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아남기
8. 마음이 매웠던 고춧가루 레스토랑
요리도 못하는 엄마가 독일에서 살아남으려니 요리를 하고 산다. 뭘 해 먹고 살까 하겠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나보고 한국식당을 차리라는 말도 들었다. 한국가서 진짜 한국음식 먹어보면 다들 놀라 자빠지겠네.
나의 메뉴라하면, 야채와 고기의 덮밥류, 토마토 스파게티, 볶음밥, 훈제두부, 콩, 미소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김밥, 콩나물국, 비빔밥, 군만두, 제육볶음(한국마트에서 소스구입), 삼겹살 구이, 음...왜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거지?
일주일에 두 번은 외식을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인도 음식(난, 망고치킨, 인도쌀밥), 이태리 음식(피자, 파스타, 라자냐) 내가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 한국 음식, 독일 음식 등등, 양이 많을 때는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가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또 한 끼를 해결 할 수 있어서 나에겐 참 좋았다.
어느 날, 아주아주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아들도 나도 맛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독일에서는 찾기도 어렵고, 거리도 멀고 대중교통으로 아이와 둘이서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리는 남쪽에 살고 있고, 북쪽에 있는 레스토랑 한 곳을 저장 해 두고 있었다.
'Kochu Karu' (고춧가루) 한국인 셰프와 스페인 셰프 부부가 퓨전음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친구한테 맛있다고 들은지가 1년이 다 되어갈 때쯤 드디어 가 보았다.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1시간 30분정도 걸린 것 같다.
메뉴판을 보니 다 먹고 싶지만 4가지를 주문했다. 아들과 나는 모양과 맛에 취해 황홀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내가 외식비로 정한 예산은 50유로(65000원) 였고, 이미 예산을 초과해서 주문했고 잘 먹었다. 맛있는 대신 양이 굉장히 적었던 것이다. 아들이 거의 다 먹도록 배려했는데도 그 조그만 배가 차지 않았다. 옆자리 테이블을 슬쩍 보고는,
" 저 사람들이 먹는 거 시키자. 아니, 나 여기 있는 메뉴 다 먹고 싶어! "
" 배 안불러? 이제 다 먹었으니까 가려고 하는데.,,"
" 나 아직 배고파! "
" 음.... 아........저기...."
" 엄마, 나 배! 고! 프! 다! 고! "
" 알았어..조용 조용... 식당에선 조용히 말하는 거야..."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너가 배고파하는 걸 엄마가 그냥 둘 수가 없지...그런데 엄만 돈이 없거든..
이 상황에 뭐라 해야 할까?
어느 변명도 지금 이 아이의 생생하게 팔딱팔딱 뛰고 있는 미각의 혓바닥을 진정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솔직하기로 했다. 아주 작게...
"우리 아들 배가 다 안 찼구나.. 엄마가 밖에 나가서 빵 사주면 안될까?
사실..엄마가 오늘은 50유로만 가져왔거든. 그걸로 여기서 맛있게 먹어서 참 좋았어. 그치? 그런데 더 주문하기엔 돈이 모자라. 하지만 빵은 사줄 수 있어. 여긴 아쉽지만 다음에 또 오도록 하자. 돈 많이 가지고. 어때?"
아.... 이렇게 말하는 엄마도 속이 상하다. 하지만 계획있게 살아야 하거든...다행히도... 고맙게도.. 아들은 배고프다는 말을 두 번 더 하고는 나가서 맛있는 빵을 사달라고 하고는 마무리 되었다.
식당을 나와서 맛있는 빵을 찾아 간 빵집에는 빵이 다 팔렸다. 하는 수 없이 전철역에서 스프링롤을 사주었는데 너무 잘 먹는거다...정말 많이 배고팠구나...
그 날 보다, 지금이 마음이 더 아프다. 기분파가 아닌 내가 짜증나서. 결국 다시 가지 못한 그 식당에서 그냥 좀 실컷 먹이지. 쓰레기통에 지폐도 버리는 일도 생기는데.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건데...
미안해...엄마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어.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고춧가루가 마음에 잔뜩 뿌려진 날이라 너무 매워서 울었다...
P.S.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식당은 오페라 가수 출신 이빈과 스페인 출신의 셰프 호세 미란다 모리요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특이하게 한국음식을 중심으로 스페인음식을 조합한 퓨전에 한국식 타파스 사찰음식은 정관스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2018 미슐랭 빕 구르망 리스트에도 오른 이 레스토랑의 메뉴의 비주얼은 이게 한식인가 스페인 음식인가 하는 궁금증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 요리법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음식 맛은 기가 막힌다. 7살 아들이 절대 일어나지 않으려 했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