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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재 Apr 06. 2020

아이들이 바라는 공간은..

오소록헌을 떠올리며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포근하고 아늑한 시간과 공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학습의 효과나 수업의 결과물을 집에 가지고 가는 학원이 아니라 편히 쉬면서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담고 자기 안에 있는 예쁜 색을 꺼낼 수 있도록 돕는 곳이기를 바랬습니다.

 2016년 어느 날, 그 마음을 담아 아주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이름을 '오소록헌' 이라 지었습니다.


오소록헌의 뜻은 제주어로 포근한 집입니다.


제 마음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엄마의 자녀들 네 명이 오붓하게 모였습니다.

제 이름은 '동백꽃샘' 이라 불렸지요.

추위를 뚫고 피어나는 굳센 동백꽃.

오소록헌에 가는 날,       

우선, 유치원에서 끝나고 오소록헌으로 오는 15분동안 아이들은 그 날의 쌓였던 일들을 차안에서 아주 수다스럽게 풀어냅니다. 물어볼 것도 많고, 유치원에서 꺼내지 못했던 자기 생각들, 화났던 것들, 재밌던 것들. 조용히 들어주다보면 금새 오소록헌에 도착합니다.

오소록헌에 들어와서는 간단한 오이리트미를 합니다. 아,에,이,오,우 소리를 몸으로 표현하며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매만집니다. 자신의 몸과 자신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이죠.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서 천사노래를 부르며 라벤더 오일을 손바닥 중앙에 바르고 냄새를 맡으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아기 천사, 이 땅위에 곱게곱게 내려와                                                                          사랑스런 너의 꽃을 피워요, 세상 하나 뿐인 너의 꽃을 영..원..히..
가장 차분하게 기다리고 기대하는 좋아하는 시간


이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네요. 주로 발도르프 동화를 작은 인형을 가지고 이야기 해 줍니다.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짝반짝 집중합니다. 그래야 잘 들리거든요. 

오소록헌에서는 워낙 조용히 우리끼리라서 사진이 없고, 많은 아이들을 초대한 특별한 날들.

 다음은 습식수채화를 합니다. 습식수채화의 좋은 점은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기준이 없는 점입니다. 물먹은 도화지와 스토크마 물감의 고운 세 가지색(빨강,노랑,파랑) 만으로도 모든 그림이 아름답고 자기만의 붓놀림을 자유롭게 놀리면서 놉니다. 유도하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솟아나는 창의성을 마구마구 쏟아내며 계속해서 자신의 그림을 변화시킵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에는, 각자의 그림을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 해주고 다른 친구들은 조용히 경청하며 그 세상을 함께 공유합니다. 습식수채화가 끝나면 각자의 도구들을 개수대에 옮기고, 모든 남은 물을 큰 양동이에 한 데 섞어서 색의 변화를 즐깁니다. 이 때 아이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놀이가 모두 섞은 색물을 손으로 젓는 놀이입니다. 다같이 손을 넣고는 까르르 쓰러집니다.

 

어른은 이해 할 수 없는 놀이죠? 저는 그저 그 놀이를 허용할 뿐입니다.

그리고는 그 무거운 양동이를 셋 또는 넷이서 들고 와서 버립니다. 작고 작은 직접 하는 일이 쌓이면 자신감과 자주적인 습관이 생기게 됩니다.

습식수채화를 하지 않는 날은 흙놀이를 합니다. 멀지 않은 도자기 공방에서 가장 부드러운 백자토를 사와서 생각의 주제를 주면 자유롭게 각자 만듭니다. 처음에는 손이 지저분해지는 걸 꺼려했던 아이들도 부드러운 촉감에  손으로 무언가 꼼지락 거리는 시간 자체를 즐기게 됩니다. 정말 엉뚱한 모양도 그들에게는 소중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모아서 가마터에 가지고 가서 구워왔습니다. 본인이 만든 것이므로  아주 소중하게 다루고 간직합니다.

놀이의 중간에는 티타임을 가집니다. 촛불을 켜고, 독일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예쁜 찻잔 세트로 아름답게 셋팅을 하고 짧은 노래를 부릅니다. 손에 손을 잡은 채로 „사랑해“ 를 외치고 나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달콤한 케잌이나 떡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죠.

어른들도 예쁜 카페에 앉아서 예쁜 찻잔에 맛있는 디저트 먹는 거 좋아하잖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굉장히 좋아합니다.

 같은 공간이지만, 이 때에는 새로운 세상에 와 있고,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특별한 순간인 것이죠.



오소록헌... 참.. 따뜻한 공간이였습니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동화처럼 남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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