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Sep 18. 2015

통증은 "나를 사랑해 달라"는 신호다

디스크 재발, 수술의 유혹…"통증은 축복" 결국은 '운동'

"운동하라, 휴식하라"

이런 글들을 연재하고 있지만

나 역시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직장인으로서

하루도 빠짐없이 두 가지를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실 운동보다 휴식이 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다.


일하는 틈틈이 누우려 하고,

퇴근과 동시에 모든 것 다 잊고 드러누워야 하는데

직업 특성상 저녁에도 술자리가 이어지고

퇴근 뒤에도 사건이라도 터지면 현장에 가거나 다시 노트북을 켜야만 한다.

한 달에  세네 번은 밤을 새우는 숙직까지 서야 하니

평소에도 불안한 척추가 점점 더 위태로울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확히 7월 15일.

복직 딱 4개월 만에 (복직을 한 날은 3월 16일이다)

극심한 고통과 함께 또다시 드러눕고 말았다.




1. '재발'.

조용히, 극단적으로 찾아오다


7월 14일 월요일 회의 및 회식 뒤 잠들 때까지 크게 탈이 없었는데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허리가 무겁고 뻣뻣한 게

영.. 심상치 않았다.


"뭐.. 잠이 덜 깨서 그렇겠지.. 움직이다 보면 낫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평소처럼 노트북 등 장비 넣고 가방 메고 지하철 타고 출근했다.


그런데 오후가 돼도 굽어진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점점 저려왔고

척추 사이에 날카롭고 뾰족한 칼날 조각 같은 게 껴 있는 듯한 불편함이 계속됐다.

누가 허리에 타이어를 동여매 놓은 것처럼 무겁기만 했고

내 척추가 짜부라드는 느낌이랄까..


잠시라도 눕고 싶었지만,

하필 그 주 금요일인 7월 17일이 삼성 주주총회가 있는 날이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하루가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때다.


설상가상, 하필 또 숙직이었다.

(보통 방송 기자들은 돌아가면서 숙직을 하는데

평소와 똑같이 7시~ 7시 30분까지 출입처로 출근한 뒤

오후 7시에 회사로 들어가 다음날 9시까지 밤을 새우고 퇴근한다.

(숙직하는 날엔 25시간 넘게 일을 하는 셈..)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오는데도

사무실을 지켜야 하니 허리를 바닥에 댈 수 없었다.


새벽 1시쯤 숙직실에 들어가 누웠는데도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원래 숙직은, 저녁~ 다음날 아침 방송까지 챙겨야 하는 탓에 긴장의 연속이라 숙직실에 누워도, 아무리 피곤해도 잠들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날은 극심한 통증에 잠조차 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새벽 뉴스를 준비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뜨억' 하며 숨이 턱! 막히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온몸에 신경 세포가 곤두서는 듯한 섬뜩한 통증이 찾아왔다.


네 발로 기어가다시피 숙직실울 나가,

뉴스 원고를 들고 어기적어기적 겨우 발걸음을 내딛으며

9시 퇴근 시간만 눈 빠지게 기다리다 좀비처럼 집에 갔다.


"자고 나면, 쉬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대로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도 않고 누웠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도 쉽게 들지 않았다.


그렇게 점심도 안 먹고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해질 때까지 누워있었다.

허리가 아파도 (이 노므) 배는 또 고픈지라;;

허기를 채우려 몸을 일으키는데 나아지기는커녕 통증은 더 심해졌다.


허리를 펴지도, 숙이지도 못하겠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정도로)

아주 조금만 숙여도

날카로운 칼로 허리가 확~ 베이면서 두 동강 나는 듯한 아찔하고 섬찟한 통증이 느껴졌다.

숨만 쉬어도 허리와 연결된 모든 신경들이 눌리는지..

정말이지, 숨 쉬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던 낯익은 느낌.

'재발'이란 게 이런 거구나..


2. 예고된 사고란 없다.

예고된 재발도 없다.

예상보다 괜찮은 고통도 없다.


디스크 환자라면 누구나 겪는 거라길래,

언젠가 한 번은 오겠지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올 줄 도 몰랐고

예상했던 재발의 순간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짜증 나고 억울하고 까마득했다.


일단 내일이 걱정이었다.

남은 오늘을 푹 쉰다 해도 결코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내일과 그 다음날은 내 출입처에 정말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이다.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걷기는커녕 지금 숨 쉬기도 힘들다.


"일은 못 하겠다"

그럼 사유를 말해야 한다.


"걱정이 쏟아졌다"

복직한 지 4개월 만에 아프다고 한다면

회사에서 뭐라고 할까. 선배들이 뭐라고 할까.

이렇게 쉽게 재발하면 얼마 안 가 또 재발하지 않을까.

아무도 나와 일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을까. 행여 잘리지는 않을까.


"휴직을 해야 하나"

아니야, 작년에 쉬느라 깎아먹은 돈이 얼만데.

내 경력은. 또 끊기는 건가.


"수수을 할까"

아니야, 수술은 겁나.

그럼..

"주사만 맞을까"



3.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시술받을래!


의식의 흐름을 타고 가다 다다른 결론.


"그래 시술하자"


그때부터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허리디스크 시술 #시술 방법 #시술 후기

#시술 부작용 #스테로이드 부작용 #디스크 시술 잘 하는 곳..


검색 결과 대부분은 시술 효과를 긍정적으로 다룬 병원 홍보성 글이긴 했지만,

"효과가 있었다", "주사 정도는 추천한다"는 후기도 찾을 수 있었다.


통증이 심했던 탓인지..

주사라도 맞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래, 칼도 아니고 주산데 뭐...

그래도.. 시술합리화?를 위해

"마지막으로 딱 하나 더 검색해보자"며 다시 인터넷을 뒤지다..


헉.!

눈물이 쏙 들어갔다.


허리디스크 시술 후기를 솔직하게 써 준 블로그였다.

본인도 "고민 고민하다 시술을 했는데

괜찮아지기는커녕 시술 후유증이

너무 심하고

지금도 너무 아프고,  시술받은 걸 너무나도 후회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시술이든 수술이든

100% 나아진다는 보장만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할 것이다.


암세포처럼 뚝 따낼 수 있다면,

썩은 이 뽑아내듯 통증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면,

돈이 대수겠는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데..


그런데 디스크 시술(수술)은 너무나 복불복이었다. 


세상의 모든 척추 병원 의사 선생님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다.

수술이나 시술이 척추에 진통제를 놔주는 격인데

사람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것은 놀랍고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는 해서 정말 효과를 봤다"지만 "누구는 효과가 없었다"는 건

(용기가 부족했을까?)'도전'이 아닌 '도박'처럼 느껴졌다.

50% 성공 확률로 어떤 것으로도 대체 가능하지 않은

내 몸의 중심, 척추뼈를 마루타로 내걸 수는 없었다.


4. 통증, 나를 "사랑해달라"는 신호다.


이제 필요한 건 뭐?

바닥을 쳤으니 허기도 지고..

긍정 열매를 먹을 시간이 됐다.!


시술이든 수술이든 하려면

작년에  진작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지난 9개월을 백수로 지내면서

힘들게 모은 돈, 허망하게 날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9개월의 고민과 노력, 주위의 응원을 단 하루 만에 물거품으로 만들지 말자.


여기서 포기하지 말자.

아직 젊다.

무엇보다  그동안 운동도 열심히 했다.

작년이랑 지금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나를 믿자. 단련된(?) 몸과 멘탈에 의지하자.


다음날, 그 주에 남은 이틀 연차를 내고

예전에 다니던 한방병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병원에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냐"고 했다.

(사실 고 즈음에.. 몹시, 굉장히, 아주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위경련까지 날 정도였다)


물리치료도 하고 약도 보름치 정도 받았다.

그리고 "절대. 절대 무리하지 말고 무거운 것 들지 말고..~~~"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듣고 왔다.


다 뻔히 아는 소리지만,

잔소리가 필요하긴 하다.

래야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조금 더 주의를 하게 되니까.

조금 더 몸이 주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니까.


그동안 내가 너무 자신..

아니 어쩌면 "자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 뒤 병원에 간 게, 그날이 처음이었다.

휴직할 때야 그렇다 쳐도

일을 시작했는데 보름에 한번,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가서 경과를 살피고,

또 잔소리도 듣고 해서 주의를 했어야만 했다.


내가 왜 그렇게 안이했을까?


내가 몸이 주는 신호를 무시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통증을 느꼈던 때가 많았다.

주로 숙직을 하고 난 뒤,

마감에 쫓기면서 앉아있는 시간이 길었을 때

스트레칭 알람도 무시하고 계속 일하고

누워야 하는데 계속 사람 만나러 다니고.


그동안 목과 허리는

"나 좀 돌아봐달라, 신경 써달라"고 끊임없이 호소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요즘 운동하는데 뭐,

오늘 밤 자고 나면 괜찮겠지"하며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러다, 한계에 다다른 내 척추가

"야 이 주인아, 장난하느냐?

환자인 네가 정상인처럼 생활을 하면 되느냐?

나도 좀 쉬어야 할 거 아니냐.

아몰랑, 더 이상 못 참겠다"

파업을 한 셈이다. 



5. 사흘 만에 부활하다(?!)


몸이 "사랑해 달라"는 신호에

다시 허리찜질도 하고 반신욕도 하면서

긴장을 풀어주려고 계속 신경을 썼고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빼곤 최대한!

계속 누워있었다.


다음날 다시 한 번 더 침을 맞고 약도 먹고

또 누워서 안정을 취하기를 반복.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긍정적인 생각만

계속 주입했다.

"더 좋아지려고 잠시 쉬었다 간다"고.

"지금 최악이기 때문에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그리고 "할 일이 많으니 잘 보살펴달라"고


또 기도했다.



"앞으로는 내 욕심을 위해
함부로 몸을 쓰지 않겠다"

제게 주신 귀한 몸,
더 소중히 쓰겠다"고..



금요일 저녁부터는 화장실 갈 때도

통증이 좀 사그라들고

허리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세를 고쳐 앉거나

누웠다 일어날 때는 통증이 있었다.


토요일, 몸을 170도 정도 펼 수 있었고,

뒤로 젖혀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일요일..! 드디어!!

직립보행이 됐다!!!

고개를 숙여도 허리가 두동강 나는 듯한 느낌도 사라졌다.

다리를 쭉 뻗고 바닥에 앉을 수도 있었다.


월요일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출근해 일했다.

물론 한 번 재발을 겪은 뒤로는

단순히 가방 메는 동작도,

발을 한걸음 내딛을 때도 조심스러워지긴 했지만..




#재발? 제발, 운동이다

지난해 디스크 진단받고 총 9개월을 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흘 만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수술도, 시술도 안 했다.

대신 운동을 정말 꾸준히 했다.(물론 한방과 물리치료, 교정치료 몫도 클 것이다)  

척추는 고장 났지만,

그 주변을 지켜주고 있는 근육 덕분이라는 생각이다.

소중한 내 몸에 감히 뾰족한 주사 바늘을, 날카로운 칼을 대지 않고

내 몸의 자연 치유력을 믿은 것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텨준 내 몸에,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또 한심하게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또 이번 통증을 잊고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언젠가는, 혹은 조만간 또 재발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그때에도

나는 운동할 것이다.

나 자신을 믿을 것이다.








수술을 막았던 한 의사 선생님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수술이나 시술을 하게 되면

정말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통증이 사라질 거예요.

그럼 다시 평소처럼 생활하겠죠.

다리 꼬고, 무거운 가방 들고,

밥 먹으러 나갈 때 빼곤 종일 앉아 있고,

술도 많이 마실 거고

목을 빼고 구부정한 자세로 타자를 치겠죠.

그럼 다시 재발하겠죠. 그럼 다시 수술해야겠죠.

자연 치유력은 떨어졌으니까요."


디스크 수술 환자 대부분이 재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

통증을 잊어서다.




통증은 축복이다.

통증이 없다면 감각이 마비됐다는 것이다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평소에 내 위장이 편도가, 식도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다가도

아프면 아 여기에 위가 있구나, 장이 있구나,

자궁이 있구나, 항문도 있구나(?)

알게 된다.


몸이 주는 신호에 집중하자.

통증은

"나를 너무 혹사시키지 말라,

나를 제발 사랑해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평, 나를 사랑하기에 충분한 공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