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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Apr 21. 2019

기자, 유튜버되다

"와서 보세요"가 아닌 "제가 갈게요" 유튜브를 하게 된 이유

2017년 10월 23일, 연지TV 채널을 개설했다. 첫 영상은 카카오미니 인공지능(AI) 스피커 사용기였다. 당시 CEO였던 임지훈 카카오 전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영상을 링크했다.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컸다. 유튜브 도전에는 스스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었지만, 첫 영상은 어색과 어설픔 그 자체였다. '정말 이걸 올려도 될까?' 수십번 고민했던 처녀작이다.


당시 카카오미니 관련 기사와 블로그는 출시 소식부터 주요 기능, 리뷰 기사까지 족히 100개는 넘는다. 카카오측에 유튜브 영상을 찍었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또 카카오미니의 좋은 점만 담긴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없어지는 듯한 민망함으로 점철된 영상이다. 그 많고 많은 기사들 중 이 영상이 당시 CEO 페북에 링크됐고, 그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이를 봤다. 구독자라곤 5명도 채 안되던 때였지만 조회수는 2000회를 넘었다.


'289억분'. 지난 6월 한 달 동안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유튜브 앱을 사용한 시간이다. 같은 기간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189억 분, '국내 포털 1위' 네이버는 130억 분에 그쳤다. 국내 유튜브 앱의 월간 순사용자수(MAU)는 2924만 명에 달한다. 지난 1년 새 유튜브 이용시간은 43% 길어졌다. 카카오톡과 네이버는 각각 14%, 7% 뒷걸음질했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 조사 결과)


시대는 바뀌고 있었다. 태어나면서 책과 TV를 만난 세대는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만지며 자란 세대가 봄을 맞으며 유튜브 붐은 시작됐다. 초등학생들도 가지고 다닐 만큼 스마트폰의 높은 보급률과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볼 수 있는 LTE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물건을 사도 제품 설명서 대신 유튜브에서 검색한다. 필요한 부분 몇줄만 찾아 읽어도 될 것을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를 그 부분을 위해 평균 10분 남짓한 영상을 다 보고 있다. 아이들은 캐리 언니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영상을 보고 또 보고 또 다시 본다.


유튜브 대세에는 어르신들도 한 축을 차지한다. 음악도, 뉴스도 TV 대신 유튜브로 즐긴다. 1분당 400시간의 무료한 시간을 입맛에 맞는 영상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연령대의 관심사를 충족할 만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 또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다. 


뉴미디어 시대를 맞으면서 언론사들의 고민이 깊다. 단순히 속보와 특종만으로 독자를 유입하기엔 한계에 다다랐다. TV 뉴스 시청률과 신문 구독률은 계속 떨어지고 이젠 포털 뉴스까지 접점을 잃고 있다. 


모든 언론사가 '가치 있는 기사, 중요한 기사'를 고민한다. 기사에 가치가 있으면 사람들이 당연히 와서 볼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착각이다. 기사의 가치는 기자가, 언론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보는 독자의 판단에 좌우된다. 


"이 중요한 기사를 왜 못 봤어?"가 아닌 "중요한 기사라면 어떻게든 나에게 오지 않았을까요?"라고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기사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견고한 팩트는 기사의 변하지 않는 가치다. 그러나 매체 플랫폼이 변했으면 그 흐름은 따라가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이라는 게 나왔는데, CBS가 라디오만 고집했다면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을까'를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CBS는 노컷뉴스라는 온라인 매체를 만들면서 지금도 독자와 만나고 있다.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건 이런 '갈급함'에서였다. CBS 기자는 라디오 리포트와 온라인(노컷) 뉴스로 전달한다. 안타깝게도 TV 뉴스, 신문도 잘 안보는데 우리가 아무리 특종을 한들, 오전 7시가 메인 뉴스인 CBS뉴스를 찾아 들을 리 만무하다. 


온라인 뉴스는 그야말로 쏟아진다. 똑같은 제목의 기사가 몇 페이지를 차지하고, 뉴스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어느 매체 뉴스를 찾아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제목을 보고 클릭한다. 이젠 뉴스도 유튜브로 보는 시대다. 뉴스 소비 형태가 달라졌으면 기존 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부추긴 데에는 출입처도 한 몫했다. 현재 출입처는 통신, 단말, 포털 등 IT 분야다. 문제는 필자가, 타이핑과 인터넷 검색 말곤 아는 것 전혀 없는 '컴맹'에, 만지는 것마다 다 고장내버리는 '마이더스의 손'에다, 스마트폰 탄생 이후 몇년 째 가장 비싼 통신요금을 내고 있던 '호갱'이었다. IT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기자였다.


그러나 어찌됐든 IT 기자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단말기, 서비스가 나오면 이를 글로 써야한다. 그나마 스마트폰, AI 스피커 같은 스마트 기기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기라도 하지, 보이지도 않는 신기술들을 글로 풀어내기란 너무나 버겁기만 한 숙제에 불과했다.


어쩔 수 있나. 모르는 만큼 발품을 팔았고,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찾았다. 이리저리 주워듣고 어깨넘어로 보는 것들이 많이 생겼고,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MWC(mobile world congress), CES 같은 글로벌 IT 박람회는, 정말이지 코끼리 다리 만지던 장님이 두 눈을 번쩍 떠 코끼리와 마주하는 듯한 충격을 줬다. 꼭 이런 세계적인 행사가 아니더라도 국내 IT 업체들이 여는 간담회나 행사에서 기술의 변화와 또 일상 속에 이미 들어온 신기술들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와도 "당연히 새 폰인데 좋겠지"라며 조금도 궁금하지 않던 내가 바뀌기 시작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듯, 기술이라는 것에 '기대'하게 됐다. 정치도, 정책도 상황에 따라 후퇴하기도 하지만 기술이라는 건 (윤리적 문제를 제외하곤 어찌됐든)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란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이 기대감과 흥분을 나만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가는 현장, 반드시 써야하는 기사, 여기에 영상까지 넣으면 "이해가 훨씬 쉽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지만 좀 더 와닿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비도 있지 않나. '스마트폰'으로 현장 사진만 찍지 말고 "영상도 찍어보자" 싶었다. 품은 더 들겠지만, 잘 못 한다고 해서 잘못될 일도 없었다. 그렇게 기자의 유튜브는 시작됐다. 


일단 채널은 개설했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이미 유튜브엔 IT 덕후들이 너무나 많았다. 기계치에 컴맹에 호갱인 필자가 수년간 내공을 다져온 재야의 고수들을 지식으로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더구나 구독자가 최소 10만이 넘는 이들은 협찬인지, 직접 다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플, 삼성, 소니, 화웨이, 샤오미 등 할 것 없이 신상 스마트폰부터 노트북,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부터 에어컨, 건조기, 공기청정기 등 각종 가전까지 출시되는대로 리뷰를 했다. 대출금까지 갚아야하는 일개 월급쟁이인 필자는 결코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이들은 없고, 내가 가진 건 뭘까?" 나는 이들이 못 가는 현장을 갈 수 있고, 뒷 얘기를 풀어낼 수 있고, '중학생이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을 쓸 수 있다. 재야의 고수들에 비하면 태평양에 뜬 기름층 같은 넓고 얕은 지식이겠지만, 오히려 아날로그 기자적 관점이 차별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분명한 건 "다른 IT 유튜버보다 설명이 친절하다", "쉽게 풀어줘서 좋다", "현장감이 생생해서 좋다", "꼭 필요한 영상이었는데 고맙다", "유익한 영상이다"는 댓글이 많이 달리고, 이런 반응에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독자와 소통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 듯하다. 포털로 송고된 기사에 달리는 댓글과는 차원이 다르다. 라디오의 매력이 DJ가 나에게 귓속말을 해주는 느낌처럼 얼굴도 모르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얻고, 책임감 역시 더 생긴다. 얼굴도 노출한 만큼, 그저 그런 기사나 영상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 오보를 하진 않을까 크로스 체킹도 여러 번 한다. 


24시간이 정말 모자란다. 취재하면서 영상 찍고, 퇴근해 편집까지 하다보면 잠도 몇시간 못 잔다.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냐"며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입사 이후 심장 뛰는 일을 다시 찾은 것 같다"고. 어쩌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8년차 기자에게 유튜브는 일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현장에서 짐벌을 들고 다니며 혼자 카메라에 대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한참 뚫어지게 쳐다본다. 동료 기자나 행사 관계자들로부터 "그게 뭐냐"는 호기심부터 "회사에서 이것까지 시키는 거냐, 안됐다"는 오해섞인 동정(시킨 거 아닙니다. 좋아서 하는 겁니다!)과 "관심받고 싶냐"는 비아냥까지 온갖 시선이 쏟아진다. 


다행히 낯이 두껍다. "눈치를 본다고 인생이 행복하진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주변 시선은 조금도 문제가 안된다. 


기자들은 네이버와 다음 포털에 자신의 기사가 걸리기를 바란다. 특히 내 기사가 포털 메인에 걸렸느냐는 기사의 조회수를 좌우하고, 잘 쓰고 못 쓰고 얼마나 공들였냐를 떠나서 '많이 본 기사'에 링크되면 내부 평가도 좋아진다. 일부 기자들이 "이중에 하나만 걸려라"는 식으로 기사를 질보단 양적으로 쏟아내고, 제목으로 낚시질하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다. 이는 조회수는 가져올지언정 언론사와 기자 개개인의 품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네이버와 다음은 언론사의 기사를 선택해 배치한다면, 유튜브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보는 방식이다. 수동적인 정보가 아닌 독자의 의지에 따른 유입이나, 관련 영상에 추천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인 독자가 생긱는 것도 신기한 부분이다. 그저 기사를 포털에만 송고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영상으로 하니, 외국인들도 본다. 유입 국가를 보면 미국, 캐나다, 호주같은 영어권부터 중국, 일본, 베트남 등도 있다. 얼마 전엔 칠레 사람이 댓글도 남겼다. 언어를 이해 못할 것 같아, 일부 영상엔 영어 자막도 더러 넣기도 했다.  


'크리에이터 도전기'에 대한 원고를 의뢰받았을 때 사실 좀 민망했다. 크리에이터, 번역하면 '창작자'다. 현재 하고 있는 것에 비해 거창한 수식어여서 크리에이터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여전히 기자고, 펜에다 카메라를 하나 더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유튜브'와 '네이버TV'라는 동영상 플랫폼을 추가했을 뿐이다. 


너무나 기분 좋고 값진 경험들을 하고 있다. "무엇이 되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어서 힘은 들지만 그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전엔 기사를 쓰고 나면, 그저 네이버와 다음 포털에 내 기사가 걸렸는지 찾고 그 여부에 따라 행복과 실망이 교차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다. 행복의 범주가 늘어났다. 


기사와 함께 또 영상과 함께 내 밝은 기운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것도 좋다. 실제로 구독자 중 많은 분들이 밝은 면모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실망시키지 않고 싶다.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하루 더 발전하려 한다. 크리에이터, 백만 유튜버라는 화려한 수식어보단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만큼 '기대감'을 주는 기자가 되려 한다.  



<기자 김연지>, <엄마 김연지>는 계속됩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XQIAmNf2xq809gKk2mOpdg?view_as=subscriber


https://www.youtube.com/channel/UCBPtbv6b0pi-NmWVMfyGbzQ?view_as=subscr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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