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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Nov 02. 2022

 "왜 거길 갔냐“고 탓하신다면

이태원 참사 희생자분들을 추모합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이었다.


당시 죽고 못살던 신화 오빠들이 대구의 한 쇼핑몰 오픈 행사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6교시 마치자마자 친구와 동성로로 달려갔다. 오빠들 공연은 오후 8시나 돼야 했지만 이미 많은 팬들이 자리한 뒤였다. 가까이서 보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오빠들이 진짜 내 눈앞에 있다니.


두곡 부른 뒤 앵콜 곡이 준비돼 있었다. 그 앵콜 곡 1절이 끝나자마자, 우측 어딘가에서 “벤이다, 오빠들 벤이다” 누군가 외쳤다. 노래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팬들이 무리를 헤집고 달려 나갔다. "뒷문이야 뒷문” 오빠들이 벤을 타니 그 벤을 쫓아가서 가까이서 보려고 한 모양이었다.


당시 이미 170이 훌쩍 넘었던, 함께 갔던 친구는 긴 다리로 겅중겅중 뛰어갔다. 현미경으로 1억 마리 유산균 크기로 오빠들을 보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때다 싶어서 무대 앞으로 직진했다.


겨우 30초 남짓한 황홀한 찰나, 비명이 들리고 고성이 오갔다. 멀리서는 오빠들을 영접한 팬들의 함성인지, 서로 먼저 나가려다 싸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느낌이 싸했다.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고 유난히 큰 핀을 하고 다니는 애라 멀리서도 늘 눈에 띄던 친구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비명이 "살려달라"는 목숨 달린 외침이었는 줄은. 나가는 문 앞에서 학생들은 제지당했고 그 상황을 모르는 뒤에서는 밀고, 결국 앞줄에 있던 학생들이 버티다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줄줄이 겹겹이 쌓이고 밟히고 사달이 났다.


덩치 큰 경호원 아저씨, 경찰 아저씨들이 몰려와 잽싸게 학생들을 빨래 줍듯 윗줄부터 걷어냈다. 그리고 더 이상 몰려오지 못하도록 앞서 막았다. 키가 큰 내 친구는 전방 가장 아랫줄에 깔려 있었다. 얼굴엔 눈물과 흙이 범벅이 됐고, 교복은 찢기고 팔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배가 아프고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몇몇 학생들도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겨우 10분 남짓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밟힌 옷을 털어주고 피를 닦아주긴 했지만 키가 작아 부축해줄 수도 없고, 차도 없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친구의 부모님께 전화드리는 것뿐이었다. 부모님이 오시자마다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엄청 혼났다.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 학교는 어쩌고 온 거냐. 가시내들이 정신 나간 거 아니냐. 죽으려고 환장했냐” 물론 걱정+놀람+안심+분노가 섞여서 나온 말씀이리라.


고작 열다섯, 가요톱10에서나 보던 가수를, 그것도 좋아하는 연예인을 오프라인에서 처음 마주하는 공연이었다. 사생팬도 아니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발라당 까지지도 않았다. 하는 거라곤 오빠들 컴백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음반 사고, 포스터 방에 붙이고, 잡지 사서 스크랩하는 게 전부였다. 죽으려고 환장한 년도 아니었다. 신화 오빠들이 서울도 아니고 대구에 왔다니, 학교에서 버스 타면 20분 만에 가는 거리인데, 지금 아니면 언제 돈 벌어서 언제 서울 가서 오빠들을 보겠나. 부모님이 연예인 보고 오라고 차비를 보태주실 리도 없고. 가는 곳이라곤 학교-학원뿐인 반복되는 일상 속 있을까 말까 한 작은 일탈은 피와 눈물로 얼룩졌다.


이번 이태원 참사와 너무나 오버랩됐다. 당시에도 경호원, 경찰관 아니었으면 큰 사고로 번졌겠다 싶었다. 그리고 인명피해가 났다면 헤드라인은 이렇게 나왔을 테다. '어긋난 팬심'. '죽음으로 이끈 팬심'. 왜 소녀들은 학교가 아닌 그곳에서 변을 당했나. 이대로 괜찮은가 '팬덤 현상'.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는 것이 더 무섭다. 지금까지 멀쩡히 길을 걸어 다녔던 것도 어쩌면 기적이 아니었을까. 천재지변도 아니고. 폭우에 폭설에 갇힌 것도 아니고, 길을 걷다 골목길에서 숨이 막히다니. 얼마나 더 다치고 아파해야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될까.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왜 거길 갔냐"는 게 본질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는 그 길이 왜 흉기가 된 건지. 팍팍한 세상 속 청년들이 하루쯤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참으로 한정돼 있고 왜 그토록 좁기만 한 건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태원추모 #다시는비극이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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