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Jan 03. 2022

단톡방에 대한 단상 - 연결과 소통의 모순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

나는 거의 20개가 넘는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


팀방, 프로젝트 방, 회사 동기, 고등학교 때 친구들,

대학교 때 친구들, 가족방, 형제 방,  사이드 프로젝트 방, 각종 스터디 방..


그 외 같은 목표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 소개받거나 맺어진 인연이다.


처음에야 서로 환영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종종 주고받으며 인맥의 장이 되는 듯했지만

카톡의 위력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단톡방이 불편하게 느껴진 건

회사를 다니면서부터다.


업무와는 상관없이 나의 대답 속도나

대답하는 말투 등등 모두가 팀원들에게 공개되면서

괜히 알랑방귀나 끼는 애로 취급되거나,

이쁨 받고 싶어서

오버해서 일하는 애로 오해받곤 했다.


나는 그저 시키니까 (혼나고 싶지 않아서 싫어도)

할 뿐이고

그래도 상사니까

이왕이면 좋은 말투로 대답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런 애로 돼버렸다.

상사의 지시에

"그건 좀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만 얘기해도

또 금세 되바라진 애가 되기도 했다.


이후로 단톡방에 어떤 글을 한마디라도 남기려면

몇번을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웠다가....

한 문장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진땀을 뺐는지 모른다..


애써 잘보여야 하는(그러나 뭘 해도 득이 되지 않는)

카톡방에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에너지와 시간이 아까워

그다음부터는

"네, 알겠습니다" 말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필요한 말이 있으면

따로 개인 톡을 드리거나 전화를 했다.


혹여 단톡방에서 나를 불렀는데

2분 내 대답이 없으면,

곧장 전화가 와서 깨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다른 전화를 받거나 누구를 만나고 있으면

바로 못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즉각 즉각 대답해야 하는 족쇄와도 같았다.

방 자체가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당연히 업무 단톡방 말고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를 외롭지 않게 해주는 이들인데도

그 카톡이란 감옥에 하나둘씩 갇히면서

고마움보단 버거움이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단톡방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됐다.

그게 차라리 마음 편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왜 넌 아무 말도 안 해?"라고 했지만

괜히 말 한마디 잘못해서 오해 사기 십상이고,

실제로 바빠서 못 본 것도 있고,

그러다 보니 카톡이 쌓여서

지난 이야기들을 들여다볼 엄두도 안 났고,

그러다 보니 또다시 카톡이 쌓이고..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계속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그냥 친구들 사이에선

“연지는 원래 단톡방에서

아무 말도 안 하는 애"가 됐다.

괜한 오해를 받는 것보다 '무심한 애'가 되기로 했다.




어떤 누군가의 자랑이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가 한동안 생기지 않았을 때여서

인공수정, 시험관도 알아보고,

아이를 못 갖는 건 순전

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어떤 친구가

"원치 않는 아이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물론 결혼한 친구였다.

다만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덜컥 생겨서

나름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었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육아가 얼마나 고된 것이란 걸 알기에

천 번 만 번 공감하지만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내게는

고민으로 들리지 않았다.


다른 방에서는 또 아이를 일찍 낳은 친구가

우리 애가 너무 귀엽지 않냐며

시시때때로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다.

우리 엄마도 오빠의 아기가 정말 이쁘다며

사진을 막 가족방에다 공유하곤 했다.


정말 별거 아닌데

그 당시엔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남들에겐 참 당연한 듯 생기고

엄마마저도

아이가 없는 나를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른들은 내가 일부러 아이를 안 가지는 줄 아셨으니)


당연히 친구나 엄마의 본심은 그게 아닌데,

그냥 내 상황이 그랬다.

단톡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대화들이

기저에 깔린 어떤 열등감이 나를 툭툭 건드렸고

나는 그런 것마저도 공감하지 못하는

치졸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더 힘들고 버거워졌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대학교 친구들이 모인 방이 있다.

절반은 결혼했고, 절반은 미혼이다.


정말 힘겹게 아이를 가지게 됐을 때

대부분 친구들은 축하해줬지만

아무 말도 안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친구들에겐 아직 결혼도 안 하고,

남자 친구도 없는 자신의 상황에

아이를 어쨌거나 가진 내가,

그 친구들의 외로움과 불안감을 더 가중시킨 것 셈이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아무 말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오히려 미안했다.

역시 이런 얘기는 이렇게 남겨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단톡방은 잘 보지 않게 됐다.

뭔가 그 방에서 우리는 이어진 듯 하지만,

각자 처한 상황과 입장이 다 다르다.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다 알지도 못한다.

말 한마디가 정말 조심스러운 이유다.


그러다 보니 매번 아래로 아래로 밀리고,

단톡방은 또다시 쌓이고

또 아래로 밀리고, 쌓이고 그런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따로 연락하거나 전화하겠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 어떤 방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1이 있으면 그게 나인 줄 안다.




얼마 전 사건이 터졌다.


시어머니께서 왜 단톡방에서

아무 말이 없냐는 것이었다.


가족인데 왜 큰며느리인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냐고..

가족이 뭔지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눈치가 없다고...


갑자기 화가 잔뜩 나

들이닥친 시어머니 문자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힘이 쭉 풀리면서 직장에서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가족이라며.. 그래요 가족이잖아요...

직장도, 군대도 아니고 가족인데..


카톡이 쌓이고 밀려서 못 본 것인데

또 사달이 났다.


지금 옮긴 회사에서는 카톡을 안 쓴다.

슬랙이라는 업무 메신저를 따로 쓴다.

일하다 보면 카톡을 못 볼 때가 부지기수다.


알림을 꺼둔 데다

시간을 아껴 쓰는 게 습관이 된 탓에

카톡에도 타이머를 걸어뒀다.

30분 쓰면 비활성화된다.


일단 회사에서 카톡을 안 쓰니, 걱정할 게 전혀 없고

뭔 일이 생기면 전화가 오겠거니 여긴다.


더구나 그때는 회사 일도 회사 일이지만

기형아 검사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와서

(물론 양수 검사 1차 결과에선 괜찮다고 나왔지만.

2차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완전 멘붕 온 상태였다.


그런 찰나에 퇴근하고서 스크롤해서

단톡방을 찾아서 들여다보고 대답하고 해야 할까..


신랑이 카톡을 좀 보라고 하기에

한참을 내려도 시댁 단톡방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신랑 이름을 검색해서 들어갔고

300+가 돼 있는 걸 발견했다.

이미 그때 다른 단톡방 역시 300+가 돼 있을 때였다.

300+가 넘는 여러 단톡방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스크롤해서 지난날들의 카톡을 살펴보니

왜 그러셨는지 대충 짐작은 갔다.

좋은 일이 있으셨는데

내가 즉각 대답하지 않아서인 듯했다..

그런데.. 매일 딸과 함께 전화를 드리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반드시 단톡방에서 메시지를 남겨야만 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면서..




우리 가족은 사위는 방에 초대하지도 않았다.

초대하지 않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솔직히 나보다도 사위 오면 더 예뻐하고 챙겨주고

내 동생을 방 밖으로 빼내면서까지

사위를 들여보내며 한숨 자라고 해 주신다.


당연히 나를 누구보다 아끼는 부모님이시고

언제나 내편이 돼줄 우리 가족이지만

항상 사위 앞에서는 "부족한 딸 잘 봐달라"고,

"연지랑 사느라 고생 많다"라고 토닥여주시고

늘 귀한 손님이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계신다.


우리 가족방에 초대하지 않는 건,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조금의 어떤 마음의 부담조차 주고 싶지 않아서다.


시댁도 당연 소중한 가족이라 하지만

단톡방은 여전히 어렵고 불편한 건 사실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며느리는 여전히 밑지는 존재이고

더구나 시댁 방에는 어머님, 신랑, 나 이렇게 셋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버님도 계시고 도련님, 동서도 있다.


그 안에서도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

나는 이동 시간마저 쪼개가며 쓰고

딸애 옷도 사촌오빠나 주변 친구

아들딸로부터 물려받은 거 아무렇게나 입히며

돈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아등바등 사는데,

조금은 나와 다른 형편의 가족이나,

여유 있게 골프 치고 여행 다니시는 어머님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 지붕 안에서도 이렇게 사는 사정이 다르구나 싶었다..


그저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일 뿐인데

나 스스로 비교하며 그렇게 쪼그라들고

위축되는 걸 피하고 싶었고..

원래 단톡방 열어보는 성격도 아니고

쌓이고, 밀리고, 쌓이고 밀려서

이게 시댁 방인지, 프로젝트 방인지

300+인 단톡방들 사이에서 구분조차 안 갔을 테다.


어머님이 화가 났지만

"아고 어머님 오해세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한숨만 나왔다.

또 내가 문제인건가…


가족이라면, 이해해주겠거니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신랑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야말로 억울하고 서운하다고..

"오빠 알잖아, 나 우리 가족방에서도 아무 말도 안 해.

단톡방에서 아무말 안한 게 그렇게 잘못이야?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더구나 가족이라며.

우리 가족들은 내가 지금껏 한마디도 안해도

그냥 사정이 있겠거니 해. 진짜 가족은 그래"


그리고 나는 워킹맘에 어쩌다보니 N잡러다.

업무시간엔 일에 집중하고,

퇴근 뒤에 아이와 놀아주고

그 외 시간을 쪼개고 쪼개 강의 준비를 하거나

영상 편집을 하고 글을 쓰며

콘텐츠를 만드는 데 애쓰고 있다.


여기다 카톡까지 잘 해내엔 소위 '케파'가 부족하다.

카톡은 일단 시작하면 끝을 맺기가 힘들고

친구들과도 대화를 나누다보면 재밌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그 사이가 반드시 돈독한 것도 아니다.

편한 사이는 한두마디만 나눠도

혹은 본의아니게 '읽씹'을 하게 되더라도

서로 그냥 사정이 있겠거니 한다.

오히려 불편한 사이일수록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서두와

매끄럽게 끝내기 위한 말미가 길다.

카톡이 편하다는 시대지만

그래서 나는 여전히 전화를 선호한다.

그래서! 카톡 타이머는 30분으로 잡아둬도 충분하다.


단톡방에서 아무 말도 안한 게 정말 잘못일까..?


신랑에게 울면서 말했다.

"근데, 뭐 그래 좋아. 잘못이라고 쳐.

근데 이게 잘못이라면

'제가 다음부턴 카톡 더 열심히 잘 보고

대답도 즉각 할게요'라고 해야 할 텐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어.

놓친 단톡방 찾아 스크롤해가며

끌어내려가지고 일일이 확인하고..

근데 직장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 전화도 매일 드리잖아”


“그게 잘못은 아니지 그냥 너가 이해해”

신랑은 그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전 그 사달이 있고 난 뒤

신랑이 찍은 딸 사진을

내 폰으로 전송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어머님과 신랑이 주고 받은 카톡에

또한번 무너졌다..


단톡방에서 아무말 하지 않는

나의 태도를 하나하나 문제삼으셨다.

신랑은 내편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신랑이 보낸 톡도 잘 못보는 나인데..


할 말은 많지만 신랑에게도 삼켰고

앞으로 그냥 꾹 삼키려 한다.


노란색 카톡을 볼 때마다

차가운 쇠창살을 노란 가면에 감춘 감옥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그랬다.

나를 힘겹게 하는 곳이라면 당장 나오라고.


그러나 또 그럴 자신이 없다.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설명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았다.


1Q84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서 모른다는 것은

설명해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억력이 흐려져서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런 뉘앙스다.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직장이든 집안에서든

이 문장에 가슴 절절이 공감한다.

그래서 굳이 어떤 행동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말 안해도 내 사람은 다 알아주고 이해하고

구구절절이 설명해도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에겐

나의 하소연도 변명이거나 소음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고 쉬울지도 모르는 일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일 수도 있다.


"나 단톡방 나갈래"라고 신랑한테 울면서 얘기했지만

오늘도 시댁 단톡방을 나오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드워드 증후군 고위험군' 의심, 지옥을 오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