 달을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면접 공부부터 내가 되고 싶은 항공사의 정보를 완벽하게 외웠다. 완벽하게 외우자, 마치 외운 것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노하우까지 얻게 되었다.
거울보고 미소를 유지하는 연습부터, 정확한 발음을 위해 연필 물고 방송문 연습하기, 전신 거울 앞 6cm 하이힐 신고 무릎 붙이고 10분 버티기 위해 안 붙으려고 부들부들 떨리는 양 무릎을 이 악물고 붙이는 연습을 했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 수영은 필수기에 수영 시험을 위해 아침 수영을 다니고, 영어 공부를 위해 토익학원에 다니고 매달 토익 시험에 응시했다.
'간절함'으로 승무원을 꿈꾸었고, 이 모든 노력으로 나는 면접 중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면접이 끝날 때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양 무릎을 곧게 붙일 수 있었다. 면접관님에 질문에 떨지 않고 내 생각을 담은 답을 할 수 있었고, 정확한 발음과 톤으로 방송문을 읽고, 원어민과의 회화 시험에서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미리 연습해 놓은 수영 덕분에 수영 시험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동안 수영과 헬스로 만든 체력으로 두 달 정도 진행되는 강도 높은 항공사 입사 교육을 견딜 수 있었고, 시험이 있는 꽤 많은 날들을 날을 새고 공부를 했다. 혹시라도 수업시간이 졸음이 오면 지압 펜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잠을 쫓았다.
마침내 많은 동기 중 1등으로 입사 교육을 수료했을 때 동기가 우연히 보게 된 내 허벅지의 멍을 보며 '이 정도 노력해야 1등 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내 손에 놓여진 우수상 상패사장님께 받은 우수 상패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기분 좋은 뿌듯함을 잊지 못한다.
교육 중 하루는 유니폼과 앞치마 가디건 구두 캐리어를 지급받는 날이 있었다. 소중히 들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전 유니폼을 꼭 안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잠들던 그날 밤을 기억한다.
마침내 승무원으로서 첫 비행을 가던 날.
내가 승무원이 되며 유니폼을 입고 어떤 걸음걸이와 어떤 표정으로 걸을지 늘 상상해왔었다.
하네다로 첫 비행을 가던 그날.
나는 내가 꿈꾸던 그 상상 그대로의 걸음걸이와 표정으로 공항을 걷고 있었다.
승무원이 되기 전
나에게는 꿈의 지도가 있었고,
나는 마침내 '꿈의 시각화'와
'간절함' 그리고 '노력'으로
그 꿈을 이뤘다.
그렇게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평생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인생을
선물을 받았다.
이루워진 나의 꿈의 지도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