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Nov 16. 2020

아이를 두고 가는 곳, 베이비룸을 아시나요?

또다른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베이비박스가 없어도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아이를 두고 가는 곳, 베이비룸을 아시나요 (YouTube 영상)

(또다른 비극이 없기를, 베이비박스가 없어도 되는 그 날을 기다리며)


https://www.youtube.com/watch?v=jjp06OEK19M



2020년 11월 3일 새벽 5시 30분,

베이비박스가 있는 골목 맞은편 공사 자재 더미가 있던 곳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누워있었습니다.


발견됐을 때는 이미 아기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난 뒤였어요. 하필이면 11월 들어 유난히 춥던 날, 또 새벽엔 비까지 왔다고 하네요.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엄마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힘겹게 출산한 아기를 베이비박스 안에 넣기만 했어도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곳에 한 번이라도 가보신 분들은, 근처를 지나가기라도 하신 분들은 아실 예요.

대중교통으로 이곳에 오려면 지하철역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또 와야 하는 데다, 제일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베이비박스에 가는 길도 키 160cm인 제 걸음으로 족히 15분은 걸리는 길입니다.


멀기도 하지만 길이 상당히 가파르거든요. 이곳까지 아이를 안고 왔다는 건, 아이를 버리고 가려는 게 아니라 자기보다 더 아이를 잘 키워줄 수 있는 이곳에 보호하려 왔을 거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막상 왔더니, 무서웠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겠죠. 베이비박스 문을 열고 안에 둬야 한다는 걸 모르고, 근처에 두고 가면 되는 건 줄 알았을 수도 있었을 테고요.


저 역시 아이를 열 달간 품고 출산의 고통 끝에 아이를 안아봤던 엄마이기에, 그곳에 아이를 놓고 간 엄마는 잘 모르지만, 결코 나쁜 마음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결국 탯줄도 태반도 그대로인 채 옷과 수건에 쌓여온 아기는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혼자서 전전긍긍 가슴앓이하면서, 추운 날 병원도 아닌 어딘가에서 아이를 낳았을 엄마는 영아유기치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베이비박스에 오기 전에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가 없어야 합니다. 그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뜯어고쳐야 할 제도도 많고 사회 인식도 바뀌어야겠죠. 또 어쩔 수 없이 아이가 태어났더라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혼자서도 아이를 낳고 잘 기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아이가 지켜지는 곳, 아이와 산모를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곳 '베이비룸'에 대해서요.



베이비룸은 베이비박스로 올라가는 길 우측에 있습니다.



주사랑 공동체에 따르면 베이비룸은 2015년에 미혼모와 아이를 더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 골목길을 지나던 택시 운전기사님이, 지나가다 아기가 우는 소리가 나서 들여다봤더니, 아이가 베이비박스 앞에 있었다는 겁니다.


"베이비박스까지 와서 미혼모들이 베이비박스 문을 열기가 무서운 거예요. 그리고 베이비박스는 밖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사람 심리상 얼른 안에 넣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분들은 베이비박스 문을 무서워서 못 열어가지고 그 밑에 놓고 가기도 합니다"       -주사랑공동체-


추운 겨울 새벽, 베이비박스에 놓지 않고 그 차가운 바닥에서 10분만 있어도 아기는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이거 안 되겠구나. 엄마가 베이비박스까지 와서 아이를 지키려고 했는데 그것도 잘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하다 주차장 한 공간을 사용해 '베이비룸'이라 이름 붙인 작은 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베이비룸이라 적힌 유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방문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 하찮은 생명은 하나도 없다'라고 적혀 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아기 침대가 눈에 띕니다. 아이를 낳고 여기까지 데려오느라 지친 몸과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소파도 있고요.  방으로 돼 있어서 노출이 안되니까 "아이를 두고 빨리 도망갈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지 않는다"는 게 주사랑공동체 측 설명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를 놓고 가려고 굳게 마음먹고 왔어도, 포근하고 따뜻한 방, 아기 침대 위에 아이를 두는 순간, 아이가 예쁜 아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마주하면, 결코 발을 떼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울 여건만 된다면 1년 가까이 교감하며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쉽게 포기할 엄마는 없을 테니까요.



무엇보다도 아이를 방안의 침대에 눕혀 놓으니까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고요, 엄마는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 머무르며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기 침대 위에는 상담을 요청하는 벨이 있어요. 벨을 누르는 건 아이 엄마의 마음에 달렸지만, 베이비룸에 오신 엄마들은 모두 상담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자가 분만해 온 엄마를 위해 샤워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직원에게 요청하면 속옷도 제공되고요. 이렇게 베이비룸은 베이비박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베이비룸은 엄마가 편안히 머물며 이야기도 나누기 위해 음악이나 조명 등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베이비룸을 찾아온 엄마들은 '베이비박스보다 여기가 훨씬 좋다', '아기를 베이비룸 침대에 눕혀놓고 오는데 그래도 안심이 됐다"는 얘기를 해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님은 "원치 않는 임신을 했거나, 혼자서 아이를 낳긴 했지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고 막막하고 외롭고 힘들다면, 반드시 전화를 주거나 이곳으로 오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냥 가지 말고 "꼭 상담을 받으라"고 당부합니다.


이곳에 오는 엄마들은 칭찬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이곳만큼은 엄마들을 칭찬합니다. "낙태하려면 할 수 있었을 테고, 버리려면 아무 데나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아이를 살리려고, 지키려고 온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생명을 살린 사람, 이 아이를 끝까지 살린 엄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품은 열 달간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을지, 아이를 혼자서 낳는 순간에는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아이를 키우지 못하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또 여기 오기까지 시달렸을 죄책감, 자괴감 등의 마음을 위로하고 새 힘을 얻도록 격려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엄마가 아기를 포기하고 우는 것과 힘들고 어려워도 아기를 끌어안고 우는 건, 눈물 자체가 다릅니다. 시간이 지나 보면 아기를 끌어안고 울면서, 힘들지만 아이를 키웠던 것에 행복함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더라고요. 그래서 베이 박스에 아이를 데려온다면, 아이를 놓고 가기 전 꼭 상담을 하면 좋겠어요. 상담을 하면 아기도 엄마도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는데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가 돼 주세요



이 부탁을 거절하는 엄마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해요. 그리고 다시 키우겠다고 마음을 돌리는 엄마도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 아이 덕분에
 당신이 행복해지는 날이 반드시 온다




(베이비박스나 베이비룸을 찾는 대부분은 여성이지만 남성도 있습니다.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테니 미혼부모라 하겠습니다.)


미혼부모가 상담을 통해 키우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기만 하면, 지원책은 마련돼 있습니다. 국가에서 하는 게 아니라 교회에서 후원금으로 진행되는 거라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엔 베이비박스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있고, 또 국내에서 유일하기에, 혹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 또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너무 힘들게 아이를 키우고 계시다면 꼭 도움받으셨으면 합니다.




먼저 미혼모의 경우 연계된 기관에서 무료로, 경제적 부담 없이 아기를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만약 출산 뒤 아기와 함께 생활할 곳이 없다면, 방을 구하고 직장을 찾고, 자립할 때까지 거주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양육에 필요한 물품, 베이비케어 키트도 매달 지원합니다.


분유, 기저귀, 물티슈, 아기 옷, 목욕용품, 로션, 약품, 책 이유식, 쌀 등이 키트에 포함됩니다. 그 외에 보육교사나 사회복지사,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교육을 지원하거나 주사랑 공동체 후원사나 협력사에 취업하도록 돕기도 하고, 산모나 아이가 아프면 수술비 치료비도 지원합니다.


또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 도저히 형편이 안되면 영아 수탁 보호를 맡기기도 합니다. 친부모가 출산 직후 힘든 상황에서 양육을 포기하지 않도록 단기(1개월~6개월) 24시간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에요. 상담을 통해 위탁을 결정했다면 아기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약속한 위탁 기간 내에 아기를 찾아가야 합니다.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기를 줄일 수 있는 '비밀 출산법'


비밀 출산법은 말 그래도 가명(익명)으로 출생 신고를 하는 법입니다. 현재 입양특례법상 시설이 아닌 가정에 위탁하거나 입양하려면 출생신고가 돼 있어야 하거든요. 원래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입양 동의서나 양육권 포기 각서가 있으면 입양할 수 있었지만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반드시 출생신고를 하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허위 입양되는 사례를 막고자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꾼 거예요.


취지만 보면 나쁘진 않지만, 이처럼 출생신고를 꺼리다 보니 버려지는 아이가 늘게 된 겁니다. 출생신고를 하면 호적에 '미혼모'란 꼬리표가 남고, 출생신고 없이는 입양도 어려우니 베이비박스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지난 국회에서도 내내 계류 중이었지만, 보건복지위 심의조차 안된 뒤 이번 국회로 다시 넘어왔다고 합니다.


덧붙여진 게 아이 아빠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라 합니다. 아빠를 끝까지 추적해 내 양육의 책임을 물도록 한다는 취지입니다. 만약에 양육비 지원을 못하겠다고 하면, 운전면허를 취소하고 여권을 취소하고, 마지막 단계로 월급을 차압해 양육비로 지원하게끔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책임을 지우면, 관계를 맺기 전, 혹은 성범죄를 저지르기 전, '양육비'라는 부담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 적어도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거나 혼자서 외롭게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는 경우는 줄어들 것이라는 게 이 법의 취지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보다 중요한 건 생명 경시 문화가 자리 잡지 않도록 사회적인 시스템과 우리의 인식 개선일 것입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영아 유기를 줄이고,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차원에서 베이비박스나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 100여 곳, 체코 47곳, 일본 한 곳 등 많은 나라들이 정부 또는 민간(여성병원 등)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은 즉시 병원으로 안도된 뒤 입양 수속을 밟아요.


미국이나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은 익명출산 제도 즉, 산모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안전하게 아기를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에는 베이비박스가 100여 개가 있는데, 1년에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의 수는 네다섯 정도라고 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베이비박스가 많은 걸까요? 이종락 목사님께서 이걸 여쭤봤다가 크게 민망했다고 하십니다.


그분들 대답은 이랬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2010년 베이비박스 설치 이후 베이비 박스 이외의 장소에 유기된 아이의 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2000년 1270건에서 2014년까지 집계만 봐도 34건에 불과합니다. 하마터면 차갑고 더러운 곳에 버려져 사망 위험에 노출될 뻔한 아기들이 그만큼 줄었음을 의미합니다.


베이비박스를 찾아온 미혼부모에게 "아기를 포기하지 말고 직접 기를 것"을 권하기에 유기를 조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실제 양육이 가능하도록 앞서 말씀드린 각종 지원도 제공하고 있고요.


그 결과, 베이비박스가 생긴 이래, 여기서 보호된 아기들 중 13~15% 아기들이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입양 가정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0년 9월까지 보호된 105명의 아기 중 103명(98%)이 보호자를 만나 상담을 했고, 이중 17%가 입양, 18%는 엄마와 함께 귀가했습니다. 원가정 복귀나 새로운 가정으로 진로가 결정된 아기는 작년 31% 대비 올해 35.2%로 증가한 셈입니다.


가장 바뀌어야 할 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갖춰줘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아이를 키워보니, 맞벌이에 딸 하나 키울 뿐인데, 이렇게 빠듯할 수가 없습니다. 여성 혼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기에는 돌봐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할 테고요, 그 외에 식비, 기저귀 분유값만 해도 정말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국가적 지원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현행법상 한부모가정이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되는 육아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중위소득 52%(2인 가구 기준 월 155만 원) 이하에 해당해야 합니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해야만 겨우 2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월세 내며 기저귀 값 분유값 감당하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 입엔 풀칠만 하고 살라는 소리입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받을 수 있는 '돌봄 혜택' 역시 한부모가정은 어렵기만 합니다. 중위소득 60% 이하로 규정하는데 이 역시 2인 가구 기준으로 한 달 소득 약 179만 원입니다. 현실성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엄마를 탓하기보단,

베이비박스가 아이 유기를 조장한다고 손가락질 하기보단


'왜' 베이비박스가 생겨났고,

'왜' 엄마들이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 가는지,

관심과 대책이 절실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천히 가도 괜찮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