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가 되어가는 튤립

글 정리 생각 정리하는 글

by 모모킴

작가의 튤립 페인팅은 화려한 색채를 쌓아 올린 뒤 거즈와 흙, 흰색의 층위 아래로 그 형상을 침잠시키며, 구상에서 추상적 평면으로 이행하는 서사를 완성한다.


화면의 주된 물성인 거즈는 인간의 취약함과 생존이라는 자전적 서사를 평면 위에 물리적으로 고정하며, 재료 그 자체로 메시지를 대신한다. 과거의 직접적인 일러스트적 기호들은 이제 흙과 섬유의 질감으로 대체되어 내러티브를 은유하고, 이는 외적 페르소나를 걷어내 내면의 정체성을 마주하는 심리적 정화 과정을 보여준다. 완전히 삭제되지 않고 투과되는 아래층의 색감과 굴곡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층위를 드러내며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환기한다.


미술사적으로 '인생의 허무'를 상징해온 튤립은 작가에 의해 삶의 긍정을 이야기하는 변이된 도상으로 재탄생한다. 결국 튤립을 하얗게 덮는 행위는 허무가 아닌, 뜨거운 열을 견딘 흙이 백자로 거듭나듯 생의 에너지가 정제되어 도달하는 상징적 회귀다. 작가는 비움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품은 ‘무(無)와 공(空) 의 공간을 구축함으로써, 관람객이 가시적 형상 너머에 실재하는 존재의 묵직한 층위를 목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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