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11월의 작가노트

<다문화, 다인종적 시선에 대한 튤립의 글>

by 모모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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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업인 ‘변이 된 튤립’은 최근 단순한 시각적 모티브를 넘어, 현대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상징적 매개체로 사용한다. 기존의 튤립 작업들은 다양한 역사를 통해 오랜 시간 아름다움을 가지기 위한 인간의 욕망을 일깨우는 은유이자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변이 하는 튤립의 모습이 예술가의 삶과 닮아있다 생각이 되었고, 그런 요소들이 개인의 내러티브와 작가적 삶을 대변하는 데 사용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기로 한 나의 최근 튤립의 변이는 생물학적 특성일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적 혼종성, 다양해진 정체성,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변화해 가는 사회 구조를 은유한다고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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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형태·결을 가진 튤립들이 한 화면에서 서로 부딪히고, 공존하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조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결국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닮아 있다. 다양한 삶의 배경, 언어, 인종,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긴장과 조화, 갈등과 화해, 차이와 연결의 순간들. 나는 그 복잡한 단면들을 ‘변이 된 튤립’이라는 작은 존재에 담아내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선 현시대의 사회적 담론을 담아내고 싶었다.


특히 최근 시리즈에서 나는 튤립의 변이를 통해 “정체성은 하나의 선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사회는 여전히 단일한 기준, 동일성과 통일성을 요구하는 시선을 갖고 있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유동적이고 다층적이다. 최초의 토착 바이러스들을 통해 변이가 시작된 튤립의 역사를 비추어보고 현재까지도 무수히 생성되는 튤립의 예상할 수 없는 변이들은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 중심과 주변을 나누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현시대의 상생하는 다인종과 다문화적 그리고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시선은 어떠한가'를 동시에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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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변이 된 튤립들은 차이나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의 형태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다양한 환경적 변화와 바이러스등의 변이로 인한 DNA구조 변형을 통해 새로운 모양과 화면의 조화를 보여주는 튤립들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새로운 조합은 사회적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상징이 될 수 있고 나아가 더 넓은 이해와 감수성을 향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 작품들이 단지 아름다운 꽃의 이미지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와 내재되어 있는 '혼종'의 힘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작은 담론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기존의 개인적 내러티브와 작가적 사유에서 출발해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그 너머에서 다문화·다인종 시대의 상생, 차별과 배제의 구조, 장애와 비장애등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변이 된 튤립은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이 지닌 서로 다른 결이 어떻게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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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작가노트

나의 작업 ‘변이된 튤립’은 튤립의 생물학적 변이라는 현상을 통해, 어떠한 사건을 통과한 이후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상황과 조건, 그리고 그 표면에 남는 흔적을 다룬다. 튤립은 오랜 시간 인간의 욕망 속에서 선택과 개량, 변이를 반복해 왔으며, 특히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색과 형태의 변화는 ‘정상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기준 자체를 흔들어왔다.


나는 이러한 변이를 단순한 시각적 차이나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침입과 교란 이후에 형성된 되돌아가지 않는 상태로 바라본다. 화면 속에서 서로 다른 색, 결, 패턴을 지닌 튤립들은 충돌하고 겹치며 한 공간에 공존하지만, 완전한 통일이나 안정된 조화에 이르지는 않는다. 이 불안정한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차이와 비차이,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이 실제 삶의 조건 속에서 더 이상 명확하게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닮아 있다.


여기서 혼종은 서로 다른 요소들이 섞여 하나의 새로운 형태를 완성하는 결과라기보다, 하나의 기준으로 환원되지 않은 채 중간 상태로 지속되는 조건을 의미한다. 변이된 튤립들은 이러한 상태를 시각화하며,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중심과 주변, 기능과 비기능,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해 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이러한 질문들은 다양성이 아직 이상적 가치로 제시되기 이전에, 이미 우리 사회와 삶의 표면 위에 현실의 조건으로 존재하고 있는 혼종성과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변이된 튤립은 차이나 결핍이 아닌 가능성의 형태로서,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존재들이 충돌하고 공존하며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우리 사회의 축소된 장면이 된다. 결국 작품을 통해 다양한 색과 형태, 결을 지닌 튤립들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고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예기치 않은 조화는, 서로 다른 배경과 언어, 문화가 공존하는 오늘날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장면과 조화의 순간들을 ‘변이된 튤립’에 담아,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현시대의 사회적 담론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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