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Jun 23. 2022

베이비박스가 없어도 되는 세상

베이비박스 쌀. 분유 기부, 미혼모협회 정기후원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동수(강동원)가 소영(이지은)에게 “우산 가져가”라며 소영을 챙깁니다. 소영은 “네가 와서 씌어주든지”라고 답합니다.


마음 한 켠에 상처를 품고 사는 주인공들을 대변하듯 영화 속 날씨는 내내 흐립니다. 영화 시작부터 쏟아지는 비를 맞는 소영의 모습이 나오죠. 하지만 동수가 소영에게 우산을 씌어주거나, 소영이 그의 우산 속에 들어가는 장면은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누군가 우산을 씌워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결국 자기 스스로 우산을 들어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6월 21일 베이비박스에 쌀 20kg짜리 열 포대와 분유 서른 통을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에 정기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어린이날, 둘째를 출산한 것에 감사하고, 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건강하게 퇴원한 것에 감사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만! 5년 전 브런치를 통해서 또 4년 전 유튜브를 통해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두 구독자분들의 따뜻한 응원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고 영상을 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자신감도 얻고 또 용기를 내서 다양한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도 낼 수 있었고 강의/강연도 나가면서 진짜 나로 살게 된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사랑밭 (2006년 ~)

#서빙프렌즈(2011년~)

#군인권보호협회 (2012년~)

#굿네이버스 (2018년~)

#베이비박스 (2019년~)

#인트리 (2022년~ )


저는 감사한 일이 생길 때마다 소소하지만 정기 후원을 시작했어요. 대학에 갔을 때 취업했을 때 결혼했을 때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첫 아이 출산했을 때, 그리고 둘째를 출산하고서 어디에 기부를 할까 고민하다, 인트리라는 미혼모 보호단체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위기는 항상 가장 취약한 곳부터 오기 마련입니다.


요즘 전쟁, 식량위기, 인플레이션 등으로 먹거리 물가마저 무섭게 오르면서 장 볼 때마다 저도 입이 떡 벌어지고, 장바구니 담았던 걸 하나둘씩 빼기도 하는데요.. 아이 홀로 키우는 미혼모들은 어떨까 상상이 안 갑니다. 저는 둘째 키우는데도, 한 번 해봤는데도, 남편이 있는데도 여전히 힘들기만 한데 말입니다.


*첫 아이 출산하고서 찾았던 베이비박스 영상은 많은 분들이 봐주셨는데요, 실제로 이 영상을 보고 정기 후원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전문가도 아닌 혼자 찍은 영상인데도 귀하게 쓰인 것 같아서 정말 영광입니다.


https://youtu.be/v8TnpcJItEg



주님께 받은 사랑과 구독자분들이 주시는 따뜻한 응원, 소중한 라이킷에 비하면 너무나도 소소한 기부이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작은 정성을 전합니다.


굿네이버스는 첫째가 결혼 5년 만에 제 뱃속에 찾아온 날부터 여아 생리대 지원하고 있어요. 여성들이 적어도 생계 걱정 없이, 생리 걱정 없이 홀로 설 수 있기를. 낮은 곳에서 몸소 사랑을 전하는 현장에 계신 봉사자분들도 지치지 않길 기도합니다. 아 그리고 베이비박스를 돌보는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남성 직원분이 있는데 미혼부 협회(?) 대표라고도 하십니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고 계신 분들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베이비박스가 길가에 있어서, 노출이 꺼려지시는 분들은 골목에 숨겨진 '베이비룸'도 있답니다. 주변에 위기에 놓인 여성이 있다면 꼭 소개해주세요.


베이비박스와 베이비룸운 아이를 버리고 가는 곳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엄마의 자립을 도와주는 곳입니다. 이곳에 오면 상담사와 만날 수 있고요 아이 출산부터 키울 수 있는 거처 마련, 자격증 등을 딸 수 있게 기관과 연결해주고 취업도 지원해줍니다. 이렇게 출산부터 자립까지 지원을 받은 엄마들 대부분은 아이를 다시 데려가 키운다고 해요.


https://youtu.be/jjp06OEK19M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아이들이라는 것, 아이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와 아이를 지킨 어머니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베이비박스'가 돼서, 베이비 박스가 없어져도 되는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저 역시 최소 10년 뒤에는 지금 후원 금액 뒤에 0이 두 개는 거뜬히 더 붙길 소망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 출산은 수월하다면서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