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기차 경쟁력과 대중화 과제
글로벌 전기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국내외 완성차 기업들이 앞다퉈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고 대부분은 2030년부터 순수전기차만 판매하거나 전기차 판매 비중을 절반 이상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입니다.
기업의 이같은 청사진은 충전 인프라나 배터리 수급, 시장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연기관차는 점차 사라지고 전기차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경향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휘발윳값의 상승과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과 같은 원자재가격 상승, 반도체 수급 부족도 전기차 판매를 부추기고 있죠.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1. 전기차 경쟁 본격화, 국내외 완성차 업계 전기차 생산에 속도를 내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 사회 실현’이라는 친환경 기조와 아울러 코로나19에 따른 자동차 시장의 위축, 공급망 이슈, 신차 가격 상승 등으로 전기차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판매량은 2019년까지만 해도 220만 대에 그치며 세계 자동차 판매의 2.5%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300만대로 4.1%, 2021년에는 660만대로 9%를 차지했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30년에는 순수 전기차 비율이 30% 이상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콕스 오토모티브(Cox Automotive)에 따르면 배터리 구동 차량 판매는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미국의 전체 신차 판매의 5.6%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1년 전 점유율의 두 배에 달합니다. 이 기간에 전체 신차 판매는 20% 감소한 것으로 조사돼 더욱 의미 있는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자동차 역사 130여 년 만에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B사와 V사는 2030년부터 모든 라인업을 전기차로 대체한다는 계획입니다. G사는 이보다는 조금 늦은 2035년부터 완전한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대차그룹도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사회 구현 선언에 맞춰 제네시스를 2025년부터 신차로 전기차만 출시하는 등 2030년부터는 전기차만 판매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시장 판도도 바뀌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상하이 공장 폐쇄 등으로 T사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완성차 업체들이 주춤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판매량을 늘려가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판매 대수도 24만 8000대로 세계 5위에 진입했습니다. 특히 전년 대비 판매량은 무려 75%나 상승했습니다. 성장률로 따지면 (국가 주도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중국 업체를 제외하고 세계 1위 수준입니다.
전기차 인기, 내연기관차 사라질까?
탄소중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화두에도 완성차 기업의 계획만큼 내연기관차가 빠르게 ‘퇴출’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도로 인프라, 에너지 효율성이나 전기차 성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내연기관차가 생각보다 오래 유지되고 전기차와 당분간 상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로 환경과 충전소 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선진국은 전기차 전환이 빠르게 가능하지만, 개발도상국과 그 이하 나라들은 전기차가 달릴 만한 찻길조차 충분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2021년 완성차 업체 B사의 최고기술책임자는 “충전 인프라 등이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직 내연기관차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당시 진행 중인 엔진 업데이트가 내연 기관을 위한 마지막 투자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에너지 컨설팅 그룹 우드 맥킨지는' 2050년 내연 기관 차량은 전 세계 판매의 15% 수준으로 떨어지긴 하겠지만 아프리카, 중동, 라틴 아메리카, 러시아 및 카스피해 지역에서 판매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즉 ‘내연기관차 시장 규모는 줄어들긴 하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설명인 것이죠.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시장이 안정화되려면 최소 20~30년은 걸린다"고 내다봅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내연기관차의 수명이 짧아지긴 하겠지만 전기차 양산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은 만큼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모두 대체하려면 생산 라인부터 정비체계 등 모든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죠.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도 “기존에 보급된 내연기관차만 14억 대이고 해마다 자동차 수요가 늘어난다”면서 “올해까지 등록 대수 1400만 대뿐인 전기차로는 충당이 전혀 되지 않고 2050년까지 모두 전기차로 바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국내 자동차 평균 수명이 9.5년이고 유럽은 3년 전 기준 10.4년이라는 자동차 수명과 실제 사용 연한을 고려하면 이 전망에는 힘이 실립니다.
전기차 선점, 배터리 가격과 성능 개선에 달렸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구매 장벽은 높은 가격, 주행 가능 거리, 충전 인프라 3가지로, 이 가운데 가장 큰 장벽은 바로 가격입니다. 특히 배터리가 전기차 가격 구성의 40~50%를 차지하는 만큼 배터리 효율 향상을 위한 모터 및 전자장치의 연구개발은 제조사들의 경쟁력 확보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전략 대상입니다.
즉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배터리 가격과 성능 개선이 관건인 셈입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가 최근 공개한 두 번째 전용 전기차이자 첫 세단형 전기차인 아이오닉 6는 공기역학적으로 완성된 디자인을 기반으로 1회 충전 주행거리 524km를 달성했습니다. 아이오닉 6가 기록한 전기 소비효율(전비)은 6.2㎞/kWh로 이는 현존하는 전용 전기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주행 효율과 성능입니다.
아이오닉 6는 77.4킬로와트시(㎾h) 배터리가 장착된 롱레인지와 53.0㎾h 배터리가 탑재된 스탠더드 두 가지 모델로 운영합니다. 아이오닉 6는 400V와 800V 멀티 급속 충전 시스템이 적용돼, 800V 초급속 충전 인프라는 물론 일반 400V 충전기 사용도 가능합니다. 초급속 충전 시 18분 만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배터리 비용은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힙니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기관 차량과 동등하거나 우세한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배터리 가격을 점차 낮추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토교통부는 지난 1일 배터리를 구독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배터리가 전기차 가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배터리 구독이 상용화되면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가격이 큰 폭으로 낮아집니다. 예를 들면 4530만 원짜리 기아 ‘니로 EV’의 최종 구매 가격이 1430만 원까지 낮아집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대체로 1000만 원 정도 지원받고, 여기서 배터리 가격(2100만 원)을 빼면 최종 구매가가 1430만 원으로 줄어든다는 계산입니다. 국토부는 민간 위원으로 구성된 규제개혁위원회가 제안한 내용으로 올 연말까지 관련 법령을 정비한다는 계획입니다.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역할
이처럼 전기차는 비싼 차량 가격과 보조금 문제, 충전 인프라 문제 등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등록된 전기차는 23만여 대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전기차에 비해 충전 인프라는 약 10만여 개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한 주유소도 전체 주유소의 1%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충전 시스템이 5~10분만 충전해도 100km 정도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 된다면 시내 충전소가 기존 주유소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급속 충전은 40분, 완속은 6~10시간 정도 걸리는 데다 고속충전기를 널리 보급하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급속충전기 하나가 사용하는 전력량은 5층짜리 모텔 한 동의 전체 전력량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플러그에 전선만 연결하면 급속충전이 되는 게 아니라 한국전력을 통해 수전 공사를 모두 하는 등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충전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8분 만에 충전이 가능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전기차 초고속 충전소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을 운영할 것이라고 올해 초 밝힌 바 있습니다. 800V 전기차를 18분 이내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방식입니다.
전기차 대중화를 막는 또다른 요인에는 배터리 소재의 안정적인 수급 문제도 있습니다. 배터리 원자재인 코발트 등 희토류 매장량이 한정된 만큼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가격 변동도 크고, 차량 반도체 부족 사태가 발생할 소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해 배터리 협력체를 구성해 배터리 가치사슬 내 기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산업인 만큼 “배터리 산업의 가치사슬 강화를 위해 국내외 배터리 협력체를 강화하는 동시에 공급원 안정화 및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배터리 소재 수급을 안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전기차 화재나 침수 등의 배터리 안전성에 대해 안심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 개발도 시급합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배터리 시스템 원천기술은 독일, 일본보다 다소 뒤처져 있고 중국 같은 후발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며 “열과 압력에 취약한 배터리 내에 관리 시스템을 탑재해 배터리 내 온도와 성능을 유지하는 등의 원천 기술 및 관련 기술 선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정부는 올해 전기차 44만 대를, 2025년까지 113만 대를 보급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를 실현하려면 위와 같은 주요 이슈들이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고려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합니다.
‘2050년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에너지 공급, 탄소저감 기술 개발, 전환 지원정책(관련 보조금 등) 같은 친환경 자동차 보급 노력과 함께, 새로운 연료에 대응할 수 있는 내연기관의 효율 향상 기술도 지속해서 개발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은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친환경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알리고 설득하면서 관련 기업 및 종사자 지원까지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등 친환경 시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자동차 생산 라인과 정비 체계의 변화, 안정화를 거쳐 현재 국내 기업이 보유한 글로벌 수준의 전기차 기술을 토대로 게임 체인저가 될 모델을 다양하게 양산한다면 자연스럽게 친환경 차로의 전환생태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윗글은 현대캐피탈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hyundaicapital/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