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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Jun 21. 2020

할머니~콩잎 먹고 싶다. 된장이랑 쌈싸무면 맛있는데

입덧으로 물도 못 삼킬 때, 어찌나 콩잎이 먹고 싶던지

콩잎물김치여름 장마맛이다. 지리한 무더위에 눅진 공기를, 개운~하게 헹구는 맛이다. 시큼하면서도 알싸한, 약간은 지린내 같은 푹 삭힌 냄새도 장마와 닮았다. 냄새의 결은 다르지만, 장마철 내내~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과 비슷하달까.


콩잎을 왼손바닥에 곱게 펴, 흰밥을 한 숟갈 놓는다. 숟가락 끝으로 강된장을 살짝 찍어 밥 위에 올린다. 콩잎 끝을 오른손 검지와 엄지로 오므려가며 쌈 싸먹고 나면, 콩잎물김치 냄새가 두 손에 밴다. 이 냄새가 싫어 손으로 쌈 싸 먹지 않고, 밥공기 위에서 젓가락으로 싸 먹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정확히는 그 콩잎 내가 스며드는 여운이 좋았다. 무심코 얼굴을 비비다 코끝을 찌릿하게 하는 냄새 자체는 아찔하기도 하지만, '오늘도 콩잎을 맛있게 먹었고, 다음 끼니때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나풀나풀거린다.


지리한 장마철, 우산을 써도 교복 치마와 신발이 모두 젖어 버리지만, 집에 와서 젖은 양말을 벗고 발을 씻는 것 같은, 콩잎을 먹는 건 그런 기분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의 찝찝함이 말끔히 해소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입덧으로 거의 죽다 살아난 지난해 여름, 할머니의 콩잎이 미친 듯이 그리웠다. 하루 열댓 번 토하면서, 전날 밤 포도주와 소맥을 두병씩 섞어먹은 다음날 숙취 같은 울렁거림이 석 달째 이어지고 답답함에다 푹푹 찌는 더위마저 찾아왔을 즈음, 할머니의 콩잎이 사무치듯 그리웠다.


"여보, 나 콩잎 먹고 싶어, 콩잎 사줘"


"콩잎? 그게 뭔데?"


"콩잎이 콩잎이지, 깻잎이 깻잎이듯"


"먹는 거야?"


"아 그럼 내가 못 먹는 걸 먹겠다고 하겠어? 콩, 몰라 콩? 콩이파리가 콩잎이지"


입에서 홍시맛이 난다기에 홍시맛이 난다고 하지. 콩잎이 먹고 싶다는데 콩잎이 먹는 거냐고 물으면 어찌 대답해야 하는 것인가. 왜 나는 이런 걸 설명해야 하나. 콩잎을 먹으면 금방이라도 이 울렁거림이 해소될 것 같은데, 니글거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 같은데,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속상하고 원통한데, 남편은 콩잎이 뭐냐고 묻질 않나. 사러 가기 귀찮아서 그러는 건가. 괜히 서럽고 서운한데, 콩잎이란 단어를 되풀이하니 콩잎이 계속 생각나고 먹고 싶고, 근데 구할 수는 없고, 날은 덥고 짜증 나고 답답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남편이 콩잎을 몰랐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편은 광주 토박이, 나는 대구 토박이다.


알고 보니 콩잎은 다른 지역에선 보기 힘든 경상도 음식이었다. 신랑은 콩잎 물김치는 구경도 못하고 자랐던 것이다. 내가 먹고 싶었던 할머니의 콩잎을 '콩잎물김치'라 부른단 걸 알게 된 것도 그때 알았다. 내겐 콩잎으로 만든 음식은, 할머니가 해주신 콩잎, 그것 하나뿐이었으니까.




콩잎 뒤엔 까스스한 하얀 솜털이 있다. 끝이 뾰족한 깻잎과 달리 둥근 나뭇잎처럼 생겼다. 이파리도 콩잎이 깻잎보다 거칠다. 콩잎 냄새는 더 독특하다. 처음 먹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내저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알려진 콩잎 요리로는, 노랗게 물든 콩잎을 삭혀, 매콤한 양념을 한 단풍콩잎이다. 이따금 경상남도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오기도 한다.


콩잎 물김치는 초록색 생콩잎으로 만든다. 7월 초쯤 되면 생콩잎이 나는 시기다. 할머니는 진주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결혼하면서 포항에서 시집살이를 했고, 자식을 공부시키면서 대구로 오셨다. 할머니가 자랐던 동네에서는 콩잎으로 물김치를 담가 먹으셨나보다.


콩잎을 만드는 세세한 레시피는 모른다. 다만, 할머니와 함께 시장을 간 적은 있다. 동네 시장에선 콩잎을 안 팔아서 서문시장인가 번개시장인가, 암튼 대구에서 큰 재래시장으로 버스 타고 갔다.


대프리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구의 여름은 무덥다 못해 무섭다. 시장을 도는데 금세 땀이 흐르고 '아우 콩잎은 어딨는 거야?'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 콩잎을 발견했다. 사실 나는 그게 콩잎인 줄은 몰랐다. 할머니가 "콩잎, 얼마요?"라고 하시길래 그제야 내려봤으니.

바쁜 엄마의 자리에는 항상 할머니가 계셨다

콩잎물김치를 해본 적은 없지만, 이걸 만드는 일은 세상 번거로운 듯했다. 일단 파는 것 자체가 다듬어져 있는 게 아니다. 손질하는 것부터가 일이다. 간편식에 익숙한 나로서는 집에 와서 재료를 손질해야 한다는 건 한숨부터 나올 일이다.


콩잎은 보통 이파리가 세 장 붙은 줄기를, 단으로 묶어 판다. "이대로 물김치를 담글 수도 있지만, 줄기는 마이 질기다"면서 할머니는 일일이 손으로 콩잎을 떼내셨다. 귀찮다고 줄기 그대로 담그면 모양도 안 예쁘고 식감도 떨어진단다.


그렇게 다듬은 콩잎을 식초 푼 물에 찰방찰방 씻는다. 그다음엔 흐르는 물에 앞뒤로 한 장, 한 장 깨끗이 씻어낸다. 뒷면엔 솜털이 있어서 깨끗하게 씻어줘야 한다. 그리고선 넓은 채에 이파리를 차곡차곡 가지런히 개어 옆으로 세워둔다. 물기를 빼는 거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콩잎물김치 담그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때. 머리도 항상 예쁘게 땋아주셨다.


이후에도 풀을 먹이고 그런 걸 본 것 같긴 하다. "풀을 어케 만드노?"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풀이라길래 문방구에서 파는 풀, 혹은 땅에서 자라는 풀을 떠올렸기에. 그 뒤에 풀에 대해서 무언가 분명히 말씀하셨겠지만 중간 기억은 모조리 편집됐다.


이후 연결된 필름은, 할머니가 "콩잎이 삭았다"면서 텃밭이 연결된 뒷부엌에서 콩잎이 담긴 통을 가져오시던 장면이다. 뚜껑을 열면 통에 맺힌 국물이 탁 튀면서 알싸하면서도 시원한 내가 코를 찌른다.


냄비만한 통 속에 가득한 콩잎, 밥공기만한 돌로 눌러져 국물(?)이라 해야 하나, 콩잎 육수(?)속에 담가져 있었다. 돌을 사뿐히 드러내니, 콩잎 한 움큼이 하얀 실 한가닥으로 돌려 묶여 있었다.


한올 한올 손녀 머리 빗어넘기듯, 한 장 한 장 아가 을 손바닥으로 씻겨 내듯, 매끈히 또 가지런히 포개져있다. 주먹만 한 콩잎 묶음들은 서로 몸을 돌려가며 누울 곳을 찾아 삭혀내고 있었다. 푸릇푸릇 젊음을 뽐내던 싱그런 콩잎 색은, 짙은 녹색으로 원숙미를 더했다.   


"우와~"


"무 봐라"


"이것밖에 없나?"


"맛있나, 삭았나"


"당연히 맛있지, 말라꼬 묻노"


"더 있다. 많이 했다"


그 통에 담겨있는 콩잎만해도 엄청났을텐데, 그만큼이 또 있다니. 두 팔 벌려 만세를 불렀다. 하긴 그때 할머니랑 시장서 사 올 때도 가로수 낙엽 주워 담듯 까만 비닐봉지 한가득, 할머니와 양 손에 한 봉지씩 들고 왔는데 그걸 다 담그셨으니.

 "밥 묵자"


"된장은?"


"당연히 했지. 된장 없이 뭔 맛으로 묵노"


"된장 없어도 맛있다. 있으면 더더더 맛있고"


그때는 너무나 당연했던 삼 세끼 따뜻한 밥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숨만 붙어 있어도 최소 7첩 밥상이 눈앞에 떡하니 차려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매 끼니 걱정을 하는 요즘, 할머니는 알라딘 램프 지니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콩잎과 함께 먹는 할머니의 강된장은 일품이다. 그걸 강된장이라고 하는지도 물론 사회인이 돼서야 알았지만, 당시 할머니 된장은 지금까지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는, 정말 기가 막힌 맛이다. 양파랑 두부랑 고추만 조금 넣고 자글자글 끓였을 뿐인데도 어떻게 그런 맛이 나올까. (물론 재료가 더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기억엔 그렇다)


이 된장을 숟가락 끝에 살짝 묻혀 밥 위에 올려서 콩잎에 싸 먹으면 단짠단짠이 아니라 시큼짠,알싸짠, 구수고소,시원짭짤한 맛이다. 바깥은 찹찹~하면서도 까슬한 콩잎에, 안에는 따뜻한 밥과 짭조름한 된장이 입 속에서, 훤한 보름달 뜬 밤 강강술래 추는 것 같다.  


"맛있나"


"맛있다"


"그래 맛있나"


"하나 묵다가 둘이 죽어도 모르겠다"


"무식한 가스나야, 둘이 먹다가 하나 죽는 거겠지"


"그 정도로 맛있다는 소리 아니가. 오빠 니는 참, 밥 먹는데 개도 안 건드린다"


콩잎이 나오면 밥 한 공기는 애피타이저, 두 번째 공기가 메인이다. 콩잎은 사춘기 시절 몸무게를 불린 주범이기도 하다. "다 키로 간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말씀만 안 하셨다면 한 공기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을까.


"그리 맛있나"


"진짜 맛있다, 된장이랑 이래 탁 쌈 싸 먹으면 너무너무 맛있다. 배가 안 불렀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소리 내서 웃으시면 분홍색 잇몸이 보인다. 평소에도 크게 웃으시는 분은 아닌데, 이렇게 내가 맛있다고 할 때마다 할머니는 그렇게 잇몸을 보이시며 웃으셨다. 그래도 할머니께 "맛있다"는 표현을 자주한 건 그나마 잘한 것 같다. 맛있으니 맛있다고 했을 뿐이었지만..

할머니 고맙습니다. 덕분에 부엌일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지독한 입덧을 견뎌내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둘도 없는 내 새끼지만 삼세끼 밥을 해 먹인다는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게 됐다. 그 전에도 알긴 알았다. 공부하느라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하루 삼세끼는커녕 한 달에 밥 세 번도 안 지어먹던 나다. 쌀 씻어 물 넣고 전기만 꽂으면 되는데도 그조차 안 했다. 라면 끓이기도 귀찮아 분말 뿌려 섞어먹고, 언밥을 얼음 씹어먹듯 이로 으깨 먹으며 그저 허기만 채우고 살았다.  


집안일이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허무한 것이라 생각했다. 돌아서면 치워야 하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일거리가 한없이 눈에 밟히기만 한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 모습의 배경은 늘 부엌이다. 거기에 무슨 꿀단지를 숨겨놨나 싶을 정도다.


한 번은 당시 대학생이던 오빠가 일본인가 어딘가 여행을 다녀와선 장인이 만들었다는 주걱을, 할머니 선물로 사 왔다.


아직도 기억난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는 할머니가 밥만 하는 사람인 줄 아나"


할머니는 눈을 흘기시면서도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나중에 내 딸이 여행 갔다가 기념품으로 주걱 사 오면, 나는 등짝 스매싱을 날릴 것 같다.


지금도 유리천장이 두텁지만, 당시는 오죽했었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의든 타의든 부엌과 연애하고 결혼하던 시절이다. '내 인생은 어딨나, 왜 집안일은 나만 하나' 집안에서 창밖으로 변해가는 계절을 보며, 가는 세월 야속하기만 했을 텐데, 이 마음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시절이다.


하루 종일 부엌만 이고 지고 살던 할머니한테 낙이라곤, 손주들 입에서 "할머니가 해준 건 다 맛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을지도.




콩잎이 너무 먹고 싶어 인터넷에서 콩잎 파는 곳을 미친 듯이 검색했다. 단풍 콩잎, 콩잎장아찌 등은 파는데 콩잎 물김치를 배달해주는 곳은 없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뭐 먹고 싶은 거 없냐시길래, 그냥 지나듯 할머니 콩잎 얘기를 꺼냈는데, 포항에 사시는 고모할머니께 그걸 또 부탁하셨단다. 아버지도 참 무뚝뚝하신 경상도 of 경상도 분인데, 핏줄이란, 자식이란 그런 걸까.


그로부터 2주쯤 뒤에 콩잎을 받았다. 콩잎이 든 통을 받고 한참을 울었다. 강된장은 신랑이 제법 흉내 냈다. 냄새를 맡고, 콩잎에 된장 올려 밥 싸 먹는 내내, 한여름 장마철 비 내리듯 눈물이 흘러내렸다.  

포항사는 고모 할머니가 해주신 콩잎물김치
강된장은 신랑이 제법 흉내냈다

둥근 교자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모습. 내 자리는 할머니 오른편이었다. 할머니는 어떤 반찬이든, 이미 충분히 잘 먹고 있는 내 밥숟갈 위에 생선이든 나물이든 꼭 올려주셨다.


콩잎이 맛있다며 쌈 싸 먹고, 쌈 싸 먹다 배부르면 밥은 빼고 콩잎만 강된장에 푹푹 찍어 먹다가 "가스나야, 그래 묵지 말랬재. 그러면 된장 맛이 변한다고 안 캤나" 하며 한 대씩 맞기도 했지만 "된장 다 무면 되잖아" 절대 굴하지 않던 먹 고집.

"하이고 요 주둥이를 콱"하면서도 활짝 웃으시던 할머니 미소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 모습이 갈수록 흐려지는 게 서글프다.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 눈물이 나는 건 아마 후회 때문일 테다. 그 시절  할머니가 해주시던 삼세끼 밥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에 대한 후회다. 있을 땐 고마움을 모른다. 지나고 나야, 그걸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소중함을 느낀다.


우리 할머니는 삼세끼 밥을 끼니마다 하셨다. 그것도 압력밥솥으로.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루 세 번, 반드시 꼭 새 밥을 지어주셨고, 아침에 나온 반찬을 점심이나, 저녁에 다시 내놓는 일은 없었다. 김장을 손수 하시고, 장독에 담아 땅에 묻고, 겨울이 되면 뜨개질로 조끼와 스웨터를 짜 주셨다. 나는 그 정성도 모르고, "아 그런 건 요즘 스타일이 아니라고" 이런 싹수없는 말이나 내뱉는 사춘기 소녀로 자랐다.


그런데 또 그런 싸가지 손녀, 매일 TV만 보며 뒹굴거리는 손녀에게 "뭐 먹고 싶노?" 점심 먹고 나면 "저녁은 또 뭐해 묵노?" 항상 물어보셨다.


"왜 할머니는, 아무끼나 묵지 뭘 자꾸 물어샀노~ 할머니가 해준 건 다 맛있다"


"맛있나?"


"맛있다, 진짜 맛있다"


"밥 먹기 전까지 책 좀 안 보나, 숙제는 다 하고 그카나"


괜히 타박을 주시며 부엌으로 가신다. 그래도 "할머니가 해주는 건 다 맛있다"는 손녀 얘기에 미소 짓지 않으셨을까. 내가 해준 밥을 딸이 오물오물 잘 먹으면 그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것처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면 30분 내 문을 두드리는 배달 음식과 '2분 땡'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 속에, 여럿이서 음미하며 먹기보단 혼자서 대충 때우고 마는 일상 속에, 시간과 정성이 들여야만 나올 수 있는 그 깊고도 진한 맛이 너무나 그립다.





오늘도 내 딸에게 해줄 아침밥을 차리면서, 할머니가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해준 모습이 생각이 난다.


비상용으로 사둔 간편 조리 아기 반찬을 꺼내려다, 근형이가 좋아하는 소고기 뭇국을 끓이고 브로콜리와 치즈를 넣은 감자전을 부쳤다. 우리 근형이가 기억하는 엄마의 집밥이,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콩잎 물김치, 발끝만이라도 따라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할머니 덕분에 부엌일이 얼마나 빛나는 일인지, 살림하는 여자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이일인 알게 됐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할머니 포옥 안아드리고 그 두 손 꼭 잡아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3장은 제가 어렸을 때 사진인데요 ㅎ딸이랑 많이 닮았대서 올려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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