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년제 항공과를 졸업하고,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내가 원하는 항공사에 아주 어렵게 입사했다. 간절히 원하던 승무원이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 취업을 하다 보니 공부다운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14시간 뉴욕 비행.
날을 새고 하늘을 걸어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비행 관련 특이사항에 대해 디브리핑을 마치고, 짐을 찾아 게이트를 나선다. 화장실에 들어가 유니폼 위에 미리 준비해둔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빠르게 공항철도에 탑승한다. 뉴욕에서 나와 3박 4일을 함께한 묵직한 케리어와 헹어 그리고 작은 케리어까지 세 개의 가방을 끌고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7cm 하이힐을 신고, 케리어를 끌고 숨 가쁘게 드디어 도착했다. 이곳에.
"하아"
숨을 몰아쉰다.
자, 이곳에서부터 나는 더 이상 승무원이 아니다.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볼을 스치고, 바사삭 소리를 내며 바스러지는 짙은 갈색의 낙엽을 밟으며 나는 또깍또깍 구두 소리를 내며 교정을 걷는다.
지금부터 나는 '학생'이다.
14시간 장거리 비행 후 한국에 오후 5시에 착륙했고, 이동해서 학교에 오니 시계는 어느새 오후 6시 30분. 수업 시작 전 빠르게 허기를 채우기 위해 차가운 김밥과 졸음을 쫓아줄 커피를 마신다.
강의실에 도착했다.
강의실 뒤편 케리어를 정리해 세워두고. 자리에 앉아 전공서적을 핀다.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7시부터 10시의 수업 시간 눈꺼풀이 내려오지만 어떻게든 잠을 깨고 수업에 임한다. 그렇게 잠과의 사투를 벌인 수업이 드디어 끝났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일으켜 세워무거운 케리어를 챙겨 밖으로 나간다. 익숙한 밤공기와 어둠이 내린 교정이 나를 반긴다. 방금 전까지 나는 뉴욕 하늘 아래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한국의 밤하늘아래에 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잠에서 깬 지 22시간째.
이쯤 되면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몽롱한 상태가 된다. 그렇게 피곤이 만든 구름 위를 한걸음 한걸음걸어 집에 도착한다. 빠르게 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어버린다.
이렇게 6년의 시간을 보냈다.
대학원 면접 날이 기억난다.
그날도 나는 비행이 있었다. 비행을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와 유니폼을 입은 채 면접에 임했다.
어떤 이유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려 하는지 교수님들께서물으셨다.
"훌륭하신 교수님들께 지식을 함양하여, 제가 사랑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이론적 고찰과 학업적 연구를 현업에 접목시켜 더 나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기다림과떨림의 시간을 지나 합격 통보를 받던날. 그 누구보다 좋아하셨던 건 딸바보 아버지셨다.
대학원 합격소식을 전했고, 퇴근하신 아버지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가족들과 축하했던 그날 저녁. 이제는 하늘의 계신 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어제 본 것 같이 따스하게남아있다.
사실 상 비행을 하며 대학원을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험 기간이면 하와이, 취리히, 방콕 같은 좋은 스테이션에서도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고 공부를 해야 했던 시간들과 어렵사리 휴가를 받아 떠나도 늘 내 가방 한편엔 과제가 담겨있었다.
장거리 비행 도착 후 충분히 피곤한데, 유니폼 위에 후다닥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바쁘게 학교로 향하는 나에게 팀원들은 그렇게까지 학교를 다녀야 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 배움의 시간이 좋다고 답했다.
교수님들께 듣는 다양한 강의 시간이 좋았다.
어느 날은 항공사의 동향에 대해 배웠다가, 어느 날은 모티베이션을 주는 리더십에 대해 배웠고, 또 어느 날은 인사 관리를 하는 법을 배웠다. 배운 만큼 시야는 넓어졌고, 배운 내용을 비행에 접목했을 때 오는 변화가 좋았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시간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지도교수님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감정을 쓰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돈은 사용하면 사용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감정은 사용해도 눈에 보이지 않죠. 하지만 분명히 사용한 만큼 그만큼의 감정의 소진이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다른 누구보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에게 더 많이 사랑받아야 합니다. 그리고나 자신을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꽃을 선물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소진된 감정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행복하게 오래 비행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했다. 그렇게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며 그날의 수업을 마쳤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교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꽃을 피어 남아있다.
그 말은 나에게'위로'였다.
장거리 비행 후 문득 모든 것이 소진된 느낌이 들던 날도, 슬픈 일이 있던 어느 날 내 감정을 숨기고 웃으며 서비스를 해야만 했던 날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내 감정을 다독여 줬어야 했던 것이었다.
'오늘 많이 슬펐는데, 웃으며 서비스하느라 참 고생했어. 이제 푹신한 침대에서 푹 쉬고, 하와이에 왔으니 푹 자고 일어나면 맛있는 에그 베네딕트
먹으러 가자.'
라고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나에게 사주는 장미 꽃다발과,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들, 남편에게 받는 사랑과 가족들에게 받는 사랑,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시간들이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괜찮겠지 넘겼던 대부분의 날들이 많았었다. 그 많은 날들을 묵묵히 견뎌준 나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 강의를 듣고, 왠지 모르게 힘든 날엔 나를 더 다독이게 되었다. 늘 보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나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분홍 장미 꽃다발을 사 꽃 향기를 맡으며 햇빛이 내리쬐는 두시의 하늘을 바라 보기도 하며, 좋아하는 여름날 밤공기를 마시며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신다.
나는 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나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면 힘들었던 내 마음도 어느새 힘을 얻어, 또다시 하늘 가득 사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이러한 배움을 통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져있었다.
그게 좋았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 했던, 잠을 못 자고, 힘들게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며 아등바등 비행과 학교를 병행했던 이유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힘든 시간이었다.
비행을 하며 대학원에 다녔고, 임신을 하고서도 대학원에 다녔다. 어느새 임신한 배가 자동차 핸들에 닿을 만큼 만삭이 되었을 때도 나는 대학원을 다녔다. 아이를 낳고 6개월 휴학 후 다시 복학을 하고 엄마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원서로 된 전공서적을 공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던 날 8개월이었던 아이를 겨우 재우고 나와 과제를 하던 새벽 3시. 그 고단함과. 그 고단함을 녹여버린 교수님의 칭찬과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의 격려.
그렇게 나는 비행을 하고, 공부를 하며, 아이를 키우면서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었다.
교정을 걸으며 만나는 사계절은 나에게 선물 같았다. 가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은 어느새 꽃샘추위가 가득한 3월을 지나, 교정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면 어느새 여름을 알리는 초록빛이 가득한 나무가 내 머리 위에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교정을 걷다 마주한 가을 낙엽 향이 나는 밤공기와, 눈 덮인 교정을 보는 것이 좋았다.
비행이 없는 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려 텀블러에 담고,학교로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책 냄새 가득한 도서관에서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 중 내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꺼내어 조용히 읽는다.마음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