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어른이의 자아찾기] 다됐고, 나부터 찾고 올게요
"진짜 못해 먹겠어.
이러다 제명에 못 살 것 같아.
내가 이럴려고 미친듯이 공부해서
이 회사 들어온 게 아닌데"
유튜브 구독자 2만명을 찍은 뒤부터, 오랜만에 연락오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름 대면 "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한 대기업을 다니거나, 언론사 동기 혹은 선후배다.
사는 게 괴로워 이직이라도 해볼까 싶어 이력서를 쓰는데, 쓸 말이 없단다. 최소 10년 혹은 그 이상으로 혹사당할만큼 일했는데, 결혼도 못하고 (자기 딴엔) 몸바쳐 일했는데, pc 하얀 바탕에 까만 커서만 깜빡일 뿐..적으려니 그동안 한 게 없단다. 몇년차 '팀장', '차장'이라는 직급말고는 딱히 내밀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취준생 시절 그렇게 부럽기만한 경력직인데 어째 그 없던 시절, 자기소개서 쓰는 것보다 더 막막하단다.
분명 월화수목금금금 열심히 살았는데 "지난 10년간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고개를 살포시 들더니.. 내 눈을 보며 싱긋 웃는다.
연지야, 그래서 말인데,
유튜브 어떻게 하는 거야?
진짜 막 돈 많이 벌고 그래?
힘들다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욕할 뻔 했다.
얔 구글이 미쳤다고 아무나 돈 주냐? 너 하기에 달렸지. 그리고 영상 만드는 게 쉬운 게 아니야. 그냥 보기엔 "와 놀고 먹는 거 찍으면서 떼돈 번다" 그러겠지만, 너 니 신랑 생일 축하 영상이라도 편집해봤어? 조카 돌잔치 영상이라도 찍어봤어? 너, 그 좋다는 대기업 다니면서 남의 돈 벌어먹기 쉽지 않다는 거 10년 넘게 깨닫고 있으면서, 잘난 구글이 퍽이나 거저 주겠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지만, 당연히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흠.. 왜, 무슨 일 있어? 네 기록을 남기고 브랜딩이나 다른 네 커리어를 위해 유튜브를 수단으로 삼는 건 추천하긴 하는데, 단순히 돈 벌려고, 생계를 목적으로 하려면 힘들 순 있어. 오늘 올린 이 영상이 잘됐다고, 내일 올릴 영상도 잘 될거란 보장이 없거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사업하는 거고, 프리랜서랑 똑같다고 보면돼~"
뭐..근데 나도 그랬다. 다들 그렇다. 그렇게 비슷한 생각하면서 또 그렇게 살고 가는 세월 야속해하며 '즐거운 소풍이었노라~' 외치다 가는 게지;
2020년. 올해로 10년차 기자다. 기자가 되겠다며 대구 촌구석에서 상경했다. 언론정보학과 수업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에는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칠전팔기 끝에 국내 한 방송국에 입사했다. 금수만도 못하다는 수습 기간을 거치고 사회부서 이리 구르고 저리구르면서, 병이란 병은 다 달고 살았다. 이를 꽉 다물고 버텼다.
"지금 내 모습은 보잘 것 없지만 10년차쯤 되면 난 정말 멋진 기자가 돼 있을 거야"
"좋은 기사란 이런 것이야!" 여기저기 지식을 설파하고 다니고 "여러분 이게 팩트입니다. 가짜 뉴스에 속으시면 안됩니다" 대한민국 정의 언론인(?)으로서 맹활약을 펼칠 것이라 생각했다. 막 5개 국어를 쌸라쌸라하며 외국CEO를 만나도 거침없이 영어로 인터뷰하는 하, 멋진 이 멋진 여성.
무채색 정장에 또각또각 뾰족 구두를 신으며 '여대생이 닮고 싶은 언론인' 막 이런 데에 인터뷰도 실리고,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부조리를 뿌리 뽑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소외된 분들이 좀 더 마음놓고 숨쉬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개뿔..
남의 숨통 뚫어주기 전에 내 숨통이 먼저 끊어질 것 같다;;;; (거, 숨좀 쉬며 삽시다)
무채색 정장은커녕, 10년차란 숫자가 무색하리만큼 여전히 팀에서는 막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신입이 들어오는데, 왜 내 밑으로는 후배가 안 들어오는 건가!
지식 설파는 무슨..
"네" 혹은 "넵",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말고는
팀 단톡방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못한다)
'할많하않'이다.
기자란 소신있게 할 소리 해야한다고 배웠건만..
그리고 ..외국어? 5개 국어..라고요??
기자로 밥 벌어먹고 살아가면서 세종대왕님께 석고대죄하고플 정도로..우리말마저도 헷갈린다. 왜 매일 한국어로 기사를 쓰면서도 난 늘 오락가락하는가; 연차가 쌓일수록 정신은 더 없어지고 눈도 침침해 지는 것 같고 오타만 늘어난다. 기사 쓸 때는 그렇게 여러 번 봐도 안 보이던 오타가, 송고되고 나면 제목에 떡하니 있네?! 오 마이 갓..숨을 쥐구멍마저도 못찾겠다 이제.
그래. 긍정도 심하면 병이다. 팩트없는 상상은 망상이다. 알맹이는 없고 화려한 껍데기만 꿈꿨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도 못한채 그저 '열심히만' 살았다. 일을 잘 한다고, 회사에서 업계에서 인정받는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람으로 살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그저 무슨 일을 하며 살겠다는 직업 의식만 투철했다. 형태도 잡히지 않는, 업으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늘 아둥바둥대기만 했다.
그러다 아팠고,
병들었고,
마음도 병들고,
'나'는 도대체 누구지?
뭘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어릴 적 간절했던 꿈을 이뤄서 좋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다만 내 행복의 이유가 단지 '내가 기자여서' 오는 건 결코 아니다. 기자로서의 내 삶도 있고, 일에서 오는 보람도 물론 있지만 나는 나일 때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나답게 살기로 했다. 나는 내가 나여서 참 좋다.
서른 중반, 이제야 간신히 내 삶의 모양을 다듬어 가는 즈음, 내 친구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는 걸 알게 됐다. 가끔 생면부지 어린 친구들에게 DM도 받는다.
"인서울은 하고 싶은데 성적이 나오질 않아서 답답해요. 좋은 대학 못 가면 이생망일텐데.."
"재수했는데 망했어요. 삼수 해야하나 고민되네요" "한 번 더 하면 달라질까요?"
"나름 좋다는 대학 왔고, 취업을 하긴 해야하는데,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이 직장이 너무 나랑 안맞는 것 같아요. 그만두고 싶은데 그럼 경력도 월급도 끊기니.."
정확한 나이와 어떤 대학을 나왔고,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잣대는 상대적이니) 그들의 글만 봐도 한숨의 깊이와 그 나름의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얼마나 고민이면 생판 모르는 아줌마한테 그렇게 용기내 메시지를 보낼까.
나도 그랬다. 학창시절엔 좋은 대학만 가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남들이 알만한 좋은 직장에만 들어가면, 더이상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승진만 하면 행복이라는 보따리가 턱 하니 안길 것 같았다.
서울대 가면 성공한다고?
인생이 그렇게 쉬운 줄 아니?
허세 가득하던 학창 시절, '성적은 안되지만 서울대는 가고 싶어'하던 내게, 예일대 다니던 한 언니가 내게 해준 말이다. 왜 서울대 가고 싶냐는 질문에, "성공하고 싶거든요" 이렇게 답했거든(아유 귀여워라)
"성공이 뭔데? 행복? 그럼 서울대 간 사람들은 다 행복해? 그럼 연대 붙은 학생은 서울대 간 학생보다 조금 덜 행복하고? 그럼 아이유나 서태지는 불행할까? 대학 안가서?"
대학 다니는 4년간의 행복이 향후 40년간, 아니지 이제 백세시대니까, 그래, 99세까지의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행복이란 하늘이 푸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하지 않을까" - 요슈타인 가이더 -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한 게 없는 것처럼 공허하다면, 남들은 행복해보이는데 나는 끝없이 힘들기만 한다면, 앞으로 뭘 해야할지 막막하다면 내 인생인데, '내'가 빠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이 보기에 괜찮은 것,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 인정받을 만한 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다보니, 뭘 해도 행복하지 않다. 내 인생에 확신이 서지 않고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길을 정한 게 아니라, 남들이 괜찮다고, 다들 가고 싶어하는 길을 가다보니, 갈림길이 나올 때 결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뚜렷하게 보이던 길이 안개속에 휩싸여버린다.
괜찮다. 지금부터라도 하면 된다. 잃어버렸던 나를 찾으면 된다. 세상 눈치에 덮어뒀던 내 취향과 개성, 다시 끄집어 내면 된다. 이미 충분히 알잖아. 부장님 눈치에 휴가 안 냈더니 행복하던가.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선에서 나만 생각하기로 한다. 섹시하게 뻔뻔해져야 한다. 무엇을 하며 사는 것보다 어떤 '나'로 살고 싶은지, 왜 내가 그리 살아야 하는지, '성공하는 법'이 아닌 "내가 행복해지는 법"을 찾으면 된다.
길을 걷다보면 또다시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나타날 수 있다. 길이 갑자기 뚝 끊길 수도 있다. 폭풍우가 몰아칠 수도 있다. 내가 나를 잘 안 다면 이 모든 걸 뚫고 나아가는 방법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입시, 취업, 결혼, 승진?
글로 밥 벌어먹는 기자,
좋아서 하는 유튜버이기도 하고
브친님들 하트에 기분 째지는 브런치 작가이고,
미라클모닝 전도하는 모닝레시피 셰프,
흥많은 아줌마 댄서도 됐다가
사랑받는 아내이자
친구같은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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